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과 미드나잇, 다시 선라이즈로
드디어 비포 시리즈를 완주했다. 선라이즈로 시작한 영화는 각각 9년을 주기로 선셋과 미드나잇을 완성하며 시간으로 쌓이는 사랑의 깊이와 감정의 순환들을 그려낸다. 선셋에서는 현실에 자리한 낭만을, 미드나잇에서는 낭만에 자리한 현실을 담아낸다.
선셋과 미드나잇 모두 마지막 장면들이 좋았다. 선라이즈에서 나눈 여운 짙은 헤어짐의 키스는 선셋을 통해 눈빛의 마주침으로 연결되고, 서로의 손을 맞잡은 미드나잇의 결말은 함께 공유한 시간과 감각만큼 한층 더 깊어질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완성되고 종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깊어짐의 과정을 반복하며 그 두께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연애를 이어가며 옅어지는 경계 속에서 서로를 깊이 알게 될수록 서로의 가슴에 더 깊숙한 칼을 꽂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분명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데 나와 상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응시할 때 생기는 갈등도 깊어짐의 순환적 과정을 포기하게 만든다. 비포 시리즈는 모두 대화를 중심에 놓고 변화되는 감정의 농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터져 나오는 솔직한 마음의 표출을 그려낸다. 유난히도 길었던 미드나잇의 템포는 깊어진 감정만큼 무거운 폭풍 같은 감정들이 격렬하게 오가는 장면들을 그려낸다. 포기 대신 깊어짐의 순환을 선택한 두 사람을 선라이즈의 첫 만남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마무리한 미드나잇의 마지막 씬이 참 좋았다.
(+) 영화 속 셀린과 제시의 갈등이 정점에 이룬 장면을 각기 다른 주인공의 입장에 몰입하여 나눈 대화가 좋았다. 그 어떤 정답 없이 나누는 생각과 대사, 감정들.
"still there, still there, g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