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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공유하는 시간

by 날마다 하루살이

옆집에 새로 알게 된 친구(?)가 산다. 내 나이 오십에 새로운 사귐을 시작한 것이다. 그 친구는 나보다 한참( 10살은 족히..) 나이가 어리다.

글 쓰다 톡을 간단히 해서 확인해 보니 띠동갑이란다.. 12살 차이..ㅎ

내가 예전에 과외했던 남학생과 결혼을 해서 같이 살게 되었으니 나의 제자뻘이 되는 사이이다. 처음에는 서로 우연히 인사하게 되면서 날 "선생님"이라고 불렀었다. 남편의 선생님이었으니 적당한 호칭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 불렀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의 마주침은 두 번이 되고 두 번은 세 번이 되고... 어느 때부터 날 "언니"라고 편하게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그 집 아이들(초등학생) 공부를 내가 봐주게 되면서 더 왕래가 짙어졌다.


그녀는 내게 가끔 농사짓는 먹거리를 나눠 주기도 하고, 여행 갔다 오면 선물도 사다 주고, 솜씨를 발휘해 만든 반찬도 가끔 가져다준다. 나이도 어린데 이것저것 잘도 만들어 먹는다고 생각했었다. 특히 이번 봄에는 두릅을 튀겨다 주었는데 어찌나 바삭하고 맛있던지 어찌 만드는 것인지 물어보고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당장 전화해서 묻고 방법도 알아냈다. 물론 궁금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음식을 나눠준 사람에 대한 최고의 칭찬을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보내준 음식이 너무 맛있다는 인사 이상으로 더 좋은 고마움의 표현을 나는 알지 못한다. (방법을 배웠지만 내가 실행했을 때도 결과물이 같게 출력될지는 모르는 일이다.ㅎ)


여러 가지를 얻어먹고살다 보니 이 쪽에서도 그냥 따박따박 얻어먹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도 가끔 먹거리를 나눠주고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밥도 나눠주고 카레며 돈가스도 가끔 나눠줬다. 고마움의 답례였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은 내가 전에 겪었던 반응과 비교해 좀 싱거웠다.


예전에 타지로 이사 가기 전까지 가까이 지내던 아들 친구 엄마는 뭘 해서 나눠주면 너무 맛있다며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아 나눠주는 입장에서 아주 그냥 신이 났었다.
"멸치 볶음이 너무 맛있다며 애 아빠랑 숟가락으로 푹푹 퍼서 그 자리에서 다 먹었어요~"
"○○이 엄마 김밥은 들어간 것도 없는데 너무 맛있어요~"
"○○이 엄마, 동그랑땡에 뭐뭐 넣는 거예요? 제가 먹어 본 거 중에 제일 맛있어요~"
"○○이 엄마, 굴밥에 숙주를 넣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요~!! 아빠도 맛있데요!"
"○○이 엄마, 오늘 알려준 데로 감자 볶음 했어요. 완전 성공이에요~!"

이런 싱싱한 반응을 듣다가 무던한 반응을 마주하고 보니 내 안에서 무언가 상실감을 느끼는 거 같았다. 상대적 박탈감이었다. 만남이 계속될수록 난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처음 아이들 공부를 시작했을 땐 학습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눴지만 내가 권하는 방법을 따라주지 않는 그녀 나름의 확고한 교육관에 내가 더는 이야기를 덧붙일 수가 없었다. 아이들 학습에 관한 이야기는 진전되기보다 제자리에 머물렀고 나는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보면 어느새 에너지가 바닥이 나는 경험을 두어 차례 한 다음부터는 이런 시간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 정례행사라도 되듯이 날 불러서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언니, 내일 커피 한 잔 할까요?

제가 커피 내려서 가져갈게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면전에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늘도 오랜만에 같이 밥을 먹자하여 점심을 함께 먹고 왔다.

"언니, 우리 담에는 쌀국수 먹으러 가요. 저기 마트 옆에 새로 생긴 쌀국숫집이 있는데 괜찮더라구요~"

"그러자~ 담엔 내가 살게~!!"


무심결에 답해버렸다.

만남이란 또 이렇게 이어질 수도 있구나. 날 편히 좋게 봐주는 것이 고마우면서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썩 내키지 않아 적당한 선을 지키려 함에도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도 있는 거구나. 이런 것이 사회생활이란 것이겠지.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데 인간관계는 맺어야 한다.


오늘도 그녀와의 시간을 나누고 난 좀 '쉬고 싶다'는 피로감을 느꼈다. 집으로 바로 오고 싶었지만 그녀가 집 가서 커피 마시고 가자는 제안에 또 거절하지 못했다. 그녀가 타 준 커피를 마시고 그녀의 이야기에 맞장구도 쳐주고 조용히 겉옷을 챙겨 입고 그녀 집을 나오려는데 그녀가 묻는다.

"언니, 집에 가서 뭐 할 일 있으세요?"


아니.. 할 일 보다.. 좀 쉬고 싶어서...

(차마 입밖으론 내지 못한 내 마음)


누군가와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나누는 일이다. 그 에너지가 서로 교환되면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사이는 건강한 관계일 것이다. 난 오늘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바람에 휴식이 필요한 몸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살아가는 한 부분이리라.


사람을 만날 때 정신적, 정서적으로 충분한 교감을 얻지 못하면 금방 시들해지는 편이다. 뭔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좋다. 나눔의 대상이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이고 조금은 더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라면 좋겠다.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같이 맞장구쳐줄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맞장구 쳐주는 상대방과 그런 이야기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에 이르자 어느 날엔가 좀 슬프기도 했다.


그리하여 속 편한 관계, 나를 잘 알아주는 오랜 친구들, 더하거나 뺌도 없이 나를 표현해도 되는, 다른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을 찾게 되나 보다. 그런 사이가 가까이에 살았음 좋겠다. 예전 친구들이 그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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