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황금사과'라는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는데 내게 짙은 인상을 남긴 장면이었다. 본인 집에 불이 났다. 멀찍이서 발 동동 어쩔 줄 몰라하지만 옆집에 가서 도와달라고 하질 않는다. 이유가 가관이다. 다들 잠자는 시간인데 어찌 깨우냐는 것이 이유였다. 너무도 답답하고 무책임한 발언이지만 나는 그 아저씨의 연기력과 극 중 캐릭터에 완전 동화되었는지 그 장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쩜 저렇게 사람이 착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난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기가 피해를 보더라도 저렇게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막상 결혼해 살다 보니 (아니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그건 얼토당토않은 이상일 뿐임을 알았다. 처절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게 이상적인 것은 현실에선 바로 설 수조차 없다는 걸 알았다. 현실에서는 악착같이 내 것을 챙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버렸다. (알고 있음과 행함은 또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근본이 선하다는 것은 소중한 가치임에는 틀림없다. 선한 뿌리 위에 다양한 행동 양식이 추가되면 될 것이다. 착함과 융통성, 착함과 단호함, 착함과 돈, 착함과 성공.. 착함과 과연 양립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기로 했다. 난 그저 선한 근본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 있었던 내 머릿속의 한 조각 생각도 떠오른다. 그날도 평소처럼 친구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조잘거리는 하굣길이었다. 셤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는데 같이 가던 친구가 말했다.
"이번 시험 아주 어렵게 나와서 다 시험 못 봤으면 좋겠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지만 내 맘 속에서는 다른 일렁임이 시작되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A가 말이야!'
난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시험공부는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던 나였다. 아쉬워도 흐뭇해도 그 결과는 순수하게 내 책임이라고 여겼다. 내가 누군가를 이겨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또한 경쟁 상대가 못 보기를 바라던 순간도 없었다. 순수하고 맑은 생각으로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새하얀 아이였다. 내 친구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친구니까. 너무 놀랐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만으로.
'아.. 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는구나...'
사람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타고난 생김새의 내 생각은 잘 변하지 않았다. 그냥 내 모습으로 살아간다. 지나고 보니 피해라고 일컬을 수 있던 상황도 내 앞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선택은 내 천성대로 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생겨먹은 것이 이 모양이니...
어제는 6학년 큰 아이가 졸업 앨범을 받아왔다. 나의 국민학교 앨범 사진을 생각나게 만드는 녀석의 독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눈동자며 얼굴 형태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닮아있었다. 신기하다. 사진으로 보니 더 선명한 너와 나의 연결고리.
한 장 한 장 넘기며 단체 사진, 그룹 사진 속에서 녀석을 찾아본다. 얼굴을 아는 친구도 찾아보고 친구가 자꾸 엮는다는 여자 친구도 찾아보면서 한바탕 소동도 벌어졌다. 우리 때로 생각하면 졸업앨범은 좋아하던 이성 친구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정보창고였다. 여러 이야기가 숨어있는 주소록~ㅎ. 이 시대에는 '개인 정보 보호'라는 명목으로 맨 뒤에 있던 주소록은 없앤 듯하다. 고급진 표지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뽀샵도 해준다 하니 기술적 변화로 멋들어진 외관은 혜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때의 낭만이 없어진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맨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롤링페이퍼(? 롤링 앨범)를 했었나 보다.낭만 한 줌이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 본다. 마치 내게 건네는 말처럼 가슴이 두근댄다. 여자 아이의 이름이 나오면 또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착하다"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친구들에게 그렇게 인식된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내심 안심이 되었다.
착하다는 말이 어쩌면 누군가에겐 싱거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좀 피해를 보는 상황을 견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좋다. 내 아이가 착하다는 것이 좋다. 착함은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빛이 나는 착함의 가치를 네가 간직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중에 착함의 선을 정하는 것은 너의 선택이 될 것이다. 아직은 마음속에 다른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그런 일은 없으면 더 좋겠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네가 잘 선택하길 기대해 본다.지금은 착함의 뿌리가 더 깊고 단단해지길 바란다. 뿌리가 단단하면 바람에 흔들리더라도 제자리로 잘 돌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