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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자식 관계

by 날마다 하루살이

한 아이가 있다. 수학과 과학을 배우러 오는 나의 여러 학생 중의 한 명이다. 오늘도 역시 제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16분 지각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1분 1초가 더디 흐른다. 매번 인내심을 테스트받는다.)

늘 있는 일이지만 오늘이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은 공부시간이 다가올 때 미리 톡을 보내왔다는 것이다.

선생님 4:10까지 가겠습니다.
화장실 땜에

(보낸 시각 3:59)

기다리는 시간 맘 편히 기다릴 수 있었다.

'요 녀석 어제 엄마한테 엄청 혼이 났나 보군. 미리 알림 톡도 보내고...!'

하는 사이 학생 어머니의 확인 전화가 왔다.

"선생님, 오늘 ○○이 시간 잘 지켜서 왔나요?"

"아, 네.. 지금 급히 화장실 가야 해서 10분 늦는다고 톡이 왔습니다~"

"네~"

급히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는데 녀석이 들어왔다.

어머님 마음 놓으시라고 '지금 막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고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학생 얼굴을 보고

"○○아 어제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

(사실 어제 친구들과 노느라 수업시간을 깜빡해서 수업을 진행하지 못한 상태였다. 수업 시간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은 이미 다반사가 된 아이였다. 엄마와의 일상생활에서도 트러블이 점점 증폭되었고 상태가 계속 악화되고 있었다. 아이는 이제 새 학기가 되면 중2가 된다. 공부에 할애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야 하는 때이다. )

"네.."

"아까 엄마한테 확인 전화 왔어.

그래서 화장실 갔다가 10분 정도 늦는다는 톡을 보냈다고 말했어."

잠깐 대화 후 공부 분위기를 잘 잡아보려는 찰나 학생의 폰이 울린다.

학생 엄마였고.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폰 밖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너무도 딱딱했고 아이에게 꾸지람을 하는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로까지 전해졌다.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오늘은 그냥 집으로 와~!!"

"왜 화장실을 그 시간에 가?"라는 말도 안 되는 꾸지람도 이어졌고 감정이 걸러지지 않은 여러 말들을 쏟아냈다.

"지금 당장 5분 내로 튀어와~!"


아이를 살폈다.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앉아있었다.

"○○아, 오늘은 엄마가 화가 많이 나신 거 같으니 얼른 가보는 게 좋겠다."


아이를 보내고 생각에 잠겼다.

내 아이에게 저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엄마는 얼마나 불편할까.. ○○이는 또 억울한 마음을 어찌 다스릴까. 화장실을 의도한 대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폰이 뺏기기는 여러 번! 최근에는 늘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뺏기기도 했더랬다. 그럴 때마다 지켜보는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난 조용히 아이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 엄마는 선생님한테도 자꾸만 혼내달라고 하시는데, 선생님은 그러고 싶지 않아. ○○이가 스스로 마음 다잡고 공부하기를 선생님은 기다릴 거야. 알았지?"


지금까지 여러 번 기회를 줬지만 행동이 수정되지 않았다. 엄마 입장으로는 좀 더 엄격하게 대하지 않는 내게도 불만이 있었을 터이다. 엄마의 인내심은 한계를 넘어선 듯 보였다. 학년이 올라가는 시점이 되니 조바심이 더 났을 것이다.


○○이가 걱정되었다. 이제 잘해보려 마음잡고 오늘 온 것 같은데... 마음을 많이 다쳤을 것이다.




저 일이 있고 난 후 수업 시간에 크게 늦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어제는 6분 늦었지만 아무 말 않고 넘어가주었다. 문제는 숙제를 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니 아이의 행동이 수정되었다. '숙제를 안 해오니 집에서 살펴주세요'라는 말을 전하면 숙제도 해결되려나 고민을 해본다. 또다시 폭풍이 지나가면 행동 수정으로 이어질까?


부모는 자식의 인생에 어디까지 참견할 수 있을까. 참견이란 표현이 어색하게 "긍정적인 영향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는 자식을 위한다는 명분이고 자식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명분이 부딪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모든 자식들이 부모의 간섭 없이 스스로 할 일을 척척해내는 것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부모는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 선까지 훈육이란 명목으로 간섭하고 끼어들어야 하는 것일까. "믿는 만큼 자란다"는 멋진 말은 믿을 만한 아이였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믿을 만하니 믿어주었던 것인지 믿어주니 믿을 만한 행동을 한 것인지. 닭이 먼저인지 계란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소용돌이다. 하지만 전자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가 되고 보니 자식과 사이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마음 불편한 것보다 내 자식도 맘 아플 것을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파왔다.


부모, 자식!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일 것이다. 그 사이에 자유로운 여유 공간이 있어 서로를 향하는 시선이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선도 머물고 서로를 향한 관심도 사랑도 머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서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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