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묻는 질문

by 날마다 하루살이
녀석은 지금 중1 성장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은 먹거리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먹는 저녁은 내겐 좀 힘든 시간이다. 식사 시간이 여유롭고 즐겁지 만은 않은 이유는 늘 맞춰진 수업 시간표가 날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 4:30 수업을 마치면 5:30이 조금 넘는다. 그 사이에 들어와 씻고 나온 내 남자는 곧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란다. 그렇다. 내 남자는 배고픔을 잘 참지 못한다. 5:30부터 다음 7시 수업이 있기까지 단 1시간 30분이 내게 허용된 시간이다. 미리 머릿속으로 준비해 둔 식단을 차려 내고 치우고 정리하려면 바삐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상하리만치 그 시간엔 4:30 수업이 힘들다. 힘든 수업 마치면 머리가 뻑뻑할 때가 많지만 내게 마음 놓고 쉴 여유 따위는 없다. 가족들 저녁 챙기고 잠시 머리 식힐 시간을 벌려면 바삐 움직여야만 한다. 1시간 30분은 그리 여유있는 시간이 아니다.


가끔 학교 일정으로 어제처럼 시간을 못 맞추는 아이가 있으면 그 여유 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어제도 학교 축제 일정으로 4:30 수업에 올 수 없다는 학생의 문자를 받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휴우~ 오늘은 느긋하게 준비해도 되겠어~'


마트로 나가서 단호박을 사다가 쪄서 먹거리 하나가 추가되었다. 낮에 미리 준비해 둔 불고기를 불에 올려 조리하고 있는데 콧노래가 나온다. 이런 여유는 내게 긴장을 느슨하게 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이다. 열심히 불조절하며 맛나게.. 그리고 여유롭게 즐길 저녁 시간을 기대하고 있는데 큰 아이가 나와서 말을 한다.

워낙 말수가 없는 녀석이라 녀석이 입을 열면 무슨 일일까 기대하게 된다.

'녀석과 말을 섞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야~!'


"엄마, 아빠 몇 시쯤 와요?"

"5:20에서 30분 사이에 오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으니 모를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으이그, 무심한 놈!


"왜.. 배 고파? 먼저 먹을래?"

"아니요"


평소에 안 하던 질문을 했을 때는 분명 그 목적과 의도가 있었을 텐데 녀석은 역시 친절한 설명은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다. 나 또한 더는 묻지 않는다.


불고기가 완성될 즈음 다시 나와 한마디 한다. 오늘 평소와 다른 행태에 나도 좀 당황스럽다.


"엄마, 지금 배 안 고픈데 나중에 먹어도 돼요?"

"그래, 그럼~"


쿨하게 답하긴 했지만 속에선 다른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아까 물을 때 답해줬으면 불고기 양을 조절해서 불에 올렸을 거 아냐~~'


하지만 녀석이 오랜만에 먼저 걸어온 귀하디 귀한 건넴에 감사하고 고마운 맘이 앞서 괜히 기분이 좋다.


"밥 생각 별로 없으면 피자, 어때?"


엄지 척이 날아온다. 지난 주말 피자집이 쉬는 바람에 먹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있던 터라 슬쩍 건네봤는데 통했다.


불고기는 아빠랑 엄마랑만 먹게 되었다.


늘 그렇듯 남은 불고기는 순두부찌개가 될 예정이다.


[다음날]


아침에 눈 떠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다가가 묻는다. 오늘도 마찬가지.


"○○, 밥 먹을 거지?"


'○○, 밥 먹어'가 아니라 '먹을 거지?'란 물음이다. 가끔 차려두고 못 먹겠다 하여 짜증이 올라오는 일을 줄이려다 보니 남의 집에는 있지 않은 질문의 시간이 일상이 되었다. 지금 몸 상태가 일어나서 밥 먹을 여유가 있는 정도인지 체크하라는 뜻이다.


"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오케이라고 답하고 못 먹는 날도 가끔 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메뉴를 붙여 대화를 한 템포 더 이어가는 수를 쓰게 되었다. 다시 잘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오늘은.. 어제 안 먹었으니까, 불고기야~"

"네~"


오케이란다. 몸이 바빠진다. 그런데 좀처럼 녀석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슬렁거리더라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야하는데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 얼른 씻어.. 밥 먹어야지~~~"


녀석은 물끄러미 날 쳐다보다가,


"엄마, 밥..못 먹겠는데요." 한다.


휴우~ 불길한 예감이 또 적중 하고야 말았다. 녀석에게 한 번 눈 흘겨주고 나 혼자 아침을 먹었다.


배고플까봐 걱정되는 순수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미리 말해주면 그릇그릇 반찬 담고 하는 수고도, 랩 씌워서 다시 냉장고에 넣는 수고도, 담았던 그릇 설거지하는 수고도 안 해도 되잖아!"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미안해할 그 맘을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


등교 준비를 마치고 녀석이 현관문 앞에서 '댕겨오겠습니다'를 외치고 머뭇거린다. 평소같음 쌩하고 나가버렸을텐데...


"엄마, 아침 안 먹어서 미안해요~"


괜찮다.. 괜찮다..

너도 네 사정이 있지 않겠니.


미안하다고만 말해주면 된다. 그럼 모든 일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거야. 누그러진 마음은 다음 대화로 이어진다.


"남은 불고기 저녁에 먹을래, 아님 순두부 찌개 해줄까?"

"순두부찌개요~!"


좋아~!! 오늘 저녁 메뉴도 결정됐으니 오늘 하루 끼니 걱정은 일시 중단해도 되겠다.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널 잠시라도 미워하지 않게 해줘서

한없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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