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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 나 Nov 22. 2023

네가 우리를 떠난 지 5년째가 되는 겨울이 왔다.

넌 내가 사랑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닮았었다. 작고, 유약한 겁쟁이. 산책을 나가면 호기심이 많은 넌 이곳저곳을 탐색했지만 이내 다른 강아지가 나타나면 내 뒤로 숨고는 했다. 작기는 또 얼마나 작은지 너를 한 손으로 안아 들면 콩콩 뛰는 너의 심장이 느껴질 정도였다. 따끈하고 보드라운 심장을 안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넌 나와는 달리 참 귀여웠다. 눈송이 같이 하얗고 복슬한 털, 까맣고 윤이 나는 눈과 코. 난 너를 사랑했다. 사랑의 이유를 굳이 찾자면 너를 사랑하면서 작은 나도, 유약한 나도 어쩌면 훨씬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에 나는 울지 않았다. 너의 의젓한 누나이고 싶었으니까. 네가 짖을 때면 누나는 너와 달리 의젓해서 짖지 않는다고, 널 놀려대던 내 말을 지키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죽기 전 며칠을 그 아픈 몸을 이끌고 현관 앞에 앉아있었다는 말을 마침내 들었을 때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네가 앉아있던 자리,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현관 앞 온기가 너무 시렸다. 그날부터 한동안 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겁이 날 때면 나한테 꼭 등을 붙이고 짖던 너의 몸 크기만큼, 내 등 너의 흔적이 따끔거려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상처도 없는데 자꾸 난 너의 등 크기만큼의 흉터를 갖게 된 것만 같았다.


너의 상실을 기억하는 건 차갑게 굳은 시간, 생명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 공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햇살, 물이 반짝이는 강, 너의 숨소리, 바람에 날리는 너의 털 같은 밝은 기억이 너의 죽음과 동의어였다. 잔인했다. 빛나고 윤택한 삶을 살았다면 이런 사소한 것은 기억에 남지 않았을 텐데.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이런 것이었겠구나. 고작 집 앞 좋은 풍경, 그 정도였겠구나. 세상은 아름답다는데 이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네가 사랑한 것이 초라한 나라 미안했다.


난 사람이 죽으면 생전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다는 말이 정말 싫어졌다. 일생이 기다림이었을 너에게 그곳에서마저 기다리라는 말을 하는 것은 너무 가혹했다. 언젠가 누워서 너의 눈을 보며 나중에 누나 죽으면 마중 나올 거야?라는 말을 내뱉은 내 자신이 싫었다. 네가 그 말을 잊었길. 그래서 넌 기다림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길.


어제 친구가 놀러 와 집을 치우다가 네가 가지고 놀던 인형의 자리를 옮겼다. 너의 흔적이 사라질까 봐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고 부득불 우겨 내 자취방으로 가져온 인형 말이다. 문득 네가 생각나는 날이면 난 그 인형을 너 인양 여기며 바라보곤 했다. 조금이라도 묻었을 너의 체취가 날아갈까 봐 빨래조차 하지 못하고 제대로 안지도 못하는 저 인형을 보면서 다시 너를 생각했다. 네가 떠난 지 5년 하고도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난 아직도 널 보내지 못했나 보다. 울지 않고도 널 그리는 것은 아직도 내게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글을 쓰면 나아진다기에 글로 이 마음을 내뱉는 나의 유약함을 넌 알 수 없길 바란다. 부디. 우리를 잊고 행복하길 바란다. 이 편지가 마지막으로 쓰는 편지가 되길 바란다.


추운 밤이다. 다정한 꿈을 꾸렴 나의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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