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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토리 Feb 15. 2021

[소울] 삶의 열정은 일상의 충만함으로부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말들이 삶에 대한 의욕이 아닌, 좌절로 연결되는 때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일이 나에게 맞을지, 삶에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할지 이유를 찾아야 하는 길이 두렵고 엄두조차 나지 않을 때. 당위를 가득 채워야 하는 삶에 싫증이 나고 두려움이 커져 오히려 모든 행동에 영혼이 제거될 때 이 영화를 만났다.


<소울>은 삶의 명확한 목적성을 지닌 '조'와 지구에 가고 싶지 않아 하는 영혼 '22'를 매치하여 삶의 의미와 열정, 목적을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신의 삶의 이유가 재즈였던 '조'에게 계절의 변화에 스며든 공기의 냄새와 작은 나뭇잎은 너무 당연한 일상 속에서 감각할 수 없이 무뎌진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하늘을 보거나 걷는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라는 조의 대사는 신자유주의 구조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 강요된 규범이다. 불안하고 유동적인 구조에 적응하기 위해 자기개발의 주체가 된 우리는 '무엇'에 집착한다. 무엇을 해야 내 삶이 행복할지, 무엇을 해야 내 삶이 가치 있을지, 무엇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을지. 그 무엇이 명확한 개인들은 목적을 쫓기 위해 달려 나간다.


그러나 도달한 길의 끝은 다시 쳇바퀴도는 일상이 대기한다. 목적이 달성되어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이어나간다. 삶의 연속성에서 우리의 '목적'은 길의 종착지가 될 수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인생의 길에서 잠시 들릴 수 있고, 향해갈 수 있는 여러 간이역 중 하나일 뿐이다.


삶을 다채롭게 채우고 영위한다는 것은 곧 무뎌진 감각들을 되돌리고 회복하고 어루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울풀한 삶'의 의미는 당위와 목적으로 향해가는 길에 돌아볼 수 없었던 일상의 감각들을 회복하고, 무뎌지고 건조한 우리의 다양한 관계와 감정들을 따뜻한 진심으로 어루만질 때 채워진다.


지구에 가고 싶지 않았던 영혼 22의 내면에는 지구에서 자신이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내포되어 있다. 그를 거쳐간 멘토들은 인간의 쓸모있음과 가치를 삶의 목적으로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영화 후반 그의 내면에 자리한 거대한 심연들은 자기개발의 주체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래서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요 속에서 무거운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영화 속 '제리'들이 지적하듯 열정은 무언가에 대한 당위적인 목표의식과 행동에서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삶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영속되지 않는 유한한 삶에 대한 집중, 따라서 이 삶을 온전하게 이어나가는 것이 곧 삶에 대한 '열정'이다.


출근길 새벽의 차디찬 공기와 점심 식사 후 창문으로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 맛있는 음식 냄새, 사랑하는 이들의 촉감, 나의 일상을 가득 채우는 공기와 자연과 다채로운 존재들.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가치는 결국 일상의 충만함이다. 이는 내 일상을 채우는 모든 구성물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나를 돌보고, 나의 일상을 돌보고, 나와 접촉된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마음으로서 돌봄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운다.


주말 오후, 어두웠던 영화관에서 나와 눈 앞을 밝게 비춰준 따뜻했던 햇살과 코 끝에 닿아 조금은 차가웠던 겨울의 공기를 기억한다. 여러 억압과 규범들에 찌들어가는 나 자신이 가여울 때, 소중한 일상에 대한 감각들이 무뎌질 때 다시 꺼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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