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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Feb 27. 2024

나 결혼식 안 할래

불효녀는 우깁니다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생각했다.


'결혼식을 하면 신부는 저런 옷을 입고, 저런 길을 걷고, 저렇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구나...!'



너무... 너무 부끄럽겠다...!



그때 나는 또래 틈에 얼굴을 들이밀고 얘기를 나누는 어린이 필수 미션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날 주목하는 모든 사람이 무서운 마당에 예식이라니.

심지어 그 시절엔 함 문화도 있었고, 사회자 멘트는 뭐랄까, 주로 노빠꾸였다. 무언가를 어렴풋이 이해할 무렵부터, 나는 '저 무례한 요구에 싫단 말도 못하고 응해야 할 미래의 나'가 너무 걱정돼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나는 늘 결혼을 꿈꿨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매번.

따뜻한 집, 보글보글 끓는 차돌된장찌개, 루시드폴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밤에 산책을 하고- 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늘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장면에 이르러 몸서리를 쳤다. 결국엔 결혼'식'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한다는 게 내 환상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



내 성향 외에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난 늘 하객이었으니 내가 할 일이라곤 고작 박수를 치고 밥을 먹는 게 전부였으나 결혼식을 앞둔 친구들의 사정은 아무래도 좀 더 복잡해 보였던 거다.


내가 해맑게 "준비 잘하고 있어?!" 하고 물을 때면 그 애들은 언제나 조금 불쌍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냥 눈 감았다 뜨고 나면 다 끝나있음 좋겠어...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고단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내 눈에 포착된 결혼식 절차만 해도 양가인사부터 상견례, 예물예단, 청첩장 모임, 웨딩사진 촬영, 청첩장 제작, 본식, 신혼여행, 답례품까지 한숨에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았으니.


게다가 좀 더 알고 보니, 웨딩사진 속 다양한 헤어스타일도, 식장의 꽃장식과 날리는 꽃잎도, 혼주의 화장과 머리스타일마저도 저절로 되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신랑신부의 선택이고 계약이었던 거다. 차라리 그냥 빵긋빵긋 웃으면서 하객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게 더 쉬워 보일 지경이었다.


이쯤 되니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위해 필요 이상의 돈과 심력을 쓰는 건 아무래도 낭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혼식의 목적이 공표와 축하라면, 굳이 예식의 형태를 빌릴 필요가 없었다. 정작 오래도록 얼굴을 마주하고 목이 쉬도록 축하해 주는 자리는 식장이 아니라 청첩장 모임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게 적어도 나에겐 더 가치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결혼식이 몽땅 의미가 없다거나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공허하고 버거운 과정일 뿐, 난 신부가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 신부보다 좀 더 많이 울고, 최선을 다해 구도가 엉망진창인 사진을 찍어주며 진심의 진심을 다해 축하해준다. 그저 내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식장에 설 용기도, 결혼식에 대한 환상도, 느끼는 필요성도 없으니 굳이 보통의 결혼식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요즘엔 세상이 바뀌어서 함 문화가 사라졌고, 결혼식 문화도 보다 정제되는 동시에 다양한 선택지들이 생겼다.

스몰웨딩이라던가, 하우스웨딩이라던가, 가족웨딩이라던가, 직계가족웨딩이라던가, 마이크로스몰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그마저도 일말의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점과 결국 식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 않던 어느 날 난 우연히 환상적인 단어를 접했다.

'노웨딩'이었다.

말 그대로 결혼식을 하지 않는 거였는데, 그러고 보니 식을 꼭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난 쾌재를 부르며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혼자 결정했고 (?)

장녀로서 부모님이 뿌린 축의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눈치만 보던 중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면서 그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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