꼼지락거리는 뭉크의 <절규>!
골프에 빠진 동화 002
꼼지락거리는 뭉크의 <절규>!
편백나무 화가 김시현 작품
경계 너머!
꼼지락거리는 울림을 찾으려 했지만 자연과 예술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인생은 답이 없어!
그걸 알면서 뭘 찾겠다는 거야.
각자
알아서 잘 살아가면 될 걸!
안 들어가면 그만이지.
왜 모두 절규하는 거야!
꼴 사납게."
사람들은 홀 컵 앞에서 절규했다.
뭉크의 <절규>보다 더 찬란한 절규였다.
평면인 지구가 동그랗듯
일어나고 있는 진화의 형태는 저항도 한번 못하고 고유성을 잃어 갔다.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이기 위해
모두가 긴밀하게 모여 있는 존재일 뿐이다.
선과 면의 경계 너머!
울림을 주는 무엇인가가 자꾸만 쏠림 현상으로 다가왔다.
다시 보면 볼수록 넓고 긴 것이 불안하게 보였다.
하지만
동그란 원(점) 하나는 예술의 본질이 지향하는 안정감을 준다.
홀 컵은 태양이었다.
아니
생명의 시작점이었다.
산과 강을 살리는 햇살이 분출하는 곳이었다.
"아!
생명이 꿈틀거리는 찰나의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볼 수 있었다.
블랙홀의 저주가 아닌 생명의 신비였다!"
생명을 잉태하는
가장 소중한 것들이었다.
하나는 흐르는 물이었다.
또 하나는 무성한 잡초의 힘이었다.
마지막은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나무였다.
물은 생명수가 되어 흐른다.
잡초는 밟아도 꿈틀거리며 다시 고개를 내밀며 살아간다.
나무는 묵묵히 지켜보며 겸손한 자에게 축복을 준다.
어리석은 자에게 아쉬운 비명을 선물한다.
그 비명은 뭉크의 <절규>였다.
이처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자연에서 봐야 할 소중한 것들이다.
"나도
너처럼 잘못 치는 게 좋아!
홀 컵에 빨려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거야.
생명의 신비!
꼭꼭 숨어 버린 홀 컵을 찾으려 하지 마!
그게 자연의 순리야.
망할 놈의 세상이 자꾸만 되돌아가라 하는데 그럴 필요 없어!
버디면 좋고
보기면 더 좋아!
빨리 끝내고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이나 보러 가자고."
서양화가 나 작가는 살기 위해 보기만 했다.
버디를 잡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이봐!
<아비뇽의 처녀들> 작가가 누구지?"
하고 동화작가가 묻자
"그것도 몰라!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잖아."
나 작가가 잘 아는 듯 말했다.
"히히히!
그걸 모르니 보기를 하지!
이봐!
<아비뇽의 처녀들> 작가는 피카소 야.
김 작가님 내 말이 맞죠?"
필드에서 평생 버디 하나 잡지 못한 동화작가가 물었다.
"네!
버디는 못 잡으며 <아비뇽의 처녀들>
작가는 정확히 알고 계시군요.
<모나리자> 작품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어요."
게임을 마친 서양화가 김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뭉크는
아마 골프장에서 살았을 거야!
특히
홀 컵이 있는 곳에서 보기 하는 선수들 얼굴을 관찰한 것 같아.
너도 나도
홀 컵 앞에서 <절규>하는 표정을 짓는 것 보면 알겠어!
이봐!
뭉크의 <절규>가 더 보고 싶지 않아?
나를 보라고!
보기하고 난 뒤 <절규> 하는 내 얼굴이 바로 뭉크의 <절규>야.
히히히!
뭉크도 내 표정을 똑같이 그리지 못했을 거야."
동화작가는 홀 컵을 살짝 벗어난 보기를 하고 <절규>했다.
"으악!
버디 할 수 있었는데."
동화작가 김 씨의 절규는 처절했다.
뭉크의 <절규>보다 더 아름다운 절규였다.
집중과 몰입의 경지!
차마!
숨소리도 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집중과 몰입이 주는 선물은 어디에도 없다.
정의를 갈구하듯!
아니면
창조를 갈구하듯!
경계 너머의 무엇인가를 지켜볼 뿐이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몰입하고 집중해야 한다.
꼼지락거리는 울림에 동요하지 않도록 몰입하고 집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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