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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백살공주 Sep 17. 2024

운전하는 나를 펑펑 울린 친구, 명절 스토리

명절이면 생각나는 친구가 보고 싶다.

나를 펑펑 울린 스토리

청주에서 내가 사귄 친구가 두루 많은데 그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고 또 가끔 내게 따듯한 눈물을 던져주는 감성덩어리 친구가 있답니다. 처음에 만난 곳은 내가 중고등부 검정고시 공부하느라 야학에 다닐 때였지요. 그 친구는 국립지방대를 철학과를 다니며 야학에 교사로 나와 윤리를 가르쳤고요. 우리는 그렇게 만났지요. 나이가 같은 데다 문학이나 책에 관심이 많아서 쉽게 친해졌답니다.


가끔 그 친구집에 놀러 가면 안방의 책장에 책이 빽빽이 꽂혀있어 촌놈이었던 나는 부럽기만 했지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은 정말 많은 책이었지요. 책 때문에 가까워졌고 또 아주 감성이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라 우리는 야학과 상관없이 자주 만나고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그 친구의 친한 친구들을 모두 사귀게 되어서 지금도 그 친구의 친구들하고 사업도 하고 술도 마시며 잘 지내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답니다. 그 친구의 대학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그리고 초등학교 친구들하고 다 친합니다.


그 친구는 내 유년의 고생스러운 여정을 하나하나 알아 갈 때마다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곤 했었지요. 서로 자주 만나면서도 책 선물을 많이 해 줬고 또 엽서나 편지도 꽤나 자주 했었지요. 남들이 보면 연인사이로 오해할 정도의 분위기였는데 내가 더 그 친구를 듬뿍 빠져 있었답니다. 그 친구가 나를 펑펑 울게 만든 때가 몇 번 있을 정도로 우린 나누는 것들이 많았지요. 가슴 뜨거운 일들이랍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나를 나누렵니다.


그 친구도 결혼하고 나도 결혼하고 직업은 달랐지만 자주 만나며 삐지고 술 마시고 그렇게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지요. 그 친구와 자동차 드라이브도 자주 했는데 애인이 타는 것처럼 함께한 시간들이 풍요롭고 재미났답니다. 문학과 책, 그리고 아름다운 삶에 관해서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데다 장난기도 있고 유머도 나름 풍부합니다. 또 막걸리와 파전을 유독 좋아해서 어느 곳이던지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답니다. 그러니 애인을 태우는 것보다 재미났지요.


십여 년 전 가을날, 그 친구와 괴산, 수안보, 단양을 당일치기로 함께 다녀오는 날 있었던 일입니다. 지금도 그 드라이브를 잊지 못합니다. 그 친구가 운전하는 나를 엉엉 울렸기 때문이지요. 남자 둘이서 드라이브하며 둘 다 눈물을 펑펑 쏱았다고 생가해 보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생각해 보세요. 우린 결혼하고 살면서도 남자들끼리 그런 감성을 나누곤 했지요. 그때 정말 그랬습니다. 그 두 남자의 수상한 동행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답니다.

 

단양에서 용무를 를 마치고 돌아오며 송계계곡도 감상하고 수안보에서 커피도 한잔 했지요. 그리고 괴강을 거치며 오는데 괴강쯤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 때문이었지요.

 

저는 운전을 하고 그 친구는 어제 어느 잡지에서 아픈 감동으로 읽은 이야기가 있다며 주머니에서 꺼내 제게 읽어주는 거였어요. 내가 바쁘니까 읽을 시간이 없을 거라면서 아주 차분하게 읽어 주었지요. 나도 운전을 하며 빠져들어 갔어요. 가끔 좋은 시나 책을 서로 추천하는 친구라서 감성도 비슷하거든요. 같이 들어보세요.

 

"딸아이가 건넨 주먹 안에는......"


