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이 Sep 20. 2023

(일부 삭제) 학부모님께 진짜 보내고 싶은 편지

(근데 실제로는 드릴 수 없을 것 같은)

3월 2일이면 학부모님께 편지를 보냅니다.


연락은 이런 방법으로 해 주시고, 기본 준비물은 무엇이니 챙겨주시기 바라며, 내 교육관은 이러하니 모쪼록 올 한 해 교육활동에 잘 협조해 달라는 인사 편지입니다.


3월 첫 편지의 내용은 부드럽습니다. 사실 진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따로 있으나 그래도 꾹 참습니다. 학부모가 담임에게 악의를 품고 마음만 먹는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학급경영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고, 그럼 저는 지독한 정신적 멀미에 시달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제가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러나 3월 2일에 진짜로 드리고 싶은 편지입니다.

학부모님들께서 교사와 교실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바입니다.

(*물론 저는 전체 교사를 대표하지 않으며, 교육에는 정답이 없으니 이 글도 정답이 아닙니다.)





1. 수치심도, 부끄러움도 느껴봐야 합니다.


일부 부모님들께서는 아이가 수치심이나 압박감을 느끼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합니다. 교사가 다른 학생들 앞에서 아이를 혼내는 것, 아이를 빈 공간으로 분리시켜 혼내는 것, 아이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이 모두 아동학대 고소로 이어지는 것은, 그 과정에 느꼈을 감정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거라는 부모의 굳은 믿음 때문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은 없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아이들은 때로 굴욕감을 느끼고, 당황스러워하고, 거부당하고 좌절할 것입니다. 자랄 때 이런 감정으로부터 차단당하는 아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큽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수치스러운 삶입니다.


똑같이 교과서를 가져오지 못한 상황이라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르게 대처합니다. 어떤 아이는 압박감을 느끼며 옆반 친구에게 교과서를 빌리고, 교사에게 "선생님, 제가 어제 숙제하려고 교과서를 가져갔다가 못 가지고 왔어요. 죄송합니다."하고 먼저 얘기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아이는 "선생님, 교과서 못 가지고 왔는데 부모님께 전화드려서 갖다 달라고 해도 될까요?"하고 묻기도 합니다. 이들은 어쨌거나 고민했을 겁니다. 실수(혹은 잘못)한 상황에 부담을 느끼고, 혼날까봐 걱정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상황을 극복할 방법을 부지런히 찾았을 거고,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교사에게 다가옵니다. 이런 상황에선 이런 말투와 자세가 좋겠지, 까지 생각해 가면서요. 그러나 똑같은 상황에서 또 다른 아이는, '교과서 어디 갔니?'라는 교사의 질문에, 그제야 큰 소리로 '어? 교과서 없어졌는데요?' 하며 당당히 얘기합니다. 자존감을 지켜주려던 부모의 노력은, 때로 아이의 방종으로 이어집니다.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곤란에 처할 행동을 하고 나서 당혹감을 느껴보아야 그걸 타개할 힘도 키울 수 있습니다. 민망함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돌발 상황에 대처할 방안을 강구하는 모든 과정이 학습입니다. 학부모님들께서 살아보셔서 아시겠지만, 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당장 교사 하나를 단속하여 아이가 좋은 말만 듣게 한다고 해도,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아이는 그 간극에 언젠가는 무너지고 맙니다. 아이가 어떤 잘못을 해도 교사가 괜찮다며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만 한다면, 그 아이는 왜 애써서 숙제를 하고 준비물을 챙기며, 귀찮게 질서를 지키려고 할까요?


그 애에게 세상은 이미, 무얼 해도 괜찮은 곳일텐데요.




2. 담임교사는 아이들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가진 모든 문제를 책임지거나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문제 상황이 발생한 후, 몇몇 학부모님께서는 교사에게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하라'라고 여러 번 요구합니다. 그러나 현재 교사에게는 아이를 제대로 훈육할 권한이 없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교사가 교육할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 그러지 마세요."라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학부모님들께서 익히 아시듯, 아이들은 말 몇 마디에 행동을 교정하지 않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아이 생활 습관을 완벽히 바로잡아 달라'라고 한들 부모님들이 그럴 수 없으신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기계가 아닙니다. 교사가 열심히 가르쳐도 아이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이가 바뀌지 않는 이유가 교사의 자질 부족 때문인 것도 아닙니다. 교사의 역할은 교육이므로 저는 아이에게 바른 행동을 충실히 알려줄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은 학생의 몫이며 가정에서의 꾸준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특히 교사는 방과 후, 주말, 학교 밖에서 일어난 아이들의 일탈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교사에게는 수사권이 없고 처벌할 권한도 없습니다. 학교 일과시간 외에, 학교 외 공간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교사는 알 수 없고, 알아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교사는 아이의 삶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일과 시간 중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지만, 일과시간 후에 학생이 다치면 병원에, 큰 다툼이 벌어지면 경찰서에 먼저 연락해 주세요. 그 외의 일은 가정의 몫입니다. 교사에게 화를 내시거나, 해결을 요청하셔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습니다.





3. 교사의 칭찬에 연연하지 말아 주세요.

<어린이라는 사회>에 수록된 글로, 내용은 삭제합니다.



4. 가정에서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많은 교육을 학교에서 담당하지만, 가정에서도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 일은 교사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 계절에 맞는 옷을 제때 세탁하여 입혀 주세요. 아침밥을 먹여 주세요. 매일 양치를 하고 샤워를 할 수 있게 챙겨 주세요.

