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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맞는 친구가 정해지는 나이 초6

너의 성장 과정

by 날마다 하루살이

집으로 큰아이의 친구들이 가끔 놀러 온다. 내게는 소중한 시간이며 설레는 시간이기도 하다. 뭘 소소하게 요구하거나 일상의 사소한 사건들을 조잘거리는 녀석이 아니라서 친구들이 집에 오는 날은 내가 들뜨는 날이다. 녀석에게 '엄마 노릇'을 해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은 거 같아서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생일 초대를 하라 해도 싫다, 졸업식에 엄마가 식당 예악해주마 해도 싫다.. 요즘 녀석과의 대화 소재 찾기가 어려워 친구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난 신이 난다.


오랜만에 오늘도 한 녀석을 현관문 앞에 세워두고는 빼꼼 문을 열고 묻는다.

"엄마, ○○이 지금 여기 있는데 집에 같이 있어도 돼요?"

과외하고 있는 시간이어서 조용히 있으라고 당부하고 녀석들을 집으로 들였다. 과외 수업을 마치고 나와 확인해 보니 또 다른 친구 학원 스케줄 때문에 중간에 시간 때우러 우리 집으로 왔던 것이다. 그 친구 학원 끝나면 모여서 같이 놀 거란다.


저녁 시간이 다가와 뭘 좀 먹이고 내보내고 싶었다. 요즘 친구들과 만나면 거의 편의점에서 라면으로 간단히 때우고 몰려다니는 것이 내심 아쉬웠던 차였다. 머릿속을 마구 굴려본다. 냉장고에 간단히 차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까...

'오, 예~~ 어제 만들어 둔 카레가 잔뜩이지~~!'

일단 녀석 친구에게 카레를 권해보았다. 먹겠다고 하니 또 우찌 기분이 좋던지!(우리 집 녀석 혼자였음 당연히 괜찮다고 했을 것이 뻔하다) 레인지에서 막 꺼내 먹으려는 찰나 녀석 중 한 녀석의 폰이 울린다. 스피커로 통화를 하는데 그 내용이 여과 없이 다 들린다. 두 녀석 모두 매우 난감해하는 대화가 이어진다. 사태를 보니 별로 같이 놀고 싶지 않은 친구인데 자꾸만 끼워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녀석들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 눈치다. 요리조리 핑계를 대어보는데도 그쪽에선 끝낼 줄을 모른다. 그들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냥 같이 놀아~~"

라고 성급하게 참견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두 녀석이 기다리던 다른 친구에게도 전화를 한다. 녀석들의 표현으로, emergency 란다! 아무래도 다들 꺼려하는 친구임에 틀림없다. 아이들의 질서는 아이들이 만들어 갈 것이다 섣불리 참견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 세계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듯 보였다.


잠시 후 현관문 앞에 인기척이 들리더니 두 녀석이 또 들어왔다. 새로 온 녀석들에게도 카레를 권하니 흔쾌히 먹겠다고 해서 내어주었다.

"모두들 한 수저씩 맛봤지? "

"네~"

"우리 집에서는 한 번 먹고 맛있다고 말해주는 게 국룰이야~!!"

"아, 네.. 맛있어요~!!"

돌아와 설거지하는데 또 들리는 소리..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맛있다~!"

내게 행복한 순간이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할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여러 번 같이 놀자고 제안했던 친구에게는 거절의 뜻을 확실하게 하고 지네들끼리는 죽이 잘 맞아 시끌벅적이다! 여기 남은 녀석들 다섯은 서로 맘이 맞는 모양이다.


기회다! 우리 집 녀석에게 여러 번 당부했지만 진전 없던 과제를 풀어놓는다.

"아줌마가 한 가지 제안할 거니까 잘 들어봐~

졸업식 날 말이야. 다 같이 모여서 점심 먹을 거잖아.

미리 식당을 예약해 두는 것이 좋을 거 같지 않아?"

"아, 네.. 그럴게요~!!"

아~~~~ 우리 집 녀석에게 열 번 스무 번 말해봐야 소용없던 일이 단번에 통과되었다!

"우리 A식당 가자"

"국밥 먹는 건 어때?"

"국밥집은 예약 안 해도 될 거 같아"

"피플 돈가스는 어때?"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들어갔다 한다. 일단 안심이다. 그 뒤는 저희들끼리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녀석들끼리는 어울리기에 괜찮은 모양이다.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판단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닐 것이다. 본인의 의사대로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내 맘에 들어오는 친구는 분명 이유가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릴 때 어느 선을 지켰던 친구를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만나더라도 그 선을 넘어 내 품으로 들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내가 가까이 지내고 내 품 안에 품었던 친구는 이유가 있다.

1m 거리에 둘 친구, 2m 거리에 둘 친구, 아니면 10m 거리에 둘 친구.. 적당한 선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녀석도 그 선을 서서히 인식하며 자라고 있을 것이다. 녀석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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