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 대학은 중경외시 라인입니다.
인사담당자에게 면직 의사를 전달하고 면직 공문이 내려오기까지 걸린 3주라는 기간 동안 동료들이 나를 붙잡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한 논리는 '공부한 거 아깝지 않냐', '이게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데'였다. 음, 나는 내가 공부를 특출나게 잘했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공부를 못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다들 내 대학이 좋은 대학이라면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느라 집안의 기둥 하나는 날려먹은 줄 알더라.
그러니까 내가 입을 꾹 다문 것이다. '나 열심히 공부해서 이 시험 붙은 거 아니다'라는 말을 해봤자 '중경외시 주제에'라는 뒷말이 나왔으면 나왔지 믿어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 문제에 대해선 할말이 많이 남았으나 학벌주의자로 몰릴 게 두려워 내 안의 가려운 부분을 계속 남겨놓고만 있는 중이다. 참 신기한 건 나는 일을 하면서 내 대학을 먼저 말한 적이 한번도 없고, 다른 사람의 대학을 먼저 물어본 적도 한번도 없고, 내가 당한 것은 '중경외시 후려치기'뿐인데 학벌주의자로 몰릴까 전전긍긍해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는 거다.
나는 실제로 '서울대도 9급 한다' '이화여대도 9급 한다'는 말을 각각 다른 사람에게서 육성으로 들은 적이 있다. 중경외시는 좋은 대학이지만 이 시험이 얼마나 경쟁률이 높은 시험인데 어떻게 이걸 포기할 수가 있느냐는 충고는 귀에 피가 나도록 들었다. 내가 듣는 말이 이럴진대 중경외시생인 내 '주제'에 지방직 9급을 수월하게 붙었다는 고백을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음, 다시 한번 침묵을 유지한 나 스스로를 칭찬한다.
그러나 침묵의 무게를 견뎌내기로 한 내 선택의 책임은 엉뚱한 곳에서 날아왔다. 사람들은 내가 시험에 쉽게 붙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기 싫으니까 본인의 입맛대로 다양한 이미지들을 나에게 갖다씌운 것이다. 우선은 '네 부모님 얼굴 어떻게 볼래?'라는 소리를 들었다. 유감이지만 저희 어머니는 제가 정말 너무 착하게 자랐다고 주변인들께 자랑을 하고 다니신다는데 제가 부모님 얼굴을 보지 못할 이유가 뭔가요? 그리고 제가 부모님 두분 중 한분이라도 돌아가셨으면 어쩌시려고 그런 소리를 하시죠?
다음은 'ㅇㅇ님도 공무원이 첫 사회생활이죠?' 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내가 회사생활의 쓴맛을 겪지 못해 고작 공무원 일이 힘들어서 나간다고 생각해야 속이 편한 40대 아저씨였다. 여러분 제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요? 이 분 저한테 자기가 하던 업무 하나를 넘겼답니다. 그 업무가 어떤 업무였냐면 같은 계에 있다가 인사 이동을 하신 분이 저에게서 업무분장이 이렇게 저렇게 바뀌었다는 얘길 듣자마자 '히익 그거 민원 많은데'라고 놀라는 업무였어요.
마지막으로는 집이 잘 사는 은수저 취급을 받았다. 이 얘기는 한 문단으로 끝낼 수 없어 다음에 좀 더 자세하게 풀 예정이다. 사실 나는 위와 같은 취급을 받고 나서 나의 동문 여러분들껜 죄송하지만 중경외시는 개좃밥(죄송합니다.) 대학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중경외시 졸업한 20대 후반이 9급 공무원 관둔다고 여러 사람이 '쟤는 집이 잘 사나 봐'라는 소문을 퍼뜨릴 정도면 나는 그냥 내가 공부를 더럽게 못했다고 믿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논개의 심정으로 제 한몸 바쳐 그곳에서 '중경외시 주제에 시험 쉽게 붙었댄다ㅋㅋ'라는 뒷말이 돌 걸 막아냈으니 저의 이 노고를 에브리타임에서 치하해주시기 바랍니다. 브런치에라도 밝히니 속은 좀 시원하다. 나는 이 시험을 쉽게 붙었고 나이도 젊었던 만큼 빨리 그만둘 결심을 할 수 있었다고. 아, 그리고, 공무원 수험 카페에 '학벌이 중요한가요?'라는 질문에 '대학교 질문받은 적 한번도 없습니다'라는 댓글 남기신 현직분들 대체 어디서 일하시는 거냐고, 나도 거기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