- 아이가 눈이 나쁘면 시력에 맞게 안경을 맞추어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 체육활동을 하는 날에는, 알림장에 적혀있듯, 편한 복장에 운동화를 신겨 보내주세요. (크록스나 슬리퍼를 신고 체육활동을 하다가 다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 교사가 아이의 정신과 진료를 권유하면 아이를 위해서 병원에 데리고 가주세요. 교사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진료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 학습자료는 학교에서 제공해 드리나, 기본 학용품은 직접 구입해 주세요.

- 아이가 집에서 아프면, '내일 학교 보건실 가서 약 받아' 하지 마시고 집에 비상약을 구비하여 아이의 건강을 챙겨 주세요.

- 아이가 많이 아파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힘들 경우(특히 전염병 등)에는 가정 돌봄 해주세요.

- 매일 아이와 함께 알림장을 확인하시고, 아이가 스스로 체크하며 준비물을 챙길 수 있게 지켜봐 주세요. 혼자 몽땅 챙겨주지 마시고, (아직 습관이 들지 않은 아이에게) 혼자 알아서 하라고 방치하지도 말아 주세요.

- 학교에 가져가지 않아야 할 물건은 가져가지 않도록 해 주세요. (칼, 장난감 등) 아이의 책가방을 주기적으로 확인하시어 아이와 함께 책가방을 정리해 주세요. 책이 찢어져있지 않은지, 글씨는 바르게 쓰는지, 교과서는 텅텅 비어있지 않은지, 연필은 몇 자루나 챙겨 다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 주세요.

- 교사 흉을 볼 수는 있습니다. 완벽한 교사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교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아이 앞에서 교사 험담을 하지는 마세요. 아이는 부모가 싫어하고 욕하는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카페에서 동네 학부모님들과 얘기 나누실 때에도, '어른끼리 대화한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주의해 주세요. 옆에 아이가 같이 앉아있다면 모든 것을 듣습니다.





5.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교사도 감정이 있습니다. 나쁜 행동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아무리 그래도 교사는 사랑으로 감싸야지.'라는 생각을 거두시기 부탁드립니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충실히 가르칠 것이고, 사회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사회를 살아나가는 방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부모님과 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교사의 일은 가르치는 것이지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은 가정에서 하셔야 할 일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교사의 역할이 더욱 가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의 시선은, 부모님이 아니라 교사의 그것과 유사할 것입니다.


조금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를 맡겨놓고서 '갑'을 참칭하는 일부 학부모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부모 갑질'이라는 워딩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죄송하게도 학부모님은 갑이 아닙니다. 교사가 갑이 아닌 것처럼요.


학부모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거나 교사의 교육관에 무리한 도전을 계속하게 되면, 교사는 그 아이를 더 성실히 가르치려고 할까요, 혹은 '너 좋을 대로 살아라' 하며 내버려 두게 될까요? 그래도 교사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항변하고 싶으신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사도 사람입니다. 성직자도, 신도 아닙니다. 문제 학부모 밑에 크는 아이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도, 애써 가르치고 싶지도 않아 집니다. 최소한의 교육을 하며 1년 동안 그저 그 애를 버티게 됩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그렇듯 교사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6. 아이의 말을 다 믿지는 마세요. 그리고 답은 맘카페에 없습니다.


가끔 맘카페 글을 봅니다. '우리 아이 말이, 교사가 이러이러했다는데, 교사가 이래서 되냐'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럴 리가 있냐, 선생님께 직접 확인하라'는 댓글부터, '뭐 그런 선생이 다 있냐, 교육청에 전화하는 게 직빵이다'라는 댓글까지, 다양한 의견으로 불타오릅니다.


첫 글을 쓴 사람은 어쩌면, 정말 궁금해서 질문한 것일 수도 있을 겁니다. 선생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고, 당황스러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요. 또 어쩌면, 단순히 감정적 동조를 받거나 자신의 분노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안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 글들을 읽다 보면, 교사인 저조차 '이런 선생님이 있다고?' 싶습니다. 같은 교사가 봐도 이상하거든요. 물론 정말 이상한 교사도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정말 의아한 것은, 교사에게 상황을 물어보면 5분 안에 파악이 될 상황인데, 굳이 맘카페에서 집단 지성을 모으고 있단 겁니다. 출제 오류가 난 퀴즈를 푸는 모양새입니다. 정말 웃긴 건, 아무리 열심히 풀어도 답지는 애초에 거기 없단 겁니다.


'나는 솔로 16기'를 보셨나요? (예능이 아닌 교육방송이니 꼭 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그 방송을 보며, 그게 학교의 모습과 비슷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한 출연자가 아무리 '나는 A가 아니야'라고 말해도, 말은 A와 A', A''를 거치고 B가 덧대어지며 묘하게 와전됩니다. 결국 상황이 곪을 대로 곪아 터져 버렸고, 이 상황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하니 또 다들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기가 막히게 빠져나갑니다. 말과 상황과 의도 모두 교묘하게 섞여 흘러갑니다. 굉장히 기이합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떠들었는데, 결국 답은 당사자만 알고 있었습니다.


가끔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를 받습니다. 아이가 이러이러하다고 말하는데, 믿기지 않는데 이게 맞냐는 겁니다. 그걸 듣다 보면, 제가 너무 이상한 선생이 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제가 그 당시 상황과 아이가 했던 말까지 정확히 설명드리고 나면, 결국 학부모님께서는 '아, 그랬군요.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구요. 제가 아이 지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끊으십니다.


아이를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아이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솔로 16기를 보면 성인도 자기 유리한대로만 말하ㄴ....) 더불어 아이의 말을 듣고 학부모님도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당사자가 아닌, 주위 학부모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맘카페에서 답을 찾는 순간, 그 오해는 영영 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직접 목격한 상황이 아니고 직접 들은 말이 아니라면, 맹신하지 말고 그 일의 당사자인 교사에게 상황을 확인해 주세요. 교육에 대한 답은 맘카페에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안부 전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