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실 이발관!

유혹에 빠진 동화 139

by 동화작가 김동석


학실 이발관!





개구리울음소리가 요란했다.

5월 중순이 지나자 짝짓기가 한참 시작될 시기인지 개구리들 울음소리는 요란했다.


“워워!”

영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논을 향해 소리쳤다.

개구리들도 잠시 노래를 멈췄다.


“개굴개굴!”

조금 후 개구리들은 다시 노래 불렀다.


밤길을 걷는데 그림자가 동무가 되어주었다.

앞서 가다가 가로등을 지나치면 뒤따라왔다.

그림자가 앞서갈 때는 든든한 친구와 함께 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뒤로 처지면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영길은 산을 하나 넘어야 집이 있다.

이제 반 왔다.

마을 끝에서부터 산길을 걸어야 한다.

산길은 가로등도 없다.

다행히

오늘은 달빛이 있다.

달빛을 받으며 영길은 산으로 접어든다.

산속에는 무서운 맹수도 있고 도깨비불도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큰맘 먹고 이 산을 넘지 않으면 영길은 집으로 갈 수 없다.


“무섭다!

어떻게 이 산을 넘어가지.”

영길은 촉각을 세우고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두 눈은 오직 앞만 쳐다보고 걸었다.

소나무가 달빛에 멋지게 동양화를 그려 놨다.

가는 길목마다 영길이 그림자와 소나무 그림자가 그려내는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영길은 달빛이 유난히 밝게 비추는 곳에서 멈추고 서서 그림자를 바라봤다.


“멋지군!

내가 그림을 그린다면 이런 모습을 그릴 거야.”

달빛이 자연스럽게 물감이 되어 어둠을 채색했다.

그려내는 작품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명작이었다.

이제 물무산 자락에 진입했다.

집도 없는 산길을 넘으려니 걱정이 앞섰다.

공동묘지도 지나가야 하고 또 도깨비불이 출현한다는 산모퉁이도 돌아가야 한다.


“무섭지 않아!

산에는 아무것도 없어.

세상에 도깨비가 어디 있어!”

스스로 용기를 주며 손에 든 책가방을 가슴에 안았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몇 미터 앞을 바라보며 걸었다.

왼쪽 산 모퉁이를 돌아가는 길이 제일 무서웠다.

그곳에는 묘지가 몇 개 있다.

그곳은 마을 사람들이 도깨비불을 봤다고 하는 장소였다.


“노래를 부를까!

아니면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갈까.”

영길은 가슴에 느껴지는 무서움을 어떻게 이겨낼까 생각하고 있었다.


“에취!”

나오지 않는 기침을 일부러 했다.

주변에 누군가 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영길이 가슴에는 무서운 공포가 가득 밀려왔다.

산속으로 들어 갈수록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곤충들의 울음소리가 더 요란했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영길은 무서움을 잊기 위해 노래 불렀다.

하지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영길은 더 크게 노래를 불렀다.

헛기침도 하며 개구리보다 더 크게 노래 부르려고 했다.


“쿵쾅쿵쾅!”

노래를 멈출 때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늦게 집에 갈 때 산을 넘으며 꼭 후회한 곳이었다.

낮에는 무섭지 않은 산길이 밤이 되면 무서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도깨비가 어디 있어!”

마을 사람들은 보지도 않고 이곳에 도깨비가 산다고 했다.

밤마다 멀리서 보면 도깨비불이 보여서 밤늦게 다니지 않는다고 늘 이야기했다.

하지만

영길은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밤늦게 이 산길을 가야만 했다.

책가방을 힘주어 안았다.

손도 목도 뻣뻣한 자세로 오직 두 다리만 움직였다.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달빛에 비치는 나무들의 그림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누구야?”

그림자를 보고 놀란 영길이 소리쳤다.

그림자의 움직임이 꼭 검은 옷을 입고 동화 속에 나오는 저승사자 같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처럼 움직이며 따라왔다.


“아이코!”

돌부리에 신발이 걸려 미끄러졌다.

등에 땀이 주르륵 흘렀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더 빠른 속도로 걸었다.

