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박찬욱, 2009
박찬욱의 <박쥐>에서는 뱀파이어가 된 신부 그리고 여성이 다양한 쾌락을 욕망하게 되는 모습을 드러난다. 인물은 생명과 인간적인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과 갈등을 마주하게 되고, 이미 앞서 죽음을 맞이한 존재에게 영향을 받는데, 이러한 두 가지 공통점을 가지며 최종적으로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은 연극 <햄릿>과 닮아있다. <박쥐>에서 뱀파이어가 된 상현(송강호)은 태주(김옥빈)를 만나며 신부라는 신분에서 누릴 수 없었던 다양한 쾌락과 욕구를 향한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과정에서 상현은 태주를 향한 사랑과, 피를 갈구하는 뱀파이어로서의 합당한 욕망, 그리고 신부로서의 책임과 살인을 저지를 수 없다는 인간성 사이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데, 이렇게 상현이 뱀파이어로서의 자기 보존 욕구와 생명의 욕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가치 보존과 신부가 지녀야 할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은 연극 <햄릿>의 명대사로 익히 알려진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의 해석과 유사한 원리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원작에서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로 표현된 햄릿의 독백은 통상적으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해석되는데, ‘이대로냐, 아니냐’ , ‘계속 살 것인가, 순식간에 넘어갈 것이냐’, ‘복수할 것이냐, 아니면 현재의 치욕스러운 삶을 살 것이냐’ 등으로 번역 국가와 출처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지닌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이처럼 한 문장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일한 진실을 알고 있는 햄릿의 고민을 두 가지 가치 사이의 갈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죽음과 생존이라는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to be or not to be’는 단순히 정말로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 삶(생명)의 지속과 사망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된다. 반면, 이를 인간성 혹은 도덕성을 이행하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진실을) 밝힐 것인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만 간직할 것인가’의 문제가 되는데, 진실을 밝히면 권력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을 것이고, 진실을 숨긴다면 도덕성은 위배되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도덕성과 인간성 사이 선택의 질문이 된다. 따라서 생명을 보존하는 관점 대신 진실을 다루는 햄릿의 태도와 도덕성에 집중해 바라본다면 ‘to be, or not to be’라는 해당 문장은 ‘사느냐, 죽느냐’ 대신 ‘(진실을 밝히고) 죽느냐, (진실을 밝히지 않고) 사느냐’와 같은 방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햄릿>에서는 독백으로 나타난 이러한 생명과 인간성 사이 선택의 질문이 <박쥐>에서는 인물들의 행동과 말에서 드러난다. 뱀파이어가 된 후에도 살인만큼은 최후까지 보류하는 성현과 달리, 태주는 뱀파이어가 된 후 “뭐 어때 이제 사람도 아닌데”라며 인간성의 가치를 과감히 내려두고 피를 먹으려는 뱀파이어의 욕구를 채우려는 것에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뱀파이어의 입장에서 본다면, 살인은 피를 먹음으로써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필요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합당한 행동이며, 오히려 살인을 보류하는 것이 자신의 삶과 신체 보존을 향한 의무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의 인간성과 도덕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살인을 행하는 것은 엄격한 위법행위이자 도덕성을 배반하는 행위이며, 살인을 행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도리를 행하는 것이 되기에 인물은 두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박쥐>와 <햄릿>에는 인물들이 두 가치 사이의 선택과 갈등을 마주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햄릿>에서는 죽은 아버지의 혼령이 진실을 알려주는 유일무이한 존재이자, 사건의 발화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햄릿>의 죽은 아버지의 혼령과 같이 <박쥐>에서는 상현과 태주가 죽인 강우가 환상으로 등장해 두 인물의 심경에 영향을 주고, 최종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와 숨겨뒀던 진실이 밝혀지는 데까지 기여하는데, 이렇듯 두 작품은 죽은 존재에게 현존하는 생명과 같은 존재감과 영향력을 부여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리게 하며, 죽은 자들이 현존하는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가진다.
<햄릿>과 <박쥐>는 생명과 인간성 사이 선택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가치판단의 여지를 제공한다. 또한 두 작품의 중요한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한 햄릿, 그리고 상현이라는 한 특정 인물의 고뇌가 잘 드러나며, 해당 인물이 선인지, 악인인지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인데, 그들의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관객은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선택뿐만 아니라 그들을 향한 새로운 가치판단 또한 시도해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관객을 함께 사유하고 선택하며 영화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도록 이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