남편 사업이 실패로 여려움을 겪게 된 것이 불과 4년 전 일이었습니다. 직원 5명의 작은 공장이었지만 그래도 꾸준한 매출덕에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해 왔던 일터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더군요. 집도 절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우리 두 부부는 하루하루 절망의 나날 속에 지옥 같은 생활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나 초등학교 입학한 하나뿐인 우리 딸 하나에게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렇게 맞이한 설날아침, 형편으로 보자면 도저히 친척들 얼굴 보러 갈 면목이 없었지만 편찮으신 어머님께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몰라 무거운 발걸음을 큰댁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위아래 6남매의 대가족 중 막내인 남편인지라 다들 앞으로 어떻게 상황을 극복할 것인지 위로와 걱정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한편 고마우면서도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지요. 다를 넉넉한 살림은 아니기에 선뜻 금전적 지원을 해 줄수도 없는 노릇이고 보면, 모든 가족들이 그다지 편한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서둘러 나오려는데 , 조카 녀석들이 세배를 하겠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조카들이 10여 명 정도 되는데 우리가 자리에 앉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무조건 세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차, 이를 어쩔까요. 세뱃돈 말입니다. 수중에 돈이라야 몇만 원뿐인데 형님들께 꿔 달라고 이야기하자니 알량한 자존심이 똬리를 틀면서 이도저도 못하는 시간이 흘러 버렸습니다. 어쩌다가 내가 아이들 용돈조차 겁이 나서 못 주는 지경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얼굴이 저절로 빨갛게 상기되어 버렸습니다.


일단은 순서대로 하자며 큰집부터 순서대로 자리 잡고 앉아 세배를 받고 세뱃돈을 건네주었습니다. 저희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세배를 하고는 초롱초롱 기대하는 눈빛으로 저희 지갑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톡톡 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딸이었습니다.


 손에는 방금 어른들에게 받은 5천 원, 만 원짜리 지폐들이 몇 들려 있었습니다. 조용히 제 손에 그 돈을 쥐어주며 살짝 미소를 짓는 어린 딸아이. 그 의미를 (이 부분에서 글일 낭송해 주던 친구가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주루루 흘렸음) 아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쏟아졌습니다.


사실 전 세뱃돈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엄마가 과자 정도 특별히 챙겨준 게 다였거든요. 세뱃돈 문화도 어느 정도 커서야 있는 걸 알았거든요. 두 동생들도요.

 

운전을 하는 저도, 읽어 주다가 이어 읽어가기를 못하던 친구도 정말 울컥하다 서로 펑펑 울고 말았는데 왜 그리도 감동이 되던지요. 눈앞에 경치와 친구와 나의 마음이 한데 엉켜서 빚어낸 상황이었지만 왜 그리도 마음이 풍요롭던 지요. 그 친구는 나의 어린 시절을 조금은 아는 편 이어서 늘 마음으로 챙겨 주었고 저는 늘 따듯하게 그 마음을 받아들였던 사이라 공감이 무척이나 빠르고 눈빛만 보아도 상황을 짐작하는 사이랍니다. 사실 나는 세뱃돈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에 이 이야기가 가슴이 깊이 남아있지요.

 

음성 원남을 지나오면서 충북에서 유명한 보천 막걸리 두 병을 사서 나누고 청주에서 헤어졌는데 아마도 그 막걸리 맛은 최고였지요.

 

이런 소중한 마음과 심성을 지니고 있기에 남은 생애동안은 그 친구와 함께 할 거랍니다. 덩치보다 큰 훈훈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나이 사십 후반에 참으로 소년처럼 남아있는 애달픈 감성에 우리도 놀라면서 헤어졌답니다. 몆 년 전 일이었지만 지금도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아름다운 동행]이었지요. 지극히 따듯한~~~^^


이미 이십여 년 이야기입니다. 요즈음은 서로 뜨악해져 있답니다. 애증과 우정과 연륜이 쌓이다 보니까 눈빛만 봐도 아는 그런 사이 속에 오십을 넘기다가 서로 삐진 사이랍니다. 그 삐짐이 오래되었는데요. 그래도 내가 받은 게 훨씬 많으니 또다시 살갑게 다가가서 남은 생애를 풍요롭게 나눌 거랍니다. 그 친구는 저보다 책을 더 좋아합니다. 제가 단행본이 나오면 꼭 선물로 줄 거랍니다.


요즈음 나이가 드는가 봅니다. 그 친구가 보고 싶네요. 나도 그 친구에게 뜨거운 감동의 울림을 한 번쯤 줄 생각을 합니다. 그게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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