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행복은 시간에 숨어있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지만 노르웨이의 회사들 대부분은 하루 7시간 근무를 한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오전 7시부터 근무해서 오후 3시에는 퇴근을 한다. 퇴근 후에는 가족들과 혹은 이웃들과 취미를 즐기기도 하고 가족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노르웨이 회사에 입사하고 제품의 생산 방식을 배우기 위해 공장이 있는 노르웨이의 시골 마을로 장기 출장을 간 적이 있다. 작은 호텔과 호텔에 딸린 식당 그리고 매일 6시까지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전부인 정말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한 달 정도를 살아 보니, 노르웨이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무척 길었다. 모든 직원이 퇴근길에 공장 근처의 초등학교나 유치원에 들러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낚시나 사냥 혹은 축구나 수영을 하고 슈퍼마켓에서 저녁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갔다. 번화가에서 살아 온 나는 한동안 이러한 일상에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점차 바뀌었다. 노르웨이의 동료들은 멀리서 출장 온 나를 위해서 번갈아서 집에 초대해 주었는데, 그때 나는 가족들끼리도 그토록 재미있게 놀 수 있음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가족과 보내야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방법과 노하우가 가득했다. 함께 요리를 하고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때론 같은 공간에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했다. 친구들끼리 모여 밤을 새는 아이들처럼 친근해 보였다. 나의 경우 친구보다 가족과 눈을 마주치기가 더 어색한 때가 종종 있곤 한데, 여기선 그런 순간이 없을 것만 같았다. 가족과 몇 주간 이어지는 긴 휴가를 보내도 전혀 어색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보였다.
《2015 삶의 질(How’s life?, 2015)》 보고서를 보면, 한국 어린이들이 하루 평균 아빠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단지 ‘6분’이라고 한다. 이런 여건에서는 아이들이 자라 학원을 가거나, 아빠가 늦게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되면 집안에 점점 어색한 기운이 감돌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8시간 근무를 한다. 노르웨이와 1시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무엇인가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인맥을 만들기 위한 시간, 자기계발 시간 또는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즐기는 시간으로 매일 분주하다.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가족의 행복의 조건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주저 없이,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려워도, 즐거워도, 슬퍼도 그리고 기뻐도 함께하는 그 시간이 가족의 행복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 바쁘다. 아빠가 일주일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무척 짧다는 보고들이나, 주 52시간제 업무로 전환이 되면서 헬스클럽이나, 책읽기 모임, 외국어 회화 수업 등록이 증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유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업무나 업무 능력을 위한 자기계발에 투자하는 셈이다. 그리고 많은 부모가 한정된 시간에 가족들에게 잘해 주기 위해서 각종 유명한 장소나 식당, 새로 생긴 명소 등으로 이리저리 가족들과 다닌다. 하지만 그 대신 조금만 천천히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거나, 손이 많이 가더라도 아이들과 시장에 장을 보고 같이 음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몇 달 전에 가족의 불행에 관한 영화를 보고 딸과 아내와 함께 어떨 때 불행한지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해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공통적으로 가족이 헤어질 때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플 때를 꼽았다. 그밖에 아내는 잠잘 곳이 없어질 때, 워낙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만들지 못할 때였다. 딸은 책을 못 읽을 때나 아빠 엄마가 오해로 혼내거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을 때라고 했다.
그럼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 방법은 뭘까? 간단하다. 우리 가족의 행복은 가족이 함께, 건강하게 있을 때 행복할 것이다. 잠잘 집이 있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가족이 함께 먹고, 딸이 읽고 싶은 책을 사 주고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기대와 즐거움에 부풀었다. 여행 당일, 쌍둥이 형제의 기저귀부터 이유식까지 싸 들고 유모차 두 대에 큰 트렁크까지 비행기에 실었다. 쌍둥이 아이들의 첫 해외여행이라 아플 때를 대비한 약부터, 평소 즐겨 찾는 베개까지 빠짐없이 챙기다 보니 짐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니, 소식에도 없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비행기에서 너무 힘을 뺐는지 벌써 힘들어했고, 심지어 택시도 승객 정원이 4명이라 태울 수 없다고 거절당해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뒤 한참을 걸어서 숙소까지 갔다.
숙소도 너무 비좁아 짐과 유모차를 1층 로비에 보관해야만 했다. 다음 날까지 비가 그치지 않아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결국에는 짜증이 겹쳐서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했고, 가려고 했던 관광지도 가지 못한 채 결국 마지막 날 텅 빈 동네 동물원에 간 기억만 있다. 잘 걷지도 못하는 쌍둥이 형제와 수많은 트렁크 가방에 비까지 왔던 여행은 잊지 못 할 기억을 선사했다. 누가 여행이 행복하다고 했을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 우리는 천국에 온 것만 같았다. 추운 몸을 녹이며 가족이 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포근함을 느낀 순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행복은 목적지에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 혹은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행복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이었기에 행복은 다소 경시되곤 했다. 경제 규모가 커진 지금도 이런 인식이 은연중에 많이 퍼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시절 행복했던 기억은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피부로 느끼게 해주었던 시간에 있었다. 날이 좋은 가을에 부모님과 함께 거닐던 기억, 추운 겨울이면 집 안에 모여서 군고구마나 귤을 먹으면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눈 기억, 따뜻한 봄에는 한강에서 연을 날리고, 더운 여름에는 거실에서 신나는 영화를 보면서 잠에 들던 기억이다.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행복이 이런 일상 속에 있음을 깨닫고 나자,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매주 토요일이면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가서 제철 재료를 산다. 가끔은 동네 근처의 단골 실내 포장마차에 가서 살아 있는 낙지를 구경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감자전을 먹는다. 신이 나면 아이들은 포장마차 사장님에게 이따금 재롱도 떤다. 가족이 같이하는 시간, 이것이 행복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