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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Sep 16. 2024

빡빡머리의 슬픈고집

바리깡과, 상고머리에 추억~~

나는 머리를 오래 길렀다가 한번에 아주짧게 깍는 습관이 있다. 보통 두달에 한번정도 깍는 머리라서 상당히 길어져 버린다. 머리를 감을때마다 번거로움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아, 깍을때가 되었구나 생각하고 단골 미용실로 간다. 그러면 미용실 주인은 한달에 한번정도로 깍으면 참 보기가 좋을텐데 왜그리 늦게 오느냐고 핀찬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 두달만에 와도 항상 짧고도 정결하게 깍아서 십여년째 단골로 간다. 늘 머리를 깍을 때마다 아주 어린시절 그저 빡빡 대머리를 깍던 어린시절이 떠 오른다.

태어난 동네가 거의 화전마을이었을 정도로 마을의 가구들이 골짜기마다 흩어져서 한두집씩 살던 가난한 산골 시절의 이야기였다. 열살전후의 어린시절 이야기였다. 옥수수밥이 주식이었던 시절, 우리 뒷집에는 머리깍는 바리깡 기계로 동네 어른들이고 아이들이고 그저 돈대신 옥수수쌀이나 말린 고추등을 받고서 머리를 깍아주던 이발사님이 계셨었다. 형님뻘이셨다.

 

이발소 시설은 따로 없었고 그냥 그집 안방에서 이발 기계로 깍아 주곤 했는데 당시 어린이들은 모두 빡빡이 머리를 깍았다. 동네에서 쌀밥을 먹고사는 부자 아이들 몆명 정도만 상고머리를 깍았다. 빡빡이 머리에 비해서 삼고머리는 윗머리를 이삼센치 길이 정도로 정갈하게 깍고 앞에서 부터 옆부분과 뒷목덜미 까지 머리와 얼굴부분을 경계하는 면을 예쁘게 정리해서 깍아 놓으면 보기가 좋았다. 그당시에 빡빡이 머리를 깍는 소년들은 한번쯤 상고머리로 깍아 보는게 소원일 정도였었다. 


우리집은 어머니 혼자 날품으로 우리들을 키우는 관계로 빡빡이 머리도 남들보다 깍는 간격이 더 길었다. 더벅머리로 다북하게 자라다가 단번에 빡빡이가 되는거였다. 머리 깍을때마다 이발사 님에게 가져다 드릴 곡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발사는 동네사람들의 머리를 다 깍는 사람이어서 동네사람들의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었고 또 재미있는 형이었다. 가끔 머리깍는 [바리캉] 기계가 머리를 깍을때 날이 무뎌져서 생머리를 잡아 뜯을 때마다 눈물이 찔끔날 정도로 따거웠다. 그럴때 마다 그 이발사는 재미있는 말로 머리를 깍으며 따거워할 사람을 웃기곤 했었다. 또 정도 많은 분이었다.


겨울 어느날 밤 이발을 하시는 집 부엌에서 불이 난 것을 내가 발견하고 불이야, 하고 큰 목소리로 어르신들을 깨웠었다. 불이 초가지붕으로 번져붙기 전이어서 초가삼간이 홀랑 타는걸 막았다. 그집 어른들이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뻔 했다며 칭찬해 주셨는데 그때 내 머리가 제법 자라있었다. 다음날 이발을 하시는 형이 오라고 하여 갔더니 우리집 불타는 것을 막아주어서 너무나 고맙다고 머릴 공짜로 깍아 준다는 거였다. 처음으로 내 힘으로 머리를 깍는 셈이었다. 늘 머리 깍을때마다 없는 곡식을 준비해서 내 손에 들려 주시는 어머니 손이 떨리는걸 나는 보아왔었다. 그 돈이 없어 가위로 어머니가 손수 깍기도 햇는데 빡빡이 머리더라도 꼭 가위 자국이 쥐가 파먹은 것처럼 자국이 남아서 죽기보다 싫었다. 머리가 따겁더라도 이발사님 기계로 깍는게 월씬 좋았다.


이발사님이 다 끝냈다며 내 목가운을 벗기고는 거울을 내 앞에 보여 주셨었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토록 소원하던 상고머리로 깍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모습이 아주 단정하고도 예쁜 모습으로 거울에 들어가 있었다. 전에도 본적없는 딴 소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빡빡이로 깍아 달라고 매달렸었다. 이렇게 깍는게 소원 아니였느냐며 오늘은 돈을 안 받을테니 그냥가라고 내 등을 떠 미셨다. 그러나 나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며 빡빡이를 깍아 달라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이발사님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찼다. 전혀 이해를 못하시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돈은 안받을 테니 전혀 걱정말고 집에가라며 인자하게 웃으셨다.

나는 끝내 엉엉울면서 한마디 내 뱉고 말았었다.

[상고머리는 금방 자란단 말여요!]

나는 그때 머리가 긴만큼 빨리 자라서 어머님가 고생하실 것을 생각하느라 삼고머리를 즐길 겨를이 없었던 어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내 말을 들은 그 이잘사는 참 기뜩한 녀석이라며 나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다시 빡빡이 머리로 만들어 놓았다. 뭔가 서운함이 밀려왔지만 빡박이가 안심이 되었다. 그날 뒤로도 몆번을 더 공짜로 내 소원대로 빡빡이 머리를 깍아 주었다. 앞으로 머리통 보다도 크게 될 녀석이라는 거였다.


그 이발사 형의 말씀대로 크게 잘 된 것은 없지만 세상을 올바른 가치관으로 열심히 사는 중년은 되어 있지요. 그리고 크게 될거라는 말씀대로 몸은 정말 185 센치와 108킬로그램 정도이니 눈으로 보기에는 크게 되어 있는셈이지요. 몸 아무나 크는게 아니거든요^^ 그날 뒤로 습관때문에 저는 지금도 머리 깍는 주기를 남들보다 길게 두달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비용이 아까워서요~~~~


어제 바리깡 사진을 누가 페이스북에 올려 이글이 생각났지요. 갑자기 유년이 떠 올라 옵니다. 제 삶의 에너지는 다양합니다. 유년과 여행, 미래에 대한 계흭들이 주는 에너지 등등 다양하지요. 문학지에 실렸던 추억을 던집니다. 


저도 브런치맨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아직 이곳의 알고리즘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일단 파악을 해 보느라 매일 던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속성은 뛰어납니다. 지금은 매우 바쁜 시절이기도 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 목하지만 이제 적응을 하고 생리를 파악하면 성실한 정진을 할거랍니다. 천등산 시절의 유년을 먼저 건지고 역동적이던 청주의 삶과 지구촌을 뒤지며 사는 일상들로 액티브한 스토리들로 가슴을 뜨겁게 달궈드리고 싶은게 제 소원입니다. 낼 모래면 추석입니다. 다들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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