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백살공주 Sep 15. 2024

훔친 자전거가 나를 울렸다

자전거 도둑


포항에서 스물다섯 살 때 아르바이트로 건축현장 막일을 일 년 정도 했어요. 그때 죽도초등학교, 기독교병원, 포항공대, 포항제철, 강원산업등에서 철근 기능공으로 공사를 했었어요. 상도동의 종합운동장 부근에서 자취를 하며 고된 막일을 거칠 것 없이 했어요. 지금이야 모든 게 기계와 전기로 철근 절단과 구부리는 걸 하지만 그때만 해도 큰 오한마로 철근 25mm를 다섯 번씩 내리쳐서 절단했고 가공도 사람의 힘으로 했지요. 제가 그때 공사현장에서 잠깐 쉬는 짧은 시간에도 한구석에서 소설문학 도서를 읽었어요. 그때 나이 많은 분들이 저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모든 일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고 많은 편의를 제공해주셨던 이유는 남과는 다른 분명한 행동을 했어요. 쉴 때마다 책을 읽었고 일을 할 때는 솔선수범 했기에, 잠시 노동의 세계에 머물다 어딘가로 날아오를 사람으로 인정해 주었지요. 꿈이 있는 주관적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든 현장으로 출근은 중고 자전거를 사서 했어요. 포항이란 도시의 어디던지 삼십 분이면 도달할 정도로 도시가 아담하고 좋았어요. 동쪽으로는 바다가 출렁거리고 동남 쪽으로는 거대한 제철공장이 굉음을 내며 긴 굴뚝으로는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살아있는 도시였지요.


자전거에 대한 아픈 일화가 하나 있어요. 고된 일을 마치고 포항제철 앞 포장마차가 늘어선 곳 중 한 곳에서 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나왔는데 내가 타고 갈 자전거가 없어진 겁니다. 그때 거금 이만 원 주고 장만한 중고 반짐발이 자전거였어요. 소중한 재산 1호인데 어떤 자식이 타고 가버린 겁니다. 아, 심한 낭패감에 화가 나더랍니다. 중고지만 새로 산지 열흘도 안된 자전거였어요.


술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로 화가 나서  이에는 이,라고 나도 포장마차들 앞에 길게 줄지어  서있는 자전거 중에 내 중고하고 비슷한 자전거를 몰래 올라타고 집으로 내 달렸어요. 혹시나 붙잡힐 까봐 혼비백산 달렸어요. 분명 술이 취했는데도 사고 안 내고 무사히 자취집으로 왔어요. 지금으로 보면 음주 자전거 운전이었지요.  다음날 일어나 그 자전거로 출근을 하려는데 짐 칸에 손 때가 꾸덕꾸덕 묻은, 가장의 냄새가 물씬 나는 도시락 가방이 아프게 싫려 있었어요. 그때 내 가슴에 짠한 기운들이 흐르며 아펐어요. 나야 총각이라 점심도 현장에서 사 먹을 정도로 책임질 가정이 아직은 없는 총각인데 내가 훔쳐온 자전거 주인은 한 집안에 가장이 분명해 보였어요. 그 자전거에 가족들의 생명줄이 간당간당 걸려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왔어요. 그리고 쓰려왔어요.


저 자전거를 잃어버린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나왔어요. 때 절은 도시락 가방이 침묵으로 여러 가지를 내게 보여주고 있었어요. 나야 이틀 정도의 품삯으로 또다시 중고 자전거를 사면 되지만 저 주인은 가장이니 그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어요. 나도 소년시절 소년 가장으로 동생들 둘과 환자셨던 어머니와 살며 벅찰 때마다 가족들 몰래 눈물을 훔치곤 했었으니까 힘이 부치는 가장의 비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독고탁 만화의 주인공처럼 울지 않는 소년이 되겠다고 했었지만 몰래는 많이 울었지요. 독고탁은 제 우상이었어요. 젤로 좋아했던 만화였어요. 그리고 프란다스의 개,라는 동화 속 네로와 파트라슈도 마음에 담고 자라났지요. 하루종일 일을 하는데도 마음이 무거워 결국은 퇴근을 할 때 다시 포장마차를 찾아가 가장 가까운 파출소에를 갔어요. "어젯밤 술 먹고 내 자전거인줄 알고 타고 왔는데 아침에 보니까 아니어서 주인에게 돌려드리러 왔답니다." 신고를 하고 자전거를 훔쳐왔던 포장마차에 경찰관님과 같이 갔어요. 포장마차 주인에게도 말을 하니 어제 자전거 잃어버린 분이 가게 단골이라며 좋아했어요. 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나를 누르던 비애들이 없어졌어요. 집으로 동료 자전거 뒤에 매달려 오는데 세상이 가볍고 개운했어요. 꼭 주인품에 안기기를 고대했지요.


그런 추억의 포항에 오니 그때의 일들이 영사기처럼 떠 오르네요. 가난했지만 성장통이 아름답게 아프던 시절입니다. 가난이 병 같던 시절 아프지 않고 자라났지요. 그래서 일 년을 살았던 포항이 언제나 특별하게 각인되어 버렸어요.

사실 오늘 포항의 멋진 형님이 불러주셔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지요. 700킬로를 달린 하루였어요. 내일은 낮에 책을 읽다가 구룡포 까지 둘러보고 저녁에는 새로 생겨난 포항의 동생을 만날 겁니다. 이틀밤을 포항에서 편안하게 보낼 겁니다. 자전거를 돌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던 가벼움이 오늘 내 가슴에 파고듭니다. 선명한 에너지로 살아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장사는 주머니가 두둑해지도록 대박처럼 잘 되었답니다.~~♡


재작년에 혼자 독서여행을 하며 포항을 지나가다 청소년시절을 추억하며 쓴 글입니다. 시골에서 서리로 닭과 토끼까지는 훔쳐보았지요. 그때 서리는 무슨 계급장 같은 멋스러운 것들이 남자들 사이에 있었기에 죄책감은 없었지요. 그런데 도시로 진출하고 나서 없어진 내 자전거를 보상하듯 본의 아니게 훔쳐본 자전거에서 세상의 삶 중에 가슴을 막히게 하는 [가장의 책임]이라는 무거운 것을 그때 봤던 겁니다.


 2016년에 쓴 글입니다. ^^


추석연휴 이틀째 일요일 새벽입니다. 날이 밝으면 영덕을 갑니다. 구주령을 넘고 평해룬 지나서 영덕을 갑니다. 좋아하는 형님과 갑니다.

작가의 이전글 뚝딱이 요리사의 인생요리 , 맛 보실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