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둘째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머리말
아내에게 둘째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노르웨이에서 한국 고객들과 중요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연달아 뜬 부재중 전화는 한국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다급한 일이라는 생각에 나는 양해를 구하고 회의실 밖으로 나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떨리는 목소리로 쌍둥이라고 했다. 다소 당황했지만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상기된 얼굴로 회의실로 향했다. 달아오른 나의 얼굴을 보고 대표가 “Everything OK?” 라고 물었다. 나는 작은 뉴스가 있다고 하며 쌍둥이 임신 소식을 알렸다.
이때 나는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노르웨이의 직장 상사들은 나에게 “정말 축하해, 인생의 기쁨이 두 배나 생기다니, 감사할 일이야.”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지인들은 “애가 셋이라니! 이제 자기 생활은 없겠어. 힘들겠다.”라며 걱정을 해주었다. 한국 지인들의 반응이 내게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 입장이었으면 비슷한 말을 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국 지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들은 노르웨이 아빠들은 나중에서야 당시에 정말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때서야 나 역시 양쪽의 차이를 깨달았다. 이 일은 살아가면서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나’라는 이기적인 자아를 중심으로만 인생을 바라보며 내 삶을 지탱해주는 가족의 관점은 안중에 없었던 건 아닐까? 쌍둥이를 품은 엄마 그리고 쌍둥이로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걱정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 일을 계기로 내 성공, 내 앞길만 바라봤던 하루를 잠시 내려놓고 가족을 바라보려 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함께한 가정에서 그리고 아내와 함께 꾸린 가정에서 구성원 간의 역할이나 생활 태도를 명확히 정의하며 살아왔는지, 서로 존중하고 살아왔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면 어떻게 가족을 꾸려야할지, 무엇보다 어떻게 평등한 입장에서 민주적인 노력을 함께 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가 본 노르웨이 가정은 모두가 평등했다. 부모는 아이를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고, 동일한 인격체로 대했다. 아이에게 적절한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여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했다. 부모가 아이를 가르치지 않고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를 토대로 아이들이 가족의 일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가정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부모들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어떤 것을 주입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서두르지도 않았다. 부모의 가치관, 행동습관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서서히 익숙해지고 결국 가정의 철학에 스며들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여 집안을 안정시킨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동양의 오랜 사상을 재미있게도 나는 지구 반대편 노르웨이의 친구들에게서 본 것이다.
아빠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면서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동료애가 없는 회사 사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직원을 자신이 소유한 회사의 하수인 정도로 여기는 사장은 이러한 요구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 정작 자신이 얼마나 직원의 사기를 꺾는 지에는 관심이 없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노르웨이에서 나는 가정의 구성원들이 평등하다는 대전제 위에 꾸려져야 함을 깨달았다. 나이가 적건 많건, 부모건 자식이건 서로의 생각과 행동을 먼저 존중하는 태도가 그 전제다.
내가 그때까지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던 가정의 모습이란, 대게 부모에 의해 획일적으로 형성되는 것이었다. 부모가 규율을 정하고 아이들이 따르는 것이다. 이 모습은 한국에서 경험한 기업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도 했다. 지난 10년간 노르웨이 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일하며 나는 현지 가정의 모습과 가족 구성원들의 태도를 보고 많이 놀랐다. 솔직히 가정 내 평등이란 개념을 머리로는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실제 그 모습을 접하게 된 데서 오는 충격이었으리라.
이 책에 내가 노르웨이 가정을 경험하면서 가족이 무엇인지, 좋은 아빠란 무엇인지 고민했던 시간을 담았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우리 가정을 꾸려 나간 모습도 그렸다. 한국 사람이 한 명도 없던 도쿄 근교에서 아내와 첫아이를 낳아 키우며 나는 좋은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내와 함께 공부해가며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소중한 시간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