산을 넘자

멀리

달빛에 반짝이며 저수지 물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다.

길게 숨을 들이쉬고 더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다와 간다!”

큰 소리로 외쳤다.

저수지 둑 아래로 몇 가구가 살고 있으니 안심이 되었다.

저수지 둑에 와서야 영길이는 마음이 놓였다.

아직 집까지는 멀었다.

하지만 산길을 걷는 것보다는 저수지를 돌아 논과 밭 사이로 걸어갈 때는 무섭지 않았다.

또 집이 가까워지는 이유도 있었다.

몇 분을 더 걸어 집에 도착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안방과 작은 방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마당에 들어서자 큰 소리로 인사했다.


“어서 와라!”

엄마가 안방 문을 열고 반겼다.

작은 방에서 동생들이 문을 열고 반겼다.


영길은

안방으로 들어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힘들었지?”


“아니요.”

밥 먹으며 영길이 엄마가 묻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영길이 사는 동네 사람들은 머리를 깎기 위해 읍내 가는 길에 있는 <학실 이발관>에 다녔다.

할아버지도 그리고 아버지도 모두 이 <학실 이발관>을 다녔다.

가끔

이발하기 위해 이발관에 가면 동네 어른들을 만나는 날도 있었다.




오늘 아침

영길은 학교 갔다 오며 이발하고 오라고 준 돈 1,500원을 엄마로부터 받았다.

수업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학실 이발관>에 들려 머리를 자르고 오면 되었다.


그날 오후

수업을 마친 영길은 학교 친구들과 축구시합을 했다.

그냥 축구시합도 아니고 돈내기 시합이었다.

지면 한 사람당 500원씩 내야 했다.

이기면 돈을 받아 분식집에 가 튀김이랑 라면을 사 먹고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영길 팀은 상대팀에게 지고 돈을 줘야 했다.

영길도 할 수 없이 이발할 돈 중에서 500원을 주었다.


“어떡하지!

이발하려면 돈이 부족한데?”

영길은 이발하고 가야 하는 데 부족한 돈 때문에 걱정이었다.

친구들도 이미 집에 간 상태라 누구에게 돈을 빌릴 수도 없었다.

영길은 읍내를 걸어 <학실 이발관> 앞까지 왔다.

창문으로 이발관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이발관 아저씨는

나이 든 할아버지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축구를 하지 말걸!”

이발관 앞에서 머뭇거리다 집으로 향했다.

학교에서 내기 축구 시합을 한 게 후회되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한참

집으로 걸어가던 영길은 다시 돌아서 <학실 이발관>으로 향했다.

다시

이발관 창문을 들여다봤다.

이발관 아저씨가 할아버지 머리를 감겨 드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발관을 지나

좀 더 걸어가면 <해룡 중고등학교> 정문이 있었다.

그곳까지 걸어간 영길은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학실 이발관> 앞에 온 영길은 이발관 안을 내다보며 망설였다.


“이발하고 가야 하는 데!”

이발관 앞에서 머뭇거리는 영길을 창문을 통해 본 이발관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왔다.


“이발하려고?

빨리 들어와.”

하고 아저씨가 말했다.

이발관 아저씨는 영길이 어디 사는 누구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번 아버지랑 이발을 하러 온 것도 알고 있었다.


“할 거면 얼른 들어와.

오늘은 일찍 문 닫을 거니까.”

하고 말한 아저씨는 문을 닫고 들어갔다.


영길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저씨!

저 500원이 부족한데 이발 좀 해주세요?”

영길이 용기 내 말했다.


“돈이 부족하냐?”

하고 이발관 아저씨가 물었다.


“사실은 축구시합 해서 지는 바람에 500원이 부족해요.”


“돈내기했구나!

내일 돈 더 가지고 와서 이발하면 되잖아?”

하고 아저씨가 웃으며 묻자


“오늘 꼭 하고 가야 해요!”


“왜?”


“엄마가

오늘 밤 할아버지 제사라고 돈 주며 이발하고 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내기 축구시합을 했냐?”


“죄송해요!”


