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이젠 부하직원들을 자유롭게 해 주세요.

아직도 엄마 찾는 과장님을 만드는 조직

최근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이슈가 되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직장 내 괴롭힘이 한국 사회에 크게 자리 잡고 있을까?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들여보려 한다. 직장 내 선배들은 설마 자신들을 부모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시아의 어느 나라에서는 ‘40세가 되어야 첫 직장’에 취직을 한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대신 남들이 하는 스펙을 똑 같이 만들기 위해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가면서 집에서 생활을 하고, 일반적인 가정의 생활들도 엄마가 모두 해준다고 한다.

심지어 40세가 되어 첫 직장에 들어갈 때도 엄마가 적응기간 동안 출근을 해주며 직장 상사에게 직접 찾아가서 잘 봐달라고 인사를 하고 심지어 아이가 출장을 갈 때에도 따라가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그 나라의 아이들은 45세가 되면 결혼을 하는데, 이 시기에도 45세 아이들의 엄마는 집에 가서 반찬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며 결혼시킨 자녀를 돌보며 살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알아차렸으리라 생각한다. 이 나라는 노르웨이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이야기다. 물론 첫 직장을 갖는 나이는 최근 30세에서 31세이지만, 노르웨이에서 첫 직장을 갖는 나이와는 10년 정도 차이가 있기에 표현에서 40세라고 표시해 보았다.

20대에 직업을 갖고 주체적으로 사는 일본이나, 노르웨이의 능숙한 30대의 직장인과 엄마 품에서 갓 벗어난 한국의 30대 신입사원이 업무로 승부를 한다면 과연 누가 더 뛰어난 성과를 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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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군대 경험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입대 전까지는 자존감이 상당히 낮은 청년이었다. 사회에서 ‘공부’라는 잣대로만 평가를 받다가 군대를 가보니 인간성, 화합, 유머감각처럼 사회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내 성향들을 인정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선임자들이 귀여워해 주고, 후임들이 잘 따라주었던 일상이 즐거웠고, 특히 일과가 끝난 후에 책을 읽거나 장기를 둘 때만큼 행복할 때가 없었다. 군인 시절 부대 내 장교와 하사관들의 칭찬과 꿈으로 가득 채워준 독서의 시간은 삶을 바라보는 생각을 바꾸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아들이라는 존재가 부모를 떠나서 한 남자로 만들어지는 시기로 군대는 큰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나의 경우는 국가유공자와 4대 독자의 특권이 있었기에 군대를 가지 않거나 좀 더 짧게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강력히 나의 입대를 원하셨다. 당시에는 원망도 했지만, 아버지께서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 뜻에 따라 입대하였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통제된 환경이었지만 덕분에 독립심을 기를 수 있었다.


최근에는 군에 아들을 보낸 엄마들의 단체 채팅 방이 개설되어 아이들의 소식을 거의 볼 수가 있다고 한다. 4세 어린이집 운영 방식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피부 트러블을 걱정하며 위장크림을 거부하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몸이 불편하기에 훈련을 제외시켜 달라며 떼쓰는 군인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는 군부대 근처로 이사 오는 엄마까지 있다고 하니 이게 정말인지 듣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최근 군대의 간부들은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엄마들의 민원’이라고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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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도 비슷하다. 대학의 수강신청이며, 학점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찾아오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실은 기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심지어 대학원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그럼 과연 직장은 어떨까?

실제로 2014년 한국 고객과 노르웨이 출장에 동행한 고객의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유인즉은 아들이 지병으로 허리가 아픈데, 아마도 본인이 책임감이 강해서 그런 표현을 하지 않을 것이니, 나에게 표정을 잘 살펴가며 도와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했고, ‘아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떨까?’라는 생각 그리고, ‘내가 그 아버지였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은 나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어진 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성인이다.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아이로 살아가는 ‘어른이’들이 너무나 많다. 사람을 뽑아야 한다면 나는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의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다 보니 문제가 일어난다. 새치기를 해서 자기 아이들만 좋은 자리에 앉히려 하거나, 학교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빼돌려 자식에게 답안지를 건네거나, 그리고 공공기관이 대놓고 채용비리를 저지르기도 한다. 젊은이들 은 ‘유빽유직 무빽무직’이라 호소해보지만 세상은 꿈쩍도 않는다. 정말 우리 아이들이 이런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의 건강한 "자립하지 방해하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정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직장에서도 모든지 부장이, 팀장이 다 하려고 하고 아이들? (부하직원)을 자신이 모두 관리를 하려고 하면 결국 자신의 조직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조직이 될 것이다.

또한 부하직원을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면 막말이나, 막 행동이 나오기 쉬울 것이다.

부하직원은 회사의 자산이며, 상급 직원은 회사의 자산을 잘 성장시켜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어떻게 부하직원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을까? 계속 내 품에 있다가 놓아줄 것인가? 혹은 한 마리의 멋진 독수리 같이 만들 것인가는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숙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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