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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남발하기 좋은 계절

by 이세이


‘갱상도’ 출신인 부모님 사이는 퍽퍽했으나 나는 언제나 우리 집안의 공주였다. 나는 매일 부모님과 통화를 했고, 무뚝뚝한 주름을 가진 아빠는 전화를 끊을 때마다 ‘사랑해, 안녕’ 하고 인사해주셨다.


30년을, 매일매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음에도 나는 사랑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산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해’라는 발화의 양이 한정된 것처럼.


초등학생 때에는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항상 담임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썼는데, 편지의 끝은 늘 ‘선생님 사랑합니다.’였다. 나는 열 살 남짓의 나이에도 그게 이상했는데, 난 사실 선생님을, 그러니까 아직 만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고 나와 몇 마디 얘길 나눠본 적도 없는 선생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스승의 날은 5월이었고, 나는 예의 바른 모범생이었으니 느린 속내 따위는 트렁크에 처박아둔 채 표현은 질주했다. 연필을 쥔 손은 안전벨트에 걸린 것처럼 덜커덕거렸지만 그래도 난 매년 그 편지를 선생님께 건넸다. 그게 진짜라고 믿으실까봐, 늘 조금 주저했던 것 같다.


나는 스무 살 때 처음 사랑이란 걸 해봤는데, 끼리끼리라더니, 하필 그 아이도 똑같이 사랑의 양이 정해진 남자아이였다. 우리는 다른 연인들이 매일 밤 ‘사랑해’를 속삭이는 동안, 우리가 하는 것은 진짜 사랑인지 토론하곤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가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증거는 물론 어디에도 없었으므로, 우린 서로에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지나 헤어지던 날, 나는 처음으로 그 애한테 사랑한다고 했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신 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헤어지고 1년쯤이 지나 그애에게 연락이 왔다. 그때 우리가 했던 건 사랑이 맞았다고 얘기했다.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우린 아주 신중했고 딱 그만큼 어리석었다.


첫사랑 이후로, 나는 사랑을 아끼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그런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나는 모두에게 사랑이 100쯤 있다고 생각했다. ‘3000만큼 사랑해’가 히트를 쳤으니, 3000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어쨌든 그런 건 아주 귀한 감정이고, 귀한 건 무한할 수 없으니까. 사랑을 100번 말하면 강도가 1이 되고, 10번을 말하면 강도가 10인 거겠지. 그래서 나는 내 사랑이 어설픈 애정이나 호감 때문에 희석되지 않고 정말 ‘사랑’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계속 사랑을 아꼈다.


그러나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남발한다. 미술 시간에 쓰고 남은 색지에도, 일기장에도, 손바닥보다 작은 편지지에도 사랑을 남긴다. 난 그게 늘 이상하다. 저 아이들은 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까. 나랑 보낸 시간이 얼마라고, 나랑 몇 마디나 나눠봤다고, 내가 뭘 했는데,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나한테 그건 너무 무거운 말인데, 저 아이들은 나보다 열 배, 백 배쯤 많은 사랑을 타고 난건가. 아니면 열 살의 나처럼, 선생님을 사랑하는 건 ‘그래야만 하는 일’이라고 믿어버린 걸까. 아이들은 그냥 내가 누가 됐든 사랑해버리기로 작정한 것처럼, 쉽게도 사랑한다.


그 말을 낼름 받아먹고 빙빙 돌리며 변죽만 올리는 것도 민망한 일이라 나는 이제 그냥 “선생님도 사랑하지이” 한다. 그냥 영업용 멘트인 건데 그것도 하다 보니 뻔뻔해졌는지 이제 별일도 아니다. 남발하다 보니, 내가 100이라고 믿어 온 사랑은 1000번을 말하고 10000번을 말해도 소멸하질 않았다. 그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하며 하나씩 뜯어내면 결국 사라져버리던 풀잎 한 줄기가 아니라 아무리 뜯어내도 결국 다시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같은 거였다.


그러니, 이 봄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대추 한 알에 담겨 있다는 태풍, 천둥, 벼락, 무서리나 땡볕 따위의 속내까지는 모르겠으나 새빨갛고 새파라며 샛노란 저 모든 것은 기필코 사랑이다.


카페 테라스에서 남자친구의 작은 눈을 빤히 보다가 "눈이 너무 작아서 눈동자가 잘 안보여!" 말하고, 그 애가 세상을 잃은 표정을 하면 내 눈이 더 작아질 때까지 깔깔대는 그 순간은 반드시 사랑이다.


나잡아봐라 하고 뛰기엔 나이가 무거워, 마구잡이로 피어난 벚꽃길을 아무렇게나 걷고, 오늘 나를 힘들게 한 열 살짜리 꼬맹이나 갑자기 고장나버린 설비에 대한 얘기 따위를 나오는 대로 지껄여도 미움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의 이 순간은 틀림없이 사랑이다.


그러니 이건 사랑이다. 그 애는 지하철에 자리가 나면 날 앉히고, 난 돈까스를 먹을 때면 꼭 두 조각을 그 애한테 주니까.


괜히 백화점 가전코너를 돌며, 건조기는 꼭 사야겠지? 난 큰 원목 테이블이 좋아. 청소는 내가 더 많이 할거니까 다이슨으로 골라도 돼? 하면서, 밥그릇만한 집이나 허름한 통장 잔고에 대한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은 채 심각하게도 심각한 이 순간은 그래서 사랑이다.


이게 뭐야? 물으니 헤엑 그건 보면 안돼! 편지란 말이야! 호들갑을 떠는 그 애한테, 너 글씨 너무 안 이뻐서 아무 것도 못 읽었어! 라고 말하지 않은 나의 인내심도, 한결같이 서툰 그 마음도 몽땅 사랑이다. 대신, 정말 정말 못 알아보게 되면, 대신 읽어 달라고 무릎을 베고 누워버려야지. 하는 뻔뻔한 작전까지도 그러므로 사랑이다.


벚꽃엔딩을 듣고서 결코 알지 못할 서로의 케케묵은 20대를 나누는 계절, 응아냄새나는 은행의 습격 없이도 알록달록한 계절, 사랑을 말해도 사라지지 않는 계절,


바야흐로

사랑을 남발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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