“나한테 죄송할 건 없다.”


“아저씨!

이발 좀 해주세요.

다음에 500원 갚을 게요!”


“언제 갚을 건데?”


“돈 생기면 갚을 게요.”


“그걸 어떻게 믿어!”


“꼭 갚을 게요.”

이발관 아저씨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이발해줄 테니

오늘부터 일주일간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청소하고 가는 거 어때?”

하고 아저씨가 물었다.


“청소요?”


“그래.”


“네!

하고 가겠습니다.”


“안 오면 학교에 찾아간다.”


“네!”

그렇게 영길은 이발을 하고 집에 갔다.


머리를 자른 영길은

할아버지 제사상 앞에서 마음 편하게 절 할 수 있었다.




다음날부터

영길은 학교가 끝나면 <학실 이발관>에 가서 청소하고 집에 갔다.

첫날은 청소하는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둘째 날은

친구 만식 아버지가 이발하러 오셨다.


“영길아!

여기 취직했냐?”

하고 만식 아버지가 물었다.


“아니요!”

영길은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 청소하냐?”


“네!

그렇게 됐어요.”


“그렇게 되다니?”

영길은 만식 아버지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김 사장!

저 녀석 여기서 일하는가?”

만식 아버지가 이발관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니요!

제가 청소를 부탁했습니다.”

하고 이발관 아저씨가 대답하자


“그래?”


“이발관에 대해 일기를 써야 한답니다.

그래서

청소도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고 이발관 아저씨가 말했다.


“일기를!”


“네!”

하고 이발관 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만식 아버지는

영길이 이발소에서 청소하는 모습을 보고 가셨다.


영길은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는 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왠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하자

집으로 가는 길이 무섭지 않았다.

새까만 그림자도 저승사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영길이 머릿속에는 <학실 이발관>에서 만난 만식 아버지 모습만 생각났다.




영길 아빠는

아침 일찍 장에 갔다.

오늘은 돼지새끼 한 마리 살 계획이었다.


“형님!

잠깐 들어오세요.”

장에 가던 영길 아버지를 보고 이발관 아저씨가 불렀다.


“잘 지냈는가!”


“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를?”

장에 가던 영길 아버지는 이발관 안으로 들어갔다.


“커피!

한 잔 드릴까요?”


“그래!

한 잔 주게.”

이발관 아저씨는 종이컵에 커피를 한 잔 타 영길 아버지에게 주었다.


“사실!

영길이가 여기서 일주일 동안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뭐라고?”


“얼마 전에 영길이 와서 돈이 부족한 데 이발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돈이 부족하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축구 시합을 했는데 져서 500원을 주었나 봅니다.”


“이 녀석이!”


“그래서

이발을 해주고 일주일 동안 집에 가는 길에 청소를 하겠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발을 해주었습니다.”


“허허!

참 기가 막힐 노릇이군.”


“형님!

만나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발관 아저씨와 영길 아버지는 한 참 동안 이야기했다.


영길 아버지는

남은 커피를 쭈욱 들이마셨다.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니!

아주 잘했네.”


“네!

일 마치면 수고비는 드리겠습니다.

며칠만

모른 척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알았네!”


“죄송합니다.”


“아닐세!”

이발관을 나온 영길 아버지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좋은 경험이 되겠지!”

영길은 그것도 모르고 오늘도 학교를 마치고 <학실 이발관>으로 향했다.



영길은 운동장에서 공차는 친구들을 봤다.

당장 달려가 공 차고 싶었지만 꾹 참고 교문을 향해 걸었다.


“영길아!

내기 축구해야지?”

하고 이웃 마을에 사는 친구 영수가 물었다.


“아니!

안 할래.”


“야!

그럼 골키퍼는 누가 하냐?”


“다른 친구 시켜!”

하고 대답한 영길은 학교 교문을 향해 뛰었다.

자꾸만 공 차고 싶은 유혹이 머릿속을 채워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운동장에 머물면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약속도 어길 것 같았다.


"참아야지!

일주일만 참아야지."

영길은 열심히 <학실 이발관>을 향해 걸었다.


