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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Sep 13. 2024

유년의 등골을 빼먹은 지게귀신

내 지게 이야기

내 등골을 빼먹던 지게귀신~~

지게는 내가 성장기에 접어들기도 전에 내 등골을 다 빼먹은 등골귀신이었다. 열 살 때부터 엉성하게 땔감으로 해서 져 날랐던 지게는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물이었다. 내가 질질 끌듯이 지고 다닌 것이다. 사실 내가 지게를 진 것이 아니라 지게가 나를 지고 다닌 것이다. 그때부터 지게와 난 혼연 일체가 되어 내가 고향산천을 등지고 나오던 스물네 살까지 하루도 거른 날이 없을 정도였다. 여름날에는 소꼴을 날마다 베어 날랐고 밭농사에 들어가는 일체의 품목들을 모두 지게로 져 날랐고 가을이면 밭에서 거둔 농작물들을 모두 지게로 져서 집으로 날랐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열네 살에 농군이 되었을 때 워낙에 두메산골이라 경운기도 없던 마을이었다. 또 겨울이면 일 년 내내 이산 저산의 나무들을 잡아먹는 아궁이에 땔감들을 모두 지게로 져 날랐으니 내 어린 등골이 성할리 만무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그래도 키가 큰 축에 들었는데 친구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정말 내 키가 친구들에게 추월당해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지게가 내 등골을 모두 빼먹어 키조차 자라지 않는다고 무척 속상해하셨다. 그땐 이미 나도 나뭇단을 장정축에 들 정도로 묵직하고도 실하게 문거리 나무들을 해 날랐다. 일 년 동안의 아궁이 땔감은 내 혼자도 넉넉하게 해 놓았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 도래해도 군불까지 땔 여유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때 빈 지게를 지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갈 때면 노래를 부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워낙에 심심한 데다 마음마저 붙일 곳이 없었던 터라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면서 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골짜기마다 산 메아리들이 내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게 신기해서 부르다가 그렇게 습관화되었던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내가 어느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지 훤하게 알 정도로 나는 목청을 돋워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는 유행가들을 라디오에서 듣고 외워서 불렀는데 닥치는 대로 불렀다. 흘러간 노래, 학교 때 배운 동요, 친구들이 불러서 따라 배운 가곡들과 어설픈 팝송, 등등 노래라고 생긴 것이면 닥치는 대로 외워서 불렀다. 산으로, 들으러, 밭으로 빈지게를 지고 갈 때면 의례히 노래를 청명 하고도 구성지게 불렀다. 아마도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때 내 노래를 못 들은 사람들이 없었다. 그때 생겨난 별명이 병국이라는 이름에다 봄철에 노래를 부르는 뻐꾸기를 합성해서 정뻐꾸기로 별명이 붙여진 것이다. 소리가 뻐꾸기처럼 구성지다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아마도 친구하나 없는 외로움 속에 힘든 일을 잊기 위해 혼자 절규하듯 토해내는 음성이 제법 어른들의 귀에는 처절함으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내 사춘기는 그렇게 지게에 눌린 영혼의 울림이 노래로 산천을 외롭게 떠 다녔던 것이다. 꿈은 많은데 도시로의 진출은 쉽지가 않았고 배움의 길은 너무나 멀어서 요원하기만 했고 그렇다고 마음을 나눌 친구들은 하나도 없었고 형들이나 누나들만 내 주변에 있으니 지게와 노래가 나의 친구였다. 물론 밤이면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때 활자중독증 환자가 된 것이다. 문학의 애정과 밑거름도 그때 형성 되었다.


그런 내가 지게로부터의 해방 시간이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찾아왔다. 시골에서는 내 인생에 보이지 않았고 또 미치도록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내 마음에 흘러가는 꿈은 언제나 푸르게 빛나고 있었기에 더 이상 시골에서 순진무구하게 썩고 있을 수가 없었다. 도시로의 출타를 결정하고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내 청소년 시절을 오지게 잡아먹은 지게를 아주 시원하게 부숴주는 일이었다. 빈 지게를 지고 천등산으로 올랐다. 바위 투성이 천길벼랑이 수직으로 펼쳐진 곳 정상에 까지 돌아서 올라갔다. 그리고 마치 의식을 행하듯 엄숙한 자세로 지게를 큰 바위덩어리에 매달았다. 이제 다시는 내 등에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의식을 행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기도를 한 다음, 그 지게를 매단 바위를 천길 낭떠러지기 벼랑으로 굴려버렸다. 바위를 따라 굴러가며 부서지는 지게를 바라보며 나는 내 찌든 젊은 날도 함께 굴려버렸다. 지게와 함께 살았던 시절들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새로운 청춘에 시절들이 저 새로운 도시에서 펼쳐질 거였다. 나는 신성한 존재이고 꿈이 잠재해 있었다. 청아한 의식을 지닌 순박한 시골출신이지만 언젠가 청량하고도 원대한 이상실현을 이룩해 내는 청년표임을 나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게와 영원한 고별식을 마친 것이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는데 내게 새로운 세상이 이미 저만치 다가와 있었다. 드림 마니아가 새롭게 탄생한 것이다. 그날저녁 후련함에 진지하고 엄숙하게 혼자 막걸리를 한 되나 마셨다. 시원 섭섭함이 가슴 한편에 가득 몰려왔었지만 꿈에 부풀어있었다.


그 뒤로 빈 지게라도 져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의식적으로 피했다. 다시 진다면 그때의 감각들이 살아나겠지만 성장이 억제되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싫은 게 당연했다.


그런데 앞으로 몆 년 더 있다가 고향은 아니어도 시골 생활은 하고 싶다. 또 아내도 아주 간절하게 원해서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다. 텃밭정도 잘 가다뤄 오이, 가지, 감자, 고구마, 옥수수, 배추, 무, 상치, 고추등을 가꾸며 잊어버린 농군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을 자주 탐색하고 있다. 그때, 지게도 꼭 갖춰보고 싶은 것이다. 사실 난 지금도 톱과 끌과 대패만 있으면 지게를 깎을 수 있다. 청소년 시절에 이미 지게를 손수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제 그 지게가 그립다.


오늘 페북 친구님들을 세 팀이나 만난 날이다. 다들 시골 출신들이어서 시골이야기를 많이 했다. 얼음 속의 개구리를 집던일, 고라니를 생포하던 일, 고춧대를 피워 오소리를 잡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우리들의 성장 정서를 나눴다. 베이비 부머 세대들은 그 시절의 향수가 있다. 내 등골을 다 빼먹은 지게귀신이 생각나 옮겨본다.


지게   석천리이야기  천등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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