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의 출근길 동안 유튜브를 본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으니 유튜브를 듣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거다.
통장 잔고를 확인한 후 인생이 좆됐다 싶을 땐 경제 유튜브를 보고, 통장 잔고를 안 봤는데도 좆됐다 싶을 땐 법륜스님 말씀을 듣는다. 볼 영상을 찾기도 전에 졸음이 쏟아지면 음악을 틀고, 재밌는 얘기가 듣고 싶을 땐 온갖 교양유튜브를 찾아 듣는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알고리즘에 뜨고, 뜰 때마다 듣는 영상이 있다. 절반 정도 듣다 보면 잠들기 때문에 후반부 내용은 모른다. 며칠 전에도 버스에 타자마자 에어팟을 꽂았고, 그 영상이 재생됐다.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가 떠올라 휴대폰 화면을 톡 쳤다. 열심히 재생 중인 영상 아래로 인기 댓글이 보였다.
'효과음이 너무 요란해서 집중이 안되네'
진짜 그런가 싶어 다시 영상을 재생했다. 이전엔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는데, 그 댓글을 읽고 나니 쉭- 뾱- 휘익- 하는 효과음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말소리에 집중하려 해도 안 됐다. 아마 그 사람은 그게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럴 수 있다.
댓글을 좀 더 읽어 보니, 24개의 댓글 중 7개의 댓글이 '효과음이 남발된다', '효과음 때문에 방해된다', '효과음 때문에 정신이 나갈 뻔했다', '효과음 거슬려 집중이 안된다'며 효과음을 질타하고 있었다. 사실 이미 누군가 제작자에게 알려준 내용을 구태여 왜 또 우르르 지적하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런데 진짜 재밌는 건, 똑같은 영상을 토막 내어 올려놓은 다른 영상들, 즉 그 영상과 똑같은 효과음을 가진 다른 영상들에는 효과음을 지적하는 댓글이 없었단 거다. 사람들은 영상 내용을 두고 왈가왈부할 뿐 효과음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니까, 효과음의 존재를 알아채버린 누군가로 인해 그 댓글을 본 사람들만 효과음에 사로잡혀버린 거다. 말 한 마디가 이렇게나 대단한지 몰랐다.
어쨌거나 난 그 영상을 다시 보지 못한다. 방금 다시 틀어보았는데, 역시나 효과음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 영상을 즐겁게 듣던 과거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 괜히 좀 억울하기도 하다.
개근거지.
학기 중에 여행 한 번 가지 않고 매일 학교에 나오는 아이더러 '여행 갈 돈도 없는' 개근거지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 그런 말로 서로를 모욕한단 거다.
난 기사를 통해 그 단어를 처음 접했고, 학교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들에게 요즘 이런 말을 쓰냐며 물었다. 그러나 교실에서 그런 말을 들어본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나도 그랬다.
교실은 서동요가 아이들을 매개로 퍼졌다는 걸 증명하는 공간이다.
애들은 하고 싶은 말을 도무지 참지 못한다.
아이들은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와 이무진의 '신호등', 장충동왕족발보쌈 노래를 생목으로 들려준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노래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뿐인가. '퀸카' 춤은 비록 메타몽이 추는 버전이지만 어쨌든 나까지 다 외울 지경이며
'어쩔티비'는 물론이고 '앙 기모띠' 같은 저질스러운 말도 숨 쉬듯 들려왔었다.
그러나 개근거지는 들어본 바가 없다.
물론 내가 아는 아이들이 우리나라 학생을 대표할 순 없다. 그러나 초등교사가 모인 커뮤니티에서마저도 그 말을 들었다는 선생님은 없었다. 언론에서 만들어낸 말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아이들이 교사 앞에서 각별히 말조심을 한 게 아니냐고 묻고 싶겠지만 그건 아이들을 과대평가한 어른들의 환상이다. 아이들은 교사를 npc 정도로 생각한다. 교사가 있어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다. 온갖 밈은 탄생부터 절멸까지, 구천 대신 초등학교 교실을 떠돈다. 내가 굳이 커뮤니티를 드나들지 않아도, 아이들은 가장 핫한 말들을 내 귀에 때려 박아 준다. 난 어제도 어떤 남자애가 '개저씨'라고 소리치는 걸 들었다. 마이크를 든 나보다도 크게 말해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조심성이 많은 아이가 뒤에서 소곤소곤 개근거지라는 막말을 내뱉고 다녔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아이들이 교사의 눈과 귀를 피해 그 말을 남발하고 다녔다면, 인권감수성이 높은 요즘 아이들과, 특히 그의 부모들이 그걸 듣고 그냥 넘어갈 리 없다. 교사에게 이르면 그만일 일인데 그걸 굳이 왜 참겠는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일방적인 모욕을 당하는데 그걸 감내하고 입을 다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모호한 정황증거보다 더 확실한 근거는, 개근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는 데 있다.
어떤 아이가 학기 중에 무려 2주간 호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치자.
그래도 그 애는 '개근'이 적힌 통지표를 받는다.
여행 갈 돈이 없어서 개근을 했든, 끝내주는 해외여행을 다녀왔든 둘 다 개근이란 거다.
학부모가 아닌 어른들에겐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요즘 학교엔 '출석인정결석'이라는 게 있다. 가족여행의 경우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학습을 한다고 인정되어 교외체험학습신청서와 보고서를 제출할 시 출석으로 인정된다. 결석이면 결석이지 출석인정결석이 뭔진 나도 모르겠다. 그저 이 아이들이 하루빨리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서 출근인정결근이라는 환상적인 개념을 만들어주기만 고대할 뿐이다.