이발관 청소는 별 것 아니었다.

자른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고 그리고 물걸레로 청소를 하면 되었다.

처음에는 부끄럽고 힘들었지만 삼일이 지난 지금은 너무 재미났다.

이제 며칠만 청소하면 끝이었다.

이발관 아저씨는 영길에게 자장면도 두 번이나 시켜 주었다.

이야기도 많이 해주었다.


“넌!

꿈이 뭐냐?”


“저는 우주조종사가 꿈이에요.

아폴로 11호가 달나라에 가는 것을 보고 저도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럼!

열심히 공부해야지.”


“네!”


“아저씨는 꿈이 부자 되는 거다!”


“지금도 부자잖아요?”


“부자긴!

그냥 밥 먹고 사는 거지.”

이발관 아저씨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참는 것 같았다.


“이발사!

되는 것 어려운가요?”

하고 영길이 물었다.


“어렵진 않아!

열심히 기술을 배워야 가능하긴 하지.”

영길은 이발관에서 청소하며 이발사가 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저씨가 손님이 많은 날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었다.


“영길아!

이발사 되어 아저씨 죽으면 <학실 이발관> 물려받아라?”

하고 이발관 아저씨가 묻자


“제가요?”


“그래!”


“전!

꿈이 다른 데요!”


“알았다!

공짜로 물려줄까 했는데 다른 사람 찾아야겠다.”

이발관 아저씨는 영길과 자장면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과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꼭 하셨다.


“앞으로 시간 나면 와서 청소해라.

이발은 공짜로 해줄 테니까.”


“정말요?”


“그래!”


“감사합니다!

매일 와서 청소하고 갈 게요.”

영길은 다른 날보다 자장면이 맛있었다.

아저씨도 자장면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오늘은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즐거웠다.

산길을 걷는 데도 무섭지 않았다.

이제 이발은 공짜로 할 수 있다.

엄마나 아빠가 알아도 용서를 해주실 거라 믿었다.




늦은 시간

집으로 가는 데

논에서 개구리울음소리가 더 크고 시끄럽게 들렸다.


“저것들은 밤이 되면 왜 울까?”


'개굴개굴! 개굴개굴!'


넘어야 할 산길을 고개를 내밀며 쳐다봤다.


“오늘은 더 씩씩하게 걸어가자!”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그 마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두려움만 가득했다.

길가로 공동묘지가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정말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푸다닥!’

공동묘지 끝자락 어둠 속에서 새가 날아 같다.

갑자기 들린 소리에 무서웠다.

숨을 죽이고 한참 서 있었다.

영길은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걸었다.


“공동묘지, 도깨비불, 호랑이, 마녀, 산적, 귀신, 마녀, 악마 이런 말이 없으면 좋겠다.”

영길은 이런 단어만 생각하면 무섭고 가슴이 쿵쾅 뛰었다.

산에는

나무와 새들 야생동물뿐인데 몇 개 낱말만 생각하면 무서워졌다.


“낮에는 공동묘지에서 놀아도 안 무서운데 밤만 되면 무섭다니까!”

영길은 오늘도 그림자 친구와 함께 산길을 걸었다.

무섭지만 그림자 친구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넌!

영길이지?”

영길은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말을 걸었다.


“너도!

나처럼 진짜 사람이 되고 싶지?”


“아니!

난 그림자가 좋아.”

하고 그림자가 대답했다.


“그래!”


“응!"


“넌!

욕심이 없구나.”


“사람들은 욕심이 많지만 난 욕심이 없어.”

그림자는 욕심이 없었다.

그냥 주인을 따라다녀도 행복했다.


영길은 밤에 산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웃었다.

달빛을 받으며 몸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따라 하지 마라!”

하고 그림자를 보고 말한 영길이는

오른손 왼손을 뻗으며 권투 하는 흉내를 냈다.

그림자도 따라 손을 뻗으며 권투를 했다.


“따라 하지 말라고!”


“…….”

그림자는 대답이 없었다.


영길은 다시 발차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림자도 역시 발차기를 따라 했다.


“허허!

