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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Jul 21. 2022

2.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하나요?

비수도권 지방직 공무원이 중경외시 정도면 먹고 살만할까? 궁금하시면 클릭


 원래 쓰려고 계획했던 글은 이게 아니었는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한 바람에 즉흥적으로 글 하나를 토해내게 되었다. 이 글은 배도 크고 배꼽도 크다. 본제목과 부제목 두 마리 토끼 모두를 놓치지 않는 글을 목표로 하고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았던 기사의 링크를 첨부한다. 나에겐 이전 직장이 직장인 만큼 기사 제목에 '공무원'이 들어가면 꼼꼼히 읽는 병이 있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2072017004559213


 사건의 요는 인사이동에 불만을 품은 모 공무원이 부모님을 대동해 항의하자 인사과가 그의 '떼쓰기'를 받아줬다는 것이다. 아니, 이러다 너도나도 부모님이랑 같이 구청장한테 찾아오면 어떡할 거냐고? 인사과는 알고있다. 일을 그럭저럭 열심히 하는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논외로 하고, 위와 같이 어느 과에서도 환영하지 않을 소수의 뺀질이를 위해 '대신 기피과에서 일해줄' 소수의 호구가 늘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소수의 호구였다.






 잠깐 딴 길로 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공시생 분들 및 예비 공무원 분들, '지방직 공무원한테 학벌이 중요한지' 궁금하시지요? 저는 반반이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어쩔 땐 지금이 쌍팔년도인가 싶을 만큼 중요하다가도 어쩔 땐 개뿔 쓸모가 없다고요. (당연히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남을 밝힙니다.)


 내가 근무하던 시는 신규 임용식날 부시장과 구청장이 임용자들의 이름과 나이, 대학교와 학과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하나하나 이름을 불렀다. (이걸 지역신문에서 아직까지 물어뜯지 않은 걸 보면 공무원들 참 얌전하다.) 내가 1년 동안 일하며 학교가 어디냐는 질문을 열 번 남짓 받았으니 1년간 만난 동료들의 수를 분모로 두고 나눠보면 그 빈도가 어땠는지 다들 짐작이 가실 것이다.


 근데 여러분들 이런 이야기 다 필요없고 궁금한 게 따로 있으시죠?



 20대 중경외시생인 저는 기피부서의 열심히 일해도 노고가 돌아오지 않는 계로 발령받았습니다.



 내가 아주 오만한 학벌주의자라고? 사람이 '네 학교가 중경외시이니 좋은 부서에서 데리고 갈 거다'라는 말을 들으면 티는 내지 않아도 기대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내 모교에  안 좋은 쪽으로 관심이 많은 몇몇 사람들에게 시달렸었기에 이러한 스트레스에서 나를 구원할 방법은 요직부서 발령 말곤 없어보였다. 아니, 이것마저 없으면 나는 후려쳐지기만 하는 학벌이 된다는 표현이 적확하겠다.


 문제의 기피부서 발령 이후 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시름시름 앓으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고민하는 데에 쏟았다. 그리고 7월의 무덥던 어느 날, 나의 전전임자를 1분 정도 스쳐지나간 경험 이후로 나는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그 답을 얻게 되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내 존재 자체였달까.


 나의 전전임자 A는 B612 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도 너를 그곳에 보내겠다고 하면 조종사에게 양이든 벽돌이든 상관없으니 그림이나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한 뒤 줄행랑을 칠 업무를 하고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A와 잠깐 마주친 적이 있는데, 그때 A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A의 인상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근사근함을 구현화해놓은 듯한 인상과 착하고 얌전하게 느껴지는 어투. 환불원정대는커녕 환불하러 갔다가 옷을 한 벌 더 사올 것 같은 분위기.


 나는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퍼즐을 다 맞추면 내가 생각한 정답이 나올까 두려워 외면하고만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 찍혔구나. 이상한 곳 보내도 아무 말 못하는데 책임감은 있는 거 알아서. 이게 내 피해의식이라 느껴진다면 나는 내가 살면서 '도를 아십니까'에 얼마나 자주 붙잡혔는지, 음, 내 입으로 말하기 민망하지만, 착하다는 칭찬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소심하게 털어놓을 수 있다.


 사실 나는 인사고충과 희망보직을 제출하는 기간에 '지금 일하는 주민센터에 계속 남아있고 싶다.' 내용의 글을 썼음에도 근무지 이동을 당한(!)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한 기간이 10달밖에 안 되었기에 나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전혀 무리한 게 아니었다. 인사과는 그냥 이걸 무시하고서라도 나를 개고생시키고 싶었던 거다. 내가 면직처리 되기 1주일 , 행정과의 인사팀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 ㅇㅇ입니다.' 'ㅇㅇ씨. 다음 달에 수시발령이 있는데 그때 다시 주민센터에 보내줄  있으니까 다시 생각해봐요. 사람은 다시 보내면 되는 거고요... 공직에 들어오기 위해 했던 노력이 아깝잖아요.'


 여기서 내가 냅다 '네 다시 주민센터로 보내주십시오!!'라 했으면 나는 영원한 해피엔딩을 맞았을까? 흠.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쟤 구청에 올라간 지 한 달 만에 면직하겠다고 쌩난리를 피워서 다시 주민센터로 온 거래.'라는 소문이 전방위적으로 돌 것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러나 나는 '폐급'의 삶을 원하지 않았고(나는 너무 젊었다!) 계속 버텼으면 기피부서로만 뺑뺑이를 돌렸을지 아닐지 내 젊음을 담보로 잡아 시험해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20대 초반을 우울증으로 날렸다가 이제야 사람구실을 하는 중인데 착하고 책임감 있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배우는 나를 땜빵용 쯤으로 취급하는 조직에 나의 시간과 능력을 바치고 싶지 않았다. 고생하는 만큼 많이 배울 수 있어 연봉 높여서 이직이라도 가능한가? 그것도 아니고 잠깐 편한 곳 보내줬다가 다시 지옥으로 끌고가는 쳇바퀴에 태우기밖에 더 하나.






 그럼 다시 제목으로 돌아가보겠다. '내가 뭘 어떻게 했어야 하나요?' 이건 답 없음.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는. 인사과는 딱 봐도 빽 없고 순해서 아무 불평 못하게 생겼는데 일은 열심히 하는 공무원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그리고 '비수도권 지방직 공무원이 중경외시 정도면 먹고 살만할까?'. 뭐 이건 '스카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개인의 가치판단에 달린 문제겠지만 나는 후려치기밖엔 먹은 게 없다. 안 그래도 내가 일을 하면서 친해졌던 모 주무관께만 이 사실을 털어놓았더니 그 분이 그러시더라. '서울대는 되어야 좋은 부서 보내준다'고. 다들 그렇다니까 참고하십시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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