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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Jan 08. 2021

0. 조금은 진부한 지방직 9급 공무원 이야기

사람들은 당신이 공무원이 아닐 때에만 공무원을 좋아한다




 시작하는 글의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은 당신이 공무원이 아닐 때에만 공무원을 좋아한다'는 문장이 번뜩 뇌리를 스쳤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공시생 혹은 발령을 기다리는 예비 공무원이 있다면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사람들은 공무원이 된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 공무원을 시샘하는 사람은 있어도 공무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오늘로 4개월을 조금 넘겼다. 놀랍게도 그동안 나는 나를 아껴주는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일하느라 힘들지?'라는 위로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일례로 나의 이모는 내가 어디어디 주민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말씀드리자 '공무원 일 편하고 좋지?'라 답하셨고 우리 아빠는 내가 집에 내려갈 때마다 '일 힘든 건 없지? 회사원보다 공무원이 일은 훨씬 편하다.'라는 말을 자동재생한다.


 사람들은 정년이 보장되는 워라밸 꿀직장에 다니는 이들이 왜 동사무소에서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지 모르겠다며 본인이 낸 세금을 아까워한다. 나는 왜 딱딱하고 불친절한(그러나 실상을 까보면 그저 민원인의 똥꼬를 빨아주지 않았을 뿐인 경우가 대부분인) 공무원이 많은지 그 이유를 알고있다. 공무원이 천 명의 민원인에게 친절하면 그 중 한 명이 공무원 칭찬 게시판에 글을 올려주고 다음 인사발령 때 그 공무원은 기피부서로 간다는 것이 공무원계의 정설이기 때문이다. 천 번을 친절한 당신, 친절공무원 수당(대충 일이만 원쯤)을 받고 만 명의 진상을 만나는 부서로 가게 되리라.


 여기까지 읽고도 그래도 공무원이 사기업보다 낫다며 일침을 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공무원이 첫 사회생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회사원이 공무원을 폄하하는 건 괜찮은데, 그 역은 천인공노할 짓이 되더라. '사람은 누구나 각자가 지고 있는 짐이 제일 무거운 법이다'라는 흔한 힐링 문구조차 공무원을 위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젊은 애가 왜 이렇게 피해망상에 절어있냐고? 그건 아마 오늘 오후에 40대 남자 민원인에게 씨발년이라는 욕을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외모에 따라 범죄자인지 아닌지가 나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런 분위기를 풍기는 아저씨는 꼭 피해야한단다'라고 가르쳐주고 싶게끔 생긴, 조두순을 닮았던 그 아저씨에게 씨발년이라는 욕을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푸는 것으로 하고 이번 글은 수미상관 기법에 따라 주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공무원인 당신이 예쁨받을 수 있는 것은 공무원 시험을 합격한 직후, 딱 그때뿐이라는 걸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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