나랑 똑같이 따라 하는구나.”


“…….”


“넌!

내 흉내를 내며 사는 녀석이군.”


“히히히!

똑같이 따라 하니까 무섭지?”

하고 그림자가 웃으며 물었다.


“아니!”

영길은 마음이 편했다.

그림자와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어제는 산길을 넘어오며 무서웠는데 오늘은 덜 무서웠다.


“그림자야 고맙다!

항상 같이 다니니까 고마운 줄 몰랐어.

앞으로 좋은 친구가 되어 줘!”


“나도 고마워!

매게 말을 걸어 줘서 고마워.

또 달빛에 함께 걷게 해 줘 좋아.”

그림자도 자신을 인정하고 알아주는 영길이가 좋았다.


영길은 모처럼 편안하게 산을 넘어왔다.

산을 넘자 저수지가 보였다.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영길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속도를 냈다.




며칠째

영길이 늦게 오자 엄마는 걱정스러운지 한 마디 한다.


“오늘도 숙제하고 온 거야?”


“네!”


“형!

공차고 왔지?”

바로 밑 남동생은 지난번 학교에서 형이 친구들과 공차는 것을 봤다.

그 뒤로 형이 늦게 오면 항상 이렇게 물었다.


“아니!”


“그럼!

산에서 놀다 왔지.

만식이 형이랑?”


“아니라니까!

죽는다.”


“우에!”

동생은 놀리기까지 했다.

엄마에게 혼나는 형을 보고 자신만만해 보였다.


“너희 선생님은 집에도 안 가냐?

이렇게 늦게까지 널 공부시키게.”


“늦게 가요!”


“얼른 밥 먹어.”

차려놓은 밥상으로 가 저녁을 먹었다.

영길은 작은방으로 건너가다 부엌에서 칼 가는 아버지와 마주쳤다.


“안녕히 주무세요!”


“오냐!”

아버지는 영길이 늦게 오는 이유를 안다.

하지만

영길을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곧 혼내시겠지!”

마음속으로 아버지가 곧 혼내실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영길은 마음이 불안했다.

다시

안방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학실 이발관>에서 청소하는 것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그러면 그렇지!

학교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저럴까!”

엄마는 아들이 몹시 미웠다.

하지만

더 혼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다.

이발관 아저씨가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얼마야!

얼마를 안 주고 청소하는 거야?”

엄마는 속상한 지 물었다.


“500원!”

영길이 작게 대답하자


“내일 당장 같다 줘!”

하고 말한 엄마는 지갑에서 500원을 꺼내 영길에게 주었다.


“청소할 시간 있으면 공부나 열심히 해!”


“죄송합니다.”

영길은 고개를 숙이고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가서 얼른 자거라.”

하고 말한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영길은 안방을 나왔다.

작은방으로 건너가는 데 가슴이 후련했다.


6학년이 된 영길은 학교에서 중학교 지원서를 쓰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면담도 잡히고 어느 중학교에 갈 것인지 친구들도 고민이 많았다.

영광읍에는 남자들이 갈 수 있는 중학교가 두 군데 있었다.

여자중학교는 한 군데라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영길아!

너 어느 중학교 쓸 거야?”

만식이 물었다.


“모르겠어!

중학교 갈지 안 갈지.”


“왜?”


“돈이 없으니까.”


“그래.”


“난!

영광중학교 쓸 거야.

너도 만약 가게 되면 나랑 같은 학교 써.

금수도 같은 학교 쓰기로 했으니까.”

하고 만식이 말했다.


“알았어.”

영길은 원서 마지막 날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집안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서울 가서 취직하면 좋겠다!”

누나도 중학교 진학하지 못하고 3년 전에 서울로 취직하러 올라갔다.

영길도 서울 사는 누나에게 가면 취직하고 돈도 벌 수 있었다.


이발관에서 청소를 하며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또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영길이는 벌써 집안 걱정을 했다.


원서 마지막 날

영길은 일단 원서를 써냈다.

만식이랑 금수와 다른 중학교를 썼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학교에서 가까운 <학실 이발관>에서 아르바이트할 생각을 했다.


