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작은 아빠가 계시다. 작은 엄마도 함께. 그리고 나를 포함 4남매의 둘째이다. 아빤 중1 때 돌아가셨고 엄만 대학교 때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우린 작은 집과 같이 살고 있었고 우리들의 삶은 그분들의 도움을 받게 되는 힘겨운 여정을 맞게 된다.
우리에겐 보살핌을 주시는 보호자가 있었음에도 뭔가 부족한 허기를 늘 느꼈고, 아파 누워 계신 엄마를 아이처럼 돌보는 보호자 역할을 해야 했다. 그 두 분이 안 계셨다면 어떤 삶이 또 기다렸을지 모르지만 엄마만 계실 때 몰랐던 불편감을 온전히 받아내야 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 시절을 우린 제법 잘 건너왔다. 이제 모두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으니 대견하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인 이 관계는 참 오묘해서 늘 감사하고 고마운 위안으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쓰디쓴 강을 건너 형성된 관계는 아직도 좀 자연스럽진 못하다. 유독 나에겐 더 커다란 앙금을 남겨줬다. 작은 아빠께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면서는 절정에 이르기도 했었다.
고아로 정의하기 어려운 고아였다. 우리 서방이 가끔 놀리는 말로 또 위로의 말로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게 엄마 없는 것'이라고...
아이를 낳고 보니 그 결핍은 극에 달했다. 내 아이에겐 따뜻하게 온몸을 내어줄 외조부모가 안 계신다는 사실이다. 대신 작은 아빠의 아이들 즉 사촌들에겐 내가 갖지 못한 아빠, 엄마가 있었던 것.
내가 결혼하고도 첫 아이가 늦어졌으니 나보다 늦게 결혼한 사촌에게 첫 아이가 먼저 자라고 있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가족 행사로 작은 집에 들렀는데 작은 아빠께서 그 작은 꼬맹이 조카를 자전거에 태우고 놀아주시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꽁무니를 바라보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아.. 난 가질 수 없는 게 또 있구나... 누군가 내 아이에게도 저런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공유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감정의 결핍을 암덩어리처럼 간직해야 했다.
가족행사로 모이는 날은 어색하지만 여럿이 북적대는 통에 잠시 앉아있을 만하다.
어느 날 작은 엄마의 마음도 살짝 엿볼 겸 이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요즘 참새가 돈가스를 해주면 잘 먹는다며 작은 엄마가 집에서도 해 먹는 걸 보여주셔서 따라 하게 됐다고...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배운 거보다 작은 엄마한테 배운 게 훨씬 많다'라고. 나는 가슴 시린 이야기를 어렵게 꺼내었지만 상대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너무도 슬픈 이야기인데...
작은 엄만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에는 우리 세 자매의 가족은 인사하러 같이 들르고 밥 한 끼 얻어먹고 온다. 작은 엄마께서 한동안 그러지 않으셨다가 몇 해전부터 관계가 회복되어 밥 한 끼 먹는 루틴이 생기게 되었다.
언니도 나도 동생도 너무도 그리운 작은 엄마 음식! 다들 외지로 직장 및 대학 생활하고 결혼해 사는 동안 난 결혼 전까지 긴 세월 엄말 돌보며 같은 집에서 살았기에 그 음식이 유난히 더 그립다. 우린 특별한 화젯거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늘 작은 엄마의 음식 맛에 감탄을 표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작은 엄마, 이거 너무 맛있어~"
옆에서 언니도 묻는다.
"여기 뭐뭐로 양념한 거야?"
님이(여동생)도 한 술 얹는다.
"작은엄마, 이거 파김치 너무 맛있어. 어떻게 한 거야?"
작은 엄마께서 수려한 말솜씨와 맛깔난 표현으로 설명 들어가시고, 요리에 관심 많은 님이도 끄떡끄덕에 추임새까지 넣으며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아주 최고조에 이르렀다.
실실한 농담 좋아하시는 작은 아빠께서도 오랜만에 기분이 좋으셨는지 평소처럼 농담 한마디를 던지셨다.
"니들 이거 공짜로는 안돼. 돈 주고 배워야 해~"
"에이, 작은 아빠, 진짜~~~"
한바탕 웃음소리가 지나갔지만 내 맘엔 쓸쓸함이 가득 남았다. 우리는 그. 런. 사. 이.라는 뜻 같았다. 베풂에는 답을 해야 하는 사이.
우리 서방이 가끔 하는 말이 또 있다. 진짜 바보에게 "바보야"라고 하는 것은 욕이라고... 우리가 흔히 쓰는 농담도 진짜 바보에겐 달리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우린 베풂에 답을 해야 하는 입장일 수밖에 없는 것. 무작정 조건 없이 그냥 받기만 해서는 안 되는 그. 런. 사. 이.
[마음 쓸쓸했던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