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 시간이 지났다. 녀석이 현관문을 열어 제칠 시간이 지났는데 이상하다. 코앞이 학교이고 선생님 종례가 아무리 길어진다 해도 집에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오지 않는다.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있어서 선생님께 전화드렸다가 선생님까지 괜히 귀찮은 신경 쓰게 해 드린 일이 있었다. 친구랑 문방구 들렀다 오느라 늦었단다. 오늘도 그럴 수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기다리다 막 졸음이 몰려오던 그때 문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활기차게 "댕겨왔습니다~~~"를 외치던 소리가 들리지 않고, "엄마, 턱이... 턱이..."라는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벌떡 일어나 나가보니 턱이 깨져서 피가 흥건하다 못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른 휴지 뜯어 손에 쥐어주고 신발을 벗으라 하니, 운동화 끈이 풀려있다.
"우쭈야, 어디에서 다쳤어~ㅠ"
"계단 올라오다가 넘어졌어."
아무래도 운동화끈을 밟은 모양이다. '조심하지~~'라는 말은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말 같아서 거둬들였다.
"많이 아프지~~~ㅠ"
"괜찮아, 엄마"
"어디 보자. 병원 가서 꿰매야 할 정도인지 한번 보자"
아이고~ 찰과상 정도가 아니라 살이 너무 많이 찢어져서 벌어져 있었다. 시계를 먼저 보았다. 병원 점심시간이 틀림없다. 주변 병원이 모두 2시부터 오후 진료가 시작되니,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했다. 피가 금방 멈추지 않을 거 같아 걱정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밴드하나 붙여두고 오후로 미뤄뒀던 느타리를 데쳐서 슬쩍 볶아두었다. 2시 15분 전.. 얼른 준비하고 가자.
한 손에 휴지를 들고 붙여둔 밴드 밖으로 넘쳐흐르는 피를 닦아가며 병원 문을 들어섰다. 아직 불이 켜지기 전이었고 데스크는 비어있었지만 이미 열 분 가까이 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대기 중이셨다. 순간 아차 싶었다. 미리 와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둘 것을...!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묻어나는 휴지를 들고 있는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잘도 기다리는데 엄마 마음만 애가 탄다.
이럴 땐 일 분 일 초가 더디 흐른다. 잠시 후 간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기다리던 할아버지들께서 진료 시작이 언제인지 묻는다. 간호사는 계속되는 질문에 짜증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변한다.
"원장님이 오셔야 시작이라구요~!"
2시가 되었는데도 원장으로 보이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야속한 시계만 자꾸 보게 된다.
원장님이 등장하셨다. 2분이 지나있었다.
환자들의 호명이 이어졌다. 우리 앞에 열 분 정도 대기명단에 적혀 있었으니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기다림을 장정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한 2분만이라도 일찍 와서 준비하고 2시에 정확히 시작이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어쩜 평소엔 정확히 진료를 시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녀석이 닦아내는 피를 보고 있자니 화가 나려 했다. 물론 그 이후로도 기다림의 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진료실에서 확인받고 처치실에서도 기다림은 이어졌다.
녀석은 바른 자세로 긴장한 채 그 뒤로도 20여분을 기다렸다. 처치가 끝나고 선생님은 가벼운 농담을 건네셨다.
"다음에 꽈배기라도 사 오셔야겠어요~"
"네?"
"얼굴 쪽이어서 흉터 안 생기게 신경 썼습니다. 성형수술 정도로 잘했으니까 걱정 마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가시고 옆에 있던 간호사가 한마디 건넨다.
"애기가 엄청 얌전하네요~~~"
처치중에 무서워하지 않고 잘 기다려준 모양이다. 고마운 마음에, 대견한 마음에 녀석이 너무 이뻐 보였다.
"우쭈야, 방과 후 시간 늦을까 봐 선생님한테 문자 했더니, 선생님이 전화하셨어. 늦어도 되니까 치료 잘 받고 오라고.. 쉬고 싶으면 다시 문자 할까?"
"아니야. 갈 거야. 갈 수 있어~"
병원을 나서 바로 옆 약국에서 약을 타고 학교로 향하는 길. 녀석이 약간 다리를 전다. 아이고...ㅠ
"우쭈야. 다리 아파? 좀 절뚝이는 거 같은데? 또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어서 불편했나 보다."
걱정하는 나의 맘을 녀석이 안심시켜 주었다.
"하루만 지나면 괜찮아져, 엄마. 지난번에도 그랬잖아."
또 잊고 있었다. 네가 아직 완전히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다는 거. 재활의학과 진료일도 다가오고 있었다. 건강하길 바라는 맘 한쪽에 공부하라고 다그쳤던 시간들이 순간 떠오르면서 미안해졌다. 너를 위한 바람은 어느 것이 정답일까. 그것에 대한 정답은 알 수 없으나 너를 향한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