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에 빠진 동화 159
시간이 지날수록 쌓여가는 눈은 아름다움을 하나씩 지워갔다.
"여기까지!
아름다운 세상은 여기까지 군."
더 이상 눈이 쌓이게 되면 위험할 것 같았다.
옷을 단단히 입고 장갑을 끼웠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이대로!
세상이 이대로 멈추면 좋겠다."
하얀 세상을 그대로 두고 싶었다.
차마!
빗자루로 눈을 밀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눈이 쌓이는 걸 보자.
이런 날이 또 언제 올까!"
나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하얀 세상을 지켜봤다.
"축복이야!
어머님 보러 왔더니 눈이 내렸어.
동화를 쓰라는 뜻이야!
좋아!
아주 좋아."
빗자루를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노트북을 켰다.
<눈 오는 날>!
산토끼를 잡으러 갔었다.
산에 토끼 발자국과 노루 발자국이 많았다.
산토끼를 잡기는커녕 내가 눈 속에 갇히고 말았다.
덫을 놔야 산토끼를 잡지!
산토끼를 몰아서 잡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무릎까지 차는 눈길을 한 걸음 걷기도 힘들었다.
나는 어리석은 아이였다.
그때
숲에 있던 산토끼들이 말했다.
"총을 들고 와!
아니면
덫을 놔야 산토끼가 잡히지.
맨손으로
산토끼를 잡겠다고 어리석은 녀석!"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알았다.
<눈 오는 날> 동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하얀 세상!
그 하얀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눈이 오는 날이면 가슴이 뛰었다.
하얀 세상의 왕자로 살아갈 수 있어 좋았다.
영원히 녹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햇살은 하얀 세상을 원치 않았다.
하얀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 지우개로 지우는 것 같았다.
"아니야!
나는 하얀 세상이 좋아.
빨리 지우지 마!
아니
눈을 조금 더 볼 수 있게 그냥 놔두면 좋겠어."
누군가에게 나는 말하고 있었다.
하얀 세상을 지키는 왕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하얀 세상의 공주에게 말하고 있었다.
동화에서
나올 때쯤이면 하얀 세상은 사라졌다.
뜨거운 햇살이 나를 반겼다.
"뭐 하냐!
눈 치우라니까."
거실에서 노트북 들여다보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한 마디 했다.
"네!
지금 치우러 가요."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깝다!
너무 아까워."
그냥 건들지 않아도 며칠 있으면 사라질 눈이었다.
"미안!
미안하다."
나는 내 손으로 하얀 세상을 지울 줄 몰랐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치우고 싶었다.
차에 쌓인 눈은 그대로 서울까지 싣고 가고 싶었다.
"앞이 안 보이겠지!
아니
구멍 두 개만 뚫을까.
그러면
서울까지 갈 수 있을 거야.
히히히!
사람들이 모두 사이코패스라 할 거야."
이런저런 생각에 한 참 마당에 서 있었다.
눈을 치우러 나온 게 아니었다.
어머니 잔소리를 피해 나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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