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해서 얻은 병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야기도 곤란한 치질이었다. 어릴 적부터 책만 손에 쥐면 끝까지 다 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느라 낮이면 책이 좋아도 어머님에게 눈치가 보여 읽을 수가 없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어머님은 내가 책을 읽는 모습만 보아도 돈 때문에 진학을 못 시켜 준 사실에 가슴을 아파하셔서 드러내 놓고 뻔뻔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밤에도 조심스럽게 읽었었다. 그러다 보니까 화장실에 가서 오랫동안 앉아서 읽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 병이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치질이 생겨버렸다. 별로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아 방치를 하게 되었고 화장실에서 책 읽는 습관은 아주 공고히 길들여져 버렸다. 치질은 잊을만하면 내 인식 속에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하면서 커지더니 급기야는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는 변에서도 빨간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간간히 내치핵이 외치핵 되어 배변 시 가끔 보이기 시작했다. 병이 병 같지도 않으면서 신경을 건드리고 또 드러 내놓고 싶지가 않아서 병원에는 가 보지도 않았다. 가끔 심각함이 느껴지면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민간요법을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치질이 심해져 가면서 변에서 피가 심하게 나오면 한 종지 정도가 나오고...... 그때부터 자주 하던 헌열도 빈혈이 걱정되어 기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심각한 일들이 자주 번복이 되는데도 치질로 병원 가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변비가 생기면 좌약도 쓰고 빈혈이 느껴진다 싶으면 임산부들이 먹는 철분제를 자주 사 먹으면서도 병원은 이상하리 만큼 가기 싫었다. 뭐 좀 창피한, 번거로운 병이었다.
변의 밸런스가 깨지거나 술을 폭음하는 날 뒤에는 의례히 피가 주삿바늘에서 주사약 나오듯이 그렇게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심각성은 날로 더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치핵에 수은 집어넣어 치질 덩어리를 썩어 문드러지게 하는 치료도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받고 찾아가 보았으나 적절한 치료 같지가 않아서 포기를 하면서도 병원은 죽어도 가기가 싫었다.
사십이 넘어서자 변의 양보다도 피의 양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빈혈성 혼절이 가끔 왔다. 산을 타는데도 정상에 서면 어지러움증이 올 정도의 고소공포증이 생겨나고 말았다. 몸은 전보다도 뚱뚱해져서 백여 킬로가 넘는데도 몸에 핏기가 하나도 없어 보이기 일쑤였고 급기야는 병원을 제 발로 삼 년 전에 찾아가고야 말았다. 이름도 알맞게 지은 항문외과 비슷한 창문외과~~ 그렇게 치질은 내 인생의 전반전을 빈혈의 공포와 대장암의 공포를 안겨 주었기에 단호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환부를 들여다 보신 의사는 하루가 급하다고 날을 잡았다. 병원을 찾은 그다음 날로 수술일정이 잡혔다. 다른 대장암이나 그런 것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국소마취로 하체만 전체가 마취되고 수술이 진행되었다. 마취 때문에 통증은 느껴지지가 않았는데 의식은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혼절하는 마취를 할까 봐 걱정을 했었으니까...... 삼십여분 걸리는가 싶더니 수술은 끝났고 의사는 내게 계란덩어리만 한 치질덩어리를 보여주며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수술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가기 위해 수술용 침대에서 이동용 침대로 나를 옮길 때 문제가 발생했다. 간호사 두 명과 의사가 나를 옆 이동용 침대로 옮기다가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두 침대 사이로 나를 빠뜨려 버렸다. 나는 두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도 마취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처음엔 가볍게 생각하고 셋이서 나를 들어 올리려고 하는데 아예 들지도 못했다. 간호원 두 명과 수술했던 의사 선생님이 더 달려오고...... 그래도 못 들고...... 나도 나를 바라보며 힘을 쓰지만 하반신 마취로 허사였다. 다시 두 명이 더 달려오고..... 시간은 지체되고...... 급기야는 사무실의 남자 직원이 두 명 더 달려와서야 나를 이동용 침대에 올릴 수 있었다. 십여분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었다. 아홉 명이서 내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 씨름을 한 셈이었다. 의사도 놀라고 간호원들도 또 직원들도 놀랐다. 나는 나대로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다. 단 두세 사람이 나를 번쩍 들을 수가 없다니.......
몸의 무게가 그렇게 심각하게 무거울 줄을 물랐다. 더구나 의식이 멀쩡해서 다 보고야 말았으니 어쩌면 치질을 수술한 것 보다도 창피하고도 슬픈 일이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못 보았던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 배꼽을 쥐고 웃었으나 나는 치질과 빈혈보다 더 크고도 다른 고민을 않은 채 병원을 나서야 했다. 사실 아내가 며칠을 간호하는데도 무게가 많아서 무지 고생을 했다. 그때부터 몸의 무게가 내 의식을 내려 누르기 시작했다. 전에는 전혀 심각함을 몰랐었다.
아내가 가끔 그런 말을 한다. 당신은 절대로 물에 빠지면 안 된단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당신을 건져 낼 때도 열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당신이 먼저 몸져눕게 되면 당신의 골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무지 걱정이 된다는 거였다. 나도 속으로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쌀 빼기를 꼭 시도할 것이다. 지금은 성악 중에 테너를 좋아해서 살을 빼고 싶지가 않다. 몸이 악기라고 지금이 가장 적절한 성량을 낼 수 있는 몸이기 때문에 그냥 유지하려고 생각을 하는 편이다.
다만 몸무게는 내게 커다란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이십 년 전 이야기를 다시 올린 것은 독서는 여전히 진행형이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차 쓰는 거다. 지난여름 8킬로 정도 영토와 무게를 줄였는데 바쁘니 현상유지도 벅차긴 하다.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무게가 112에서 이제 확실하게 108에 걸려있다. 분명 내려갔다. 조금 더 노력하면 두 자리로 폴짝 내려 뛸 것 같다. 이미 도전은 시작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래서 응원을 부탁드릴 겸 수치에 가까웠던 이야기를 다시 쓴다. 어젠가 두 자리로 곤두박질쳐야 하기에~~~~ㅎㅎ
여전히 밤에는 책을 뒤적이고 또 브런치를 뒤적인다. 빌어먹을 활자중독증 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