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하나 끓이는 것도 내겐 큰 일이다. 마트에서 소고기 두 팩과 얼갈이배추를 사 왔다. 한쪽 화구에 소고기를 올려 두고 다른 화구 쪽에선 물을 끓인다. 깨끗이 씻은 얼갈이를 살짝 데쳐 된장에 무쳐 두었다가 얼갈이 된장국을 끓일 요량이다. 얼갈이를 씻으며 노란 속살은 주섬주섬 주워 먹기도 한다. 씹을 때 올라오는 단맛은 설탕이 주는 그것과는 다른 상쾌함이다. 한두 개로 시작했는데 물 끓는 사이 열 개가 훌쩍 넘도록 집어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데쳐진 이쁜 초록의 얼갈이를 꼭 짜고 가지런히 눕혀 듬성듬성 잘라 놓는다.
잘린 얼갈이를 된장에 무쳐 두고는 소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파도 썰어두고 졸아든 육수에 물을 더해가며 정성을 들인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운다. 사실 얼마 전 알게 된 참치액이 단단히 감칠맛 역할을 담당해 주니 요즘은 쉽게 요리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솥에 한가득 국을 끓여두니 뿌듯함이 올라왔다.
조금 있으면 작은 아이가 돌아올 시간임을 체크한다. 이번 주부터 단축 수업이니 이제 녀석에게 남은 4학년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한 학년이 마무리되는 이 맘대면 생각나는 초등 교사 친구를 떠올렸다. 친구도 이런 마무리 시간을 보내겠구나.. 싶었다. 그때 카톡이 울렸다. 어머나! 바로 그 친구가 아닌가! 정말 신기한 일이라는 찰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잠시 통화하려던 것이 길어지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작은 아이가 들어왔다. 평소와 다른 표정이 신경 쓰인다. 힘 없이 바닥에 누워있다. 무슨 일이지? 친구와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보니 통화 시간이 36분이나 되었다. 근래에 없던 긴 통화였다. 녀석에게 다가가 표정이 왜 그런지 물었다.
"선생님이 말이 너무 많아~~~"
"무슨 수업이었어? 수학? 사회?"
"아니~~ 끝나는 시간!"
"아~~ 종례 시간이 길었어? 요즘 수두 관련해서 안내 문자 오던데 그거 말씀하셨지?"
"그거도 말씀하시고, 감기도 조심하라고 하고, 얼마 안 남았으니까 친구들하고 잘 지내라고 하고... "
"다 아는 건데 자꾸 얘기하셨구나~~"
"응.."
녀석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미끼를 던져보았다.
"우쭈야, 어제 치킨 먹고 싶은데 못 먹었으니까 오늘 저녁에 치킨 먹을까?"
"엄마, 지금 먹으면 안 돼?"
"우리 우쭈가 배고팠구나~ 안 그래도 오늘 급식 사진 보고 우리 우쭈가 먹을만한 것이 없구나.. 했었지. 그럼 엄마가 편의점 다녀올게. 얼른 먹고 방과 후 가자~"
선생님 말이 길었던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그 시간이
더 길게 느껴졌었나 보다.
외투를 입고 카드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근데 현관문 앞에 목도리가 떨어져 있다.
"우쭈야, 목도리 떨어졌네~~"
"아, 그거.. 엄마가 나 보면 '우쭈 목도리!'라고..."
"아하~~ 엄마 놀라게 해 주려고 일부러 문 앞에 놓고 들어왔던 거야?"
"응~!"
깜짝 놀라는 반응을 보고 싶었을 테고, 즐거운 순간을 고대하며 현관을 들어섰을 텐데, 엄마가 친구랑 통화하느라 자기한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상황이었구나~~~ 귀여운 녀석! 다음엔 엄마가 제대로 놀라줄게. 아주 그냥 깜짝~!!! 오늘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어~^^
녀석은 뚝딱 밥 한 그릇에 편의점 치킨 두 조각을 먹고는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지~ 이런 모습이 우리 우쭈지~! 우쭈야, 오늘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