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wins all?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서 보낸 시간이 많다. 오늘 낮잠에 나는 외할머니집에 있었다. 할머니는 볼 일이 있다고 잠시 기다리라며 나를 집에 혼자 두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적 없음) 집구석구석을 구경하며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배운 걸 보니 꿈속에서의 나는 어른이었나 보다. 꿈속에서 문득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져서 ㅡ송민자 할머니 오래오래 살아주세요ㅡ 하고 꿈에서 깼다. 할머니는 13년 전에 돌아가셨다.
사실은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했다. 훗날 할아버지의 직업이 경찰이었다는 걸 듣고 놀랄 정도로 할아버지는 참 다정하셨다. 할아버지는 매일 멋들어진 추리닝을 입고 계셨고, 뽑기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큰 체구에도 쪼그려 앉아 바늘에 침을 묻혀가며 뽑기를 콕콕 쑤셔주셨다.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그 추억뿐인 게 아쉬울 정도로. 주민등록번호가 전산화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아무리 서류를 떼도 ‘등록번호 없음’이라고 뜨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별이 무섭다. 용기로만 가득 찼던 20대엔 이별이 무서워서 관계를 시작 못 하는 친구들에게 기이한 반례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는 아주 겁쟁이다.
결혼을 잘하려면 연애를 많이 해봐야 한다 는 명제에 나는 반대한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상처가 많이 쌓여 좋은 사람이 와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디서 그런 말을 봤다. 사람에겐 타인에게 쏟을 에너지가 정해져 있어 초반에 많이 소진해 버리면 나중엔 남지 않는다고.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얼마 전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모든 만남에 진심이냐고. 나도 나의 이런 부분이 때론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나인걸. 나의 대부분의 장점도 이 지점에서 파생되기에 마냥 싫어할 수도 없다.
근 몇 개월 동안 꾼 꿈에서 버림받는 중이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n년 전의 사람으로부터, 오늘 내 꿈속에 방문해 준 할머니까지. (외출한다고 나를 일시적으로 떠나는 것이니 안심시켜 놓고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게 버림이 아니면 무엇이겠나) 꿈에서 깨면 울고 있는데 슬퍼할 새도 없이 출근할 시간이다.
러브 윈즈 올. 사랑은 승리한다.
오래간만에 컴백하는 아이유 앨범의 슬로건이다.
내가 평소에 의심조차 하지 않는 ‘선은 승리한다’는 명제와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하지만, 이번엔 지은이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지은아, 이거 맞아? 미련하더라도 진부한 사랑을 믿어보고 싶었는데, 내 10년 간의 데이터는 그게 아니래.
구원은 셀프라고들 하지만 내 인생의 구원은 내가 사랑한 타인과 내 잠재력의 콜라보였다. 타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나의 모든 걸 알고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 나를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줄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많은 걸 깨닫고 성장하기도 했지만, 관계의 우열 혹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인연도 떠나가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감사한 것은 이성애가 아니라 내 곁에 오래 머물 수 있었다는 점.
어쨌든 나는,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기에는 너무 모자란 사람이라는 거다. 내 마음에 드는, 결이 맞는 타인을 찾아 헤매는 여정도, 그와 맞춰가며 나의 바닥을 목격하는 과정에도 이골이 났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 넘쳐나는 사랑을 아직 덜 자란 마음들에 쏟으려고 한다. 적당한 거리와 가꾸어진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학교 현장에서. 듬직한 양분을 가진 마음이 유지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물론 고마워요. 서른두 살까지 밑 빠진 독에 열심히 마음을 부어준 사람들. 내가 그 빚을 다 갚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충전하고 있기를. 마음의 평안을 빌어요. 당신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야. 생에 한 번쯤은 사람을 바꿔냈다는 위안을 안고 살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