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하찮은 / 내겐 너무도 귀한 한 마디

by 날마다 하루살이
녀석은 지금 중1 성장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너와 나누는 대화가 몇 마디가 될까.

"○○, 일어나야 해~~"로 시작되는 우리들의 대화는,

"다녀오겠습니다"로 이어졌다가,

"저녁 먹자~ 얼른 와~~~"로 이어지는 비교적 단조로운 문답들 뿐이야.


가끔 주말에 친구들과 축구하러 나갔다 오면 난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묻곤 해.

"오늘은 누구누구 나왔어?"

A요.

또?

B요.

또?

기분이 괜찮나 보다.. 하며 친구들 이름이 모두 나열될 때까지 들어줬어. 아니 듣고 싶었어. 네 목소리. 이렇게 우리 사이는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해.


얼마 전에는 내가 TV 보다가 오랜만에 배꼽을 잡고 웃을 일이 있었어. 웃음을 멈추지 못할 정도로 웃으니, 네가 동생에게 말하더라.


"우쭈야, 엄마가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본다"


너도 낯설었나 보지? 나도 웃고 있는 내가 참 고마웠단다. 게다가 네가 나의 웃음소리에 반응을 보인 것도 감동이었어.


그렇게 우린 같은 것을 공유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나 봐. 엄마가 요즘 저녁 시간이 한가하게 되니 이런 호사도 누리게 되는구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공유함이 이리도 소중한 건 지난 시간 너무 정신없이 보낸 덕분이라고 해야겠지. 한순간 한 순간이 또 달리 다가오는 요즘이다.


오늘 아침에는 네가 시답잖은 농담까지 던지는 거야!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며 던진 말.


"엄마, 나, 치질 걸렸나 봐~!"


순간 너무 놀랐어! 아빠가 치질로 너무 고생했다가 수술한 기억이 떠올라서. 너도 그 고통을 견디다 내게 말한 것이라면...


"어떡해~~~ 많이 아파?"


아빠 말로는 수술하면 아주 간단히 처리된대. 누구든 치질로 고생하는 사람 있다면 꼭 알려주고 싶다고 얘기했을 정도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려는데, 녀석 표정이~~~~

장난이었다! 너의 장난이 이리도 반가울 수가~!!!

너의 마음도 내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어. 내가 쉴 틈 없이 일하느라 바빠 너무도 많이 놓쳐버린 일상의 순간들이 요즘 소중해지는 시간이야. 엄마 가슴에 작은 파문들이 번지고 있어.


오후에 친구들이랑 놀고 들어와서는 또 이야기한다.


"엄마, 요 앞에서 제가 고양이 길들이고 왔어요!"

"잉? 무슨 소리야? 문 앞에 데리고 왔단 말이야?"


놀라는 내 모습이 재밌었는지 말을 이어갔다.

몇 마디 이후엔 또 농담임을 알게 되었지만 평소에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 엄마를 놀리려고 한 말임이 분명했다.


너도 나하고 얘기하는 것이 나쁘지 않구나?

고맙다. 마음 돌려줘서.


토요일 밤이면 우리는 [이태원 클라쓰] 이후로 함께 즐기는 드라마를 오랜만에 나란히 누워서 같이 본다. [경도를 기다리며]라는 드라마야. '함께 같은 것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엄만 행복하구나. 공부 이야기도 거부감 없이 조금은 더 자연스러워지고 서로의 관심이 부담스럽지 않은 지금이 너무 좋구나. 널 좀 더 믿어주지 못하고 엄마의 불안감만 키웠던 그때의 모든 일들을 사과할게.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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