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날 보고 두 팔 벌려 다가온다면 난 가슴이 뛸 것 같다. 그 행위는 상대가 날 반갑게 맞아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당연히 그럴 것이란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가령 시댁에 방문할 때면 문 앞에 나오셔서 두 팔 벌려 "아이고 어서 와라. 이쁜 래미들~~~"이라고 손주들을 환영해 주시는 우리 어머님을 생각하면 알 수 있다.계산이 붙지않는 자연스런 행위이다.
작은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버스주차장에서 한 아주머니(할머니)께서 우릴 보고 두 팔 벌려 환영의 뜻을 표하신다. "아이고~~ 이렇게 많이 컸어~~~"하시며.
난 두어 발짝 뒤에서 작은 아이를 따라가다가 그분과 지근거리에 와서야 누구신지 알아차렸다. 아니 목소리를 듣고 알아차린 거 같다. 바로 엄마 살아 계실 적에 우리 집에 오셨던 엄마의 요양 보호사님이시다. 만남이 반가운 사이란 뜻이다!
그 보호사님을 생각하면 너무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늘 나에게 잘 대해주셨는데 어리숙하고 불분명한 일처리가 내겐 좀 거슬려 우리 집에 드나드시던 시기에 내가 살갑게 대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계속 맘에 걸렸었다. 어르신께서 손수 요양 보호 일지를 기록을 못 하셔서 내가 대신 써드려야 하는 조금은 귀찮은 일을 내가 감당했기에 그랬던 점도 있었다. 보호사님은 그런 부분에 미안해하시며 내게 더 잘해주시려 노력하셨었다.
신혼이었던 그때 신혼방 청소까지 해주셔서 내가 난감함을 표했던 일도 있었다.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보이게 된 불편함이 여과 없이 표출되기도 했었다. 그러지 말아 달라 부탁했음에도 반복되니 짜증으로 표현되었던 거 같다.
우리 집에 오시는 보호사님께는 엄마를 케어하시는 일은 부탁드리지 않았다. 엄마를 돌보는 일은 내가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 간단히 집안 청소만 부탁했었다. 아주머니께서는 레인지도 닦아주시고 현관에 계단까지도 청소해 주시며 일지를 부탁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셨던 거 같다.
아주머니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시게 된 후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 어느 날. 난 죄송했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셨다. 그 마음도 감사했다. 그 뒤론 마주침이 반가움으로 변했고 몇 차례 우연한 마주침이 있은 후, 근래 서로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오늘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근데 이상하지? 며칠 전 내가 아주머니를 요즘 통 만날 수가 없다고 스치듯 생각한 적이 있는데 오늘 마주친 것이다)
아주머니께서 우리 집에 드나드실 적엔 큰아이밖에 없었는데 아무래도 큰 아이로 착각하신 모양이다. "이렇게나 많이 컸어~~"의 대상은 큰 아이인데...난 아까 경황이 없어 잘 설명드리지 못했는데 얘가 둘째고 첫째는 6학년이라고 말씀드릴걸 그랬다.
인사하고 돌아서려는데 지갑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셔서 작은 아이에게 쥐어주신다. 너무 죄송하고 고마웠다. 그냥 거절하려다 받아 들게 뒀다. 귀한 용돈이다.
살다 보니 '돈'만큼 마음을 표현하는 적절한 것이 없음도 알게 되었다. 벌써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건 마음에 없는 행동이다. 머뭇거림도 같은 맥락이다. 기꺼이 내 주머니를 털어줄 수 있는 사이가 찐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귀한 마음을 오늘 버스 정류장에서 받은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분들이시다. 우리 집을 거쳐가셨던 여러 요양보호사님들 얼굴이 떠오른다. 잘들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