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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인연으로

by 날마다 하루살이

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서 새해 인사를 건넨다. 가족들끼리 나누는 인사는 늘 그렇듯 당연한 듯 편안하다. 당연함은 모르는 새 시큰둥해질 수 있지만 가장 편안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처음으로 먼저 새해 인사를 건넸다. 매번 톡으로 날아오는 새해 인사에 답을 전하던 몇몇 친구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넸다. 왠지 모를 뿌듯함으로 지난해 마지막 날을 보냈다.


가끔 잊지 않고 안부를 물어주던 친구

엄마를 얼마 전 떠나보낸 친구

엄마의 치매로 힘들지만 잘 견디고 있는 친구

가까이 살다가 이사 가는 바람에 그리움이 커진 친구

나를 형님이라 부르는 우리 동서


안 하던 짓을 하곤 혼자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어찌 보면 너무도 흔하고 지금 시기에 너무도 평범한 인사다. 요 며칠 브런치 작가님들 글에서도 수없이 오고 갔던 인사였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말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요 며칠이다.


이번 연말에는 뜻밖의 새해 인사를 두 명에게서 받았는데, 한쪽은 의외여서 당황스러웠고 다른 쪽은 가슴이 환하게 밝아오는 인사였다.


전자는 매일 마주치는 마트 점원이었다. 늘 무뚝뚝한 표정에 일상이 하나 재미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마트 계산대에서 날 마주하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난해 마지막날 내게 영수증과 카드를 건네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순간 반갑기도 하고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아무도 모르는 미안함도 슬그머니 찾아왔다. 나는 그런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잠깐의 인사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후자의 반가운 새해 인사는 늘 다니던 산책길에서 마주치는 자그마한 마트의 주인아주머니께서 건네주신 인사였다.

새해 두 번째 날 아침, 어김없이 난 그 마트 앞을 지나고 있었다. 항상 문을 열어두시고 그 앞에서 오며 가며 일 보시다가 날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시던 분이었다.


사실 서로 반가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기까지 오랜 마주침의 연속이 있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마주치던 눈인사가 밝게 건네는 인사로 이어지기까지 수많은 눈 맞춤이 지나갔었다. 우린 어색함을 뒤로하고 서로에게 다정해지기로 무언의 약속을 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가게 문을 닫고 계시게 되었다. 그 안을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계신지 안 계신지 날 또 보고 계신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쌀쌀해진 가을 이후 아주머니를 마주치는 날들이 드물어졌고 한겨울이 된 이후론 거의 뵙지 못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생각했다.

'아주머니께서도 날 궁금해하실까?'


그러던 날들이 이어지던 새해 둘째 날이었다. 그날엔 내가 가게 앞을 지나는 그 순간 다른 손님과 마악 인사를 나누고 들어가시려던 찰나였다. 난 오랜만에 마주친 아주머니가 너무 반가웠지만 일부러 불러 세우기엔 조금은 어색한 사이란 생각에 그냥 지나치려고 하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아주머니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아주머니께서 문을 다시 열고 나오시며 내게 인사를 건네셨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어떤 인사말을 건네주셨는지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반가웠다. 아주머니께 밝은 미소로 나도 인사를 건넸다. 내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은 사람으로 움직일 수 있다. 건조한, 정해진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루틴의 일상 속에서도 반짝 빛나는 순간을 마주칠 수 있다.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나는 순간 감정의 충족감을 느꼈다. 사람들과의 교류를 좋아하는 나. 내가 그렇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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