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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Oct 25. 2024

내 뚝멋의 노래와 독서는 유년의 고독이었어요.


내 뚝멋의 노래와 독서는 유년의 고독이었어요


가난 속에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게 많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공책 겉장안쪽 빈 면에 그림과 만화는 도맡아 그리면서 무언가 받았던 기억도 선명하게 납니다. 그게 빌미가 되어 무슨 만들기 대회에 우리 학교 대표로 뽑히던 일이 라든가, 미술 그리기 대회는 맡아놓고 다녔습니다. 물론 제가 대회를 나가면 어머니는 내가 입고 나갈 옷을 빌리러 다니시곤 해서 엄마는 내가 뽑혀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요.

동요 부르기 대회가 충주 어느 학교에서 열리면 항상 목소리 때문에 오디션에서 뽑히기는 했지만 만들기나 그리기, 또는 글짓기와 겹쳐서 대회가 함께 진행되는 관계로 한 번도 동요 부르기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일단 노래는 여러 사람 앞에서 부르는 일이기 때문에 걸맞은 옷을 빌려 입을 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글짓기나 만들기 또는 그리기는 깨끗하게 입기만 해도 되는 거였지요. 상도 더러 타 왔었지요. 사실 공부로는 상을 타거나 뽑혀 다닌 적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된 노동 속에 살면서 그림이나 만화는 다 잊어버렸고 늘 생활 속에서 듣고 불려지는 노래들, 유행가와 흘러간 노래들은 완전 섭렵에 가까울 정도로 외워 버렸습니다. 지게를 지고 힘든 일을 할 때도 청등산 골짜기들이 쩡쩡 울리도록 노래를 불렀지요. 동네 어른들도 제 목소리 하나는 인정해 주었지요. 그때 외워 둔 유행가 가사와 동요 가사 때문에 요즈음도 노래방 화면을 안 보고 반나절은 버틸 자신이 있을 정도였지요.


특히 청소년시절 시골친구들조차도 모두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 공부를 하는데 나는 힘에 부치는, 많은 노동량이 요구되는 담배 농사에 빠져서 덜 여문 젊음의 진들들 다 빼먹고 있었지요. 뜨거운 여름날 담배닢열기 가득한 밭이랑에 들어가 담배열기와 지열 속에 담뱃잎 채취는 최고의 고통이었습니다. 다들 저보다 어른들이 그 일을 했고 저만 어렸습니다. 그것도 젤로 더운 칠월과 팔월에 집중된 일이었지요. 그 열기 뜨겁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잊기 위해 담배를 따면서 부르는 노래는 정말 고통의 도피 쳐와 같았습니다. 그냥 하루의 위안이었지요. 같이 품앗이로 일하시던 어른들이나 형님들도 지루하다며 내가 침묵을 하면 요청하시곤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상황이 어렵다고 비관하거나 어머니에게 짜증이나 투정을 부리며 반하을 했던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처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밤마다 미래로의 꿈을 형성하고 남보다 두 배는 바쁘게 살아야 한다는 사명을 형성한 것도 다 그 시절이었지요.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그때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흙에 파묻혀 살던 그 시절에 형성한 감성이 참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천등산의 절경도 내 인격에 한몫을 했고 그 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던 골짜기 냇물들도, 밤마다 마주하며 그 아름다움을 주체 못 하던 달밤의 그 오묘한 감성의 덩어리들도 다 그때 형성된 감성들이었습니다.


봄마다 난춘이나 (맹금류의 일종) 멧비둘기 새끼들을 내려다 길러서 날려 보낸 일들, 동네 청년들의 연애편지를 무수히 대필해 주던 일들, 과일 서리에서 닭서리까지 하며 퍼 마시던 술들, 올모 만들어 가지고 노루를 사흘동안 쫓아다녀서 끝내 생포를 하고는 득의 만만하게 산을 내려오던 일들, 오소리 굴 앞에 구덩이를 파고 고춧대를 태워 오소리를 자던일, 쥐를 몇 마리 잡아 껍질을 벗기고 토막 내어 토끼나 꿩고기로 둔갑시켜 술과 함께 친구들에게 먹이던 일들, 시골 특유의 인심과 능력과 실력이전에 연장자 순으로 존중하며 내려오던 마을일들....... 이런 것들 속에서 많은 인격과 정서를 배양했던 시절이었지요. 물론 잊어버린 것도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습득의 부분이 참 많았던 시절들이었지요.


지금 많은 돈은 못 벌었지만 앞으로 그럴 기회가 남들보다 많은 사람이고 보면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줄기차게 불렀던 노래들도 잊지 않고 마치 꿈을 찾은 듯 부르고 있고 좋아하는 책들도 여전히 사서 보며 풍요로운 시간들을 경영해 가고 있는 데다 이젠 걷기에까지 불이 붙어 아름다운 세상 구석구석 걸어 다닐 준비에 빠지니 걷기 예찬 전도사까지 된 셈이니 건강도 다시 젊은 날로 회귀하는 삶이니 모든 게 다 범람에 삶이 되었네요. 또 그런 일들을 이렇게 글로 쓰니 자연히 글쟁이가 되고요.

아름다운 세상을 늘 걸으며,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도 꾸준하게 진행하고 노력하여 유년의 고독을 아름답게 꽃 피우렵니다. 영원한 드림마니아의 삶을 구현해 갈 것입니다. 그것이 그, 처럼 가야 할 나의 길임을 신앙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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