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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하루살이 Sep 25. 2024

표 안나는 일

내 눈에만 보이는 것

에어컨이 휴식기에 들어간 지 며칠 되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여름 내 꽁꽁 닫아두었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도 된다는 뜻이다. 바깥공기를 기꺼이 집안으로 소통하도록 두어도 상관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지난여름의 일상을 생각해 보자. 아침부터 볕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볕이 들기 시작하는 쪽 블라인드부터 차례로 내리고 바깥공기를 차단시켰다. 한낮이면 창문까지 닫고 철저히 바깥공기를 차단시켰었다. 이제는 공기가 달라졌다. 반갑게 바깥공기를 기꺼이 집안으로 맞이한다.


온 세상을 덮었던 강렬한 열기와 습기가 물러갔다. 꼿꼿이 제자리에 서서 그 무서운 기세의 열기를 막아 에어컨의 공간과 분리했던 창문이다. 여름 내 반쪽만 열고 환기시켰던 나머지 창문도 활짝 열었다. 그랬더니 닫혀 있었던 창문 사이와 창틀에도 그 갇혀있던 시간만큼의 먼지와 거미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열어보지 않아서 몰랐던 공간의 모습이다. 내 눈에 띈 이상 그냥 있을 수 없지! 오늘은 방충망을 청소하기로 하자.


매일매일 닦아내는 바닥 먼지를 청소하고는 일단 방충망을 먼저 뜯어 먼지를 털어냈다. 욕조에 비스듬히 세워두고 먼지떨이로 쓸어내리면 욕조만 청소하면 되니까 간단히 청소 완료이다. 첨엔 번거롭게 물청소를 하느라 진땀 뺐었는데 어느 날 터득한 이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는 번거로움이 사라져 좀 더 자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다음 창틀을 닦아내곤 다시 방충망을 끼운다. 오래된 집의 오래된 방충망은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내 눈에만 보이는 깨끗한 바깥 풍경~ 다른 사람 눈엔 표도 안 날 일이지만 내 눈에는 분명히 보인다. 방충망 사이사이 작은 먼지만 걷어내어도 이리 시야가 환해지는구나~! 기분까지 상쾌해진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집안일이란 것이 참으로 끝도 없고 힘들인 만큼 표도 안 난다. 소리소문 없이 가족들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해 주는 기본이 될 뿐이다.


하루하루 삼시 세 끼를 챙기고, 하루 사이 쌓인 먼지를 닦아내고, 깨끗하게 빨래를 해서  옷장을 채워놓는다. 가끔은 녀석들 운동화나 가방도 빨아야 하고 레인지 주변도 청소해야 한다.  매일 하는 일 말고도 철 따라 준비해 둘 것들도 계속 생긴다. 계절이 지나가니 곧 옷장 정리도 해야겠구나. 여름옷을 들여놓고 긴 옷들을 꺼내놓아야 하고 내년에 작아지면 못 입을 옷들은 따로 모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간단히 몇 가지 나열하기만 했는데도 벌써 몇 가지인 거야? 세부로 들어가서 매 끼니 준비를 나열하면 또 어떨까?ㅎ


나만 하는 일도 아닐 텐데 나만 하는 양 느껴지기도 하는 일. 그게 바로 집안일일 것이다.  너무 많은 일 하는 거 아냐? 투정 부려봐야 소용없다. 그게 모두 '기본'밖에 안 되는 일들이다.


하지만 오늘은 기본을 해놓고 생색 좀 내어보고 싶다. 그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기본이 처리되지 않을 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 이 정도면 생색 좀 내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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