“원서 썼어?”

만식이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물었다.


“응.”


“어디?”


“난!

해룡중학교 썼어.”

학교에 걸어 다녀야 해서 영길이는 집에서 가까운 곳을 썼다.




영길이는

마을 친구들과 학교에 안 가고 산에서 몇 번 놀다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많이 혼났다.

특히

만식이와 둘이 학교 안 간 날도 많았다.

산에서 놀거나 만화 가게에서 책 읽으며 놀다 집에 간 적이 많았다.


“학교 가기 싫으면 농사나 지어!”

영길이 엄마는 언제나 공부하기 싫은 자식들에게 말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식이었다.

엄마 잔소리를 들으며 영길은 학교에 잘 다녔다.

결석해서 선생님에게 혼나기도 했다.

남아서 화장실 청소도 하고 매도 맞았지만 끝까지 다녔다.


다행히 영길도 중학교에 입학했다.

누나가 학교를 포기하고 서울로 가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아버지가 중학교 등록금을 만들어 오셨다.


“오늘 등록금 냈다!

영길아.”


“네!

고맙습니다.”

영길은 중학교에 가는 게 너무 좋았다.


친구들은 자전거를 사고 교복도 사놓고 벌써 중학교 갈 날 기다렸다.

하지만

영길은 아직 교복도 없다.

또 자전거는 더욱 살 형편이 안 되었다.


“아버지가 사주시겠지!”

영길은 아버지를 믿었다.

언제나

아버지는 아들 편을 들었고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영길은 그래서 마음이 편했다.


“영길아!

이 돈 가지고 가서 교복 사라.”

엄마는 장롱 속에서 돈을 꺼내 영길에게 주었다.

천 원짜리를 세워보니 2만 원이나 되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복을 사러 갔다.

다행히 몸에 맞는 교복이 있어 사들고 왔다.

영길은 눈물이 났다.

겨울 동안

엄마가 고구마를 팔아한 푼 한 푼 모은 돈이라는 것을 아니까 더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났다.

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한 누나 도움이 켰다.


영길도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교복을 입고 중학교에 간다.

동네 친구들과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학교에 가서 좋았다.


“누나도 중학교에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나가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서울로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날

누나는 영광터미널에서 외삼촌과 함께 서울로 갔다.

광주로 가서

그곳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간다며 아침 일찍 떠났었다.


공장에 취직한 누나는 엄마에게 돈을 조금씩 보내주고 있었다.

내 학비도 누나가 보내주었다.


“누나가 내 학비를 보내준 거구나.”

영길은 누나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열심히 공부해야지 하고 다짐했다.




중학교 입학식 날!

영길은 저수지 둑에서 만수와 금수를 만났다.


만식이와 금수는 집에서 중학교가 멀어 자전거 타고 학교에 갔다.

자전거 타는 모습이 부러웠다.


“<영광중학교>가 훨씬 좋아.

학비도 싸고 인마.”

만식이는 국립인 학교 이야기를 하며 영길이 선택한 사립학교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난 집에서 가까운 게 좋아.”


“누가 가자고 했어?”


“그냥!

내가 썼어.”


“너희 아버지도 <영광중학교> 나왔잖아?”


“그래!”


“그런데 <해룡중학교> 썼어!

바보 같이.”

만식이는 중학교도 같이 다닐 줄 알았다.

하지만

영길이 집 앞 중학교에 가는 바람에 서로 헤어져야 했다.


만식이는 중학교가 다른 게 너무 서운한 모양이다.

하지만

영길은 새로 생긴 <해룡중학교>가 더 잘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교를 선택했다.

사립이고 등록금도 비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영광중학교>는 걸어가기에 너무 먼 거리였다.

그래서

가까운 학교를 선택하고 싶었다.


영길은

중학교에 가서도 <학실 이발관>에 청소하러 갔다.

하지만

공부하라는 아버지 권유로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공장에 취직한 누나 덕분에

영길이는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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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ᆢ 이곳을 지나면 산길 입구에 공동묘지가 있고 산길로 접어드는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