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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은 인연

by 날마다 하루살이

명절이 끝나가는 저녁시간이었다. 제자리로 돌아와 적당히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반가운 얼굴마저도 긴장되는 것이 명절이다. 내게는 그렇다. 2박 3일 정도 시댁에서 불편한 시간을 보내고 오면 그저 드러누워 쉬고 싶은 맘의 지배를 받는다. 온전한 휴식의 시간으로 돌아와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킨다. TV에서는 좋아하는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딱 나와서 기분이 좋다. 적당한 시간에 내게 이런 호사가 주어지는구나. 기분 좋게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다!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없다. 그냥 문 열고 드나드는 사람의 범위 내에서 왕래가 있고 어쩌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명절 전에 선물 주러 다녀갔기에 다시 올 타이밍은 아니다. 더구나 그 두드림의 방식이 낯설다. 들어보지 못한 두드림 소리이다. 누구지? 집을 잘못 찾은 사람이려니 하고 문을 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이 엄마? ○○이 아빠도 같이 왔네~!!!"

"아이고 반가워라~~~"


순간 가슴속 감정이 쏟아져 나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꼬옥 안아주었다.


"보고 싶었는데 잘 왔어~!"


예전에 가까이 지내던 큰아이의 친구 엄마 아빠가 찾아준 것이다. 몇 해 전 아이들의 교육문제와 여러 집안 사정으로 대전으로 이사 간 (18살 어린) 나의 친구가 온 것이다. 아이들끼리의 인연으로 처음 알게 되었지만 엄마들끼리 더 가까워진 사이였다.


자연스럽게 맘속의 말이 튀어나오는 사이는 흔치 않다. 내가 먼저 반가움을 표현하면 날 쉽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불필요한 생각 따위를 할 필요가 없는 사이라서 좋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면 상대도 좋다는 반응이 가감 없이 돌아온다. 나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어주니 내가 존중받는 느낌이 들게 해 줘서 좋다. 이야기의 흐름은 서로 조율할 필요도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얼마만이지? 이런 즐거운 대화!'


"나, 애들 학교 가고 나면 '아~~ 이럴 때 ○○엄마랑 같이 밥 먹으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 많이 했다니까"

"옆집 다른 엄마도 사귀어 봤는데 나랑은 잘 안 맞는 거 같아. 난 ○○엄마랑 이렇게 잘 맞았다는 걸 알았어."


내 속을 내어 보여도 하나 불편함이 없다. 내 이야기를 듣는 그 표정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좋게 받아주겠다는 신호를 언제나 보내고 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고. 눈빛은 초롱초롱하다. 기분 좋은 반응이 돌아오고 난 또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내가 신이 나면 상대도 신이 난다. 서로의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는 중 그녀가 말한다.


"어제 와서 놀다간 기분이에요~"


나이 어린 그녀는 우리 부부를 좋은 어른으로 생각하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가 그런지 안 그런지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은 기분 좋은 에너지를 나오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존중하는 사이에는 안정감이 있다. 대화의 범위가 민감한 부분으로 흘러가더라도 오해하거나 왜곡될 걱정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전달하고 전달받아서 좋다. 존중이 담긴 대화는 눈앞에서만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그런 대화하고는 다르다. 편안하다. 부담이 없다. 어떤 생동감이 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참 고맙게도 우리를 존중해 준다. 그래서 고맙다.

살다 보니 이런 좋은 관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새로운 만남에서 깊고 편안한 관계로 이어지는 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다. 만나면 기분 좋고 어느 순간 문득 떠올려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행복임을 알았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음을 선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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