물론 '미인정결석' 처리를 받고 가족여행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럼 결석으로 부를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난 교직생활동안 그런 학생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반대의 경우, 다시 말해 미인정결석 사유인데도 출석인정결석 처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 경우는 허다해도 말이다.
결론은, 어른들이 알고 있는 개근과 지금 아이들이 알고 있는 개근은 그 개념 자체가 다르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입장에선 매일 학교에 나와도 개근이고 여행을 다녀와도 개근이다. 똑같이 개근한 학생인데 개근여부를 근거로 거지라고 놀린다는 논리는, 요즘 아이들의 개념 속에 애초부터 존재하기 힘들다.
(현재의 출결제도 하에서 개근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주로 아파서 결석한 아이들일테니, 개근한 학생들에게는 개근거지라는 멸칭보다 개근튼튼이라는 찬사가 더 어울린다.)
게다가 출석인정결석으로 인해 정말 대부분의 아이들이 개근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개근에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통지표를 받고서 '나 개근이다'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다. '라떼'와 달리 개근여부는 아웃오브안중이다. 부모가 서류만 잘 꾸리면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개근이다. 만약 학기 중에 여행 한 번 못 가는 친구를 경제적 이유로 멸시하고 싶었다면, 아이들은 '개근거지'가 아니라 다른 용어를 썼을 거다. 개근과 해외여행은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을 더 따져보자.
어떤 아이는 실제로 그 용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여행도 못 다녀오는 개근거지 친구들이랑 놀지 마라'는 부모에게 듣고 배웠을 수도 있고 과거에서 회귀한 초등학생이 개근의 진정한 뜻에 기반하여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 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용어가 이미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극히 드문 케이스였을 거다. 비록 이제는, 뉴스를 보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용어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런 기사는 애초에 나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거다. 새로운 혐오를 창조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를 온종일 만나는 학교 현장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단어이고, 혹여 그런 말이 실제 있었다고 한들 그건 극히 일부 아이들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게 기사화 되고 비슷한 기사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그 말을 내뱉었다고 추정되는 아이들과 그의 부모들을 욕하고, 이게 진짜냐며 서로 묻고 기막혀하기 시작하면서 이제 그 단어는 전국에 퍼졌다.
성실히 학교를 다니던 평범한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는 난데없이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기자는 이 용어를 통해 물질만능주의를 개탄하고 아이들의 되바라짐과 그런 개념을 박아 넣은 부모들을 지탄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아니 사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어떠한 '어그로'를 끌고자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이들도, 교사들도, 부모들도 갑자기 튀어나온 개근거지 앞에서 어리둥절하다. 이 말이 퍼진 경로는 '이런 말이 진짜 유행하더라. 큰일이다' 보다는 '이런 말이 있대. 진짜? 미친 거 아냐?'로 웅성대는 목소리를 탄 게 더 주효했다. 태초의 죄인을 찾는 어른들의 웅성거림은 기어이 아이들에게 가 닿았을 거고, 최근엔 진짜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례가 튀어나왔다. 정말 기어이.
난 기사를 쓰기 전에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야 했다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그런 말이 있다는 걸 알림으로써 얻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중 무엇이 더 컸을까.
그 말을 듣는 평범한 부모들은 어떤 엉뚱한 의무감에 시달릴 것이며, 아무 생각 없이 씩씩하게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자기 처지를 어떤 방식으로 비관할까. 나는 좋아하는 영상의 댓글 하나 때문에 이제 그 영상에서 효과음밖에 듣지 못하게 됐는데, 아이들은 그 어찌할 수 없음을 어떻게 감당할까.
애초에 그 말이 실재했을지의 여부는 이제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이미 퍼져버린 말과 괄시와 혐오는 이제부터 진짜로 아이들 사이에 스며들지도 모른다는 거다.
난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굳이 그런 모욕적인 말을 쥐어줄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아이들에게 그런 죄를 지을 필요는 없었다.
*글과 같은 논리로, 이 글을 쓸지 말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혐오 단어에게 먹이를 주는 게 오히려 단어를 더 각인시킬까봐요. 글을 발행하기 직전인 지금에도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학교의 현실을 알 수 없는 어른들이 그 기사를 곧이곧대로 믿고, 죄없는 아이들이나 부모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게 늘 답답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학교현장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분들이 저 단어의 출처에 의문을 가지는 걸 보며(일단 제가 본 분들 중 저 단어를 들어봤다는 분은 한분도 못 봤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기사가 계속해서 나오는 걸 보면서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한번쯤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른들이 저 단어를 알게 된 지금까지도, 아이들은 저 단어를 내뱉지 않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겐 와닿지 않는 단어라는 뜻입니다.
막말로 애들은 자기 출결도 잘 인지하지 않고 지냅니다. 출석과 결석이라는 단어 자체도 안 씁니다. '결석할게요'가 아니라 '학교 못와요'라고 합니다. 게다가 개근거지 판정을 내리려면 한 학기 내내 친구가 결석을 하는지 마는지 관찰해야 할텐데, 아이들은 방학식 하루동안 친구를 비난하기 위해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싫으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욕을 하지 누가 친구 결석일수를 세고 앉아있습니까. 애들은 그냥 탕탕후루후루 하기 바쁘다구요.
어른이 나서서 혐오단어를, 그것도 어린 아이들을 겨냥하는 혐오단어를 강제로 유행시키려 노력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