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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l 18. 2024

작고 귀여운 물놀이 속에서 살아내는 법

  외면하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들리는 모든 말들에는 피드백을 해줘야 했고, 읽히는 모든 글들은 꼭꼭 씹어 한 글자씩 소화를 해내야 직성이 풀렸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파악하려고 애쓰는 탓에 자기 객관화가 꽤 되어있는 편이다. 사소한 변화까지 놓치지 않고 빼곡히 물음표를 던져왔으니까. 감정의 한계치는 어디까지인지, 업무량의 한계치는 어디까지인지 잘 파악하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게 일상을 굴리는 게 남들은 잘 모르는 내 특성 중 하나였다. 우당탕탕 굴러가지만 계획된 모험과 예측된 도전이었음을.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침내 자리를 내어 준 일터는 재빠르게 내 역량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늘 체력 부족과 인내심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으레 겪는 사회화 과정이려니 이를 악 물고 버텼다. 내 세상의 매뉴얼 밖에 있는 것을 거듭 요구 당해도 어떻게든 해내려 애썼다. 그렇게 한계치에 도달하는 날들이 이어졌고 매번 머리 위엔 비상등이 울렸다.


  외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매일 주어지는 퀘스트를 깨내야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ㅡ 아니 사실 깨지 못해도 자리는 지킬 수 있다. 다만 내 욕심이 날 가만두지 않았다. 집단 내 평균 이하로 존재하는 감각은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게 나의 허상일지라도. ㅡ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과 울음을 삼키며 시간을 보내온 게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


  필라테스 학원에서 허벅지 뒤쪽 근육을 풀고 있었는데 별안간 눈물이 흘렀다. 선생님께서 왜 그러냐고 물으시는데 멋쩍게 땀이라고 대답하고 동작을 계속 이어갔다. 그 동작이 끝날 때까지는 뺨에 계속 눈물이 흐르고 있었음에도. 어찌저찌 운동을 끝 마치고 나서야 생각했다. 왜 눈물이 났나. 슬펐나. 화났나. 어떤 부분이 ..? 당황스러웠다.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유를 모른 채로 운 적은 없었다. 남들보다 내 감정을 자주 들여다보고 또 보살피는 편이라 이런 적이 없었던 것이다. 왈칵 엎어져 운 적도 많았지만 다 이유 있는 울음이었다.


  친구에게 이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니 생각보다 힘든가보네 밥은 잘 챙겨먹고있니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내가 요새 밥을 잘 못 먹는다 그러고보니. 입맛이 없어서 간단히 때우고 도피처로 택한 취미 생활에 푹 빠져있다보니 눈치채지 못했다. 밥을 제대로 못 먹으니 운동을 하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답답했으리라.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포기하는 법을 몰라 외면이라도 해보려고 얇은 막으로 아주 여러 번 덮어놓았는데 이럴 경우의 부작용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아주 작은 자극으로도 쉽게 찢길 수 있단 거구나. 무척 당황스럽다. 큰 파도에 <작고 귀여운 물놀이> 라고 이름을 붙여놓으면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말처럼 쉽지 않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그리고 이번만큼은 깊게 파고들고싶지가 않다. 내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은 조용히 덮고 지나가고 싶다. 그동안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만 욕심내며 살아올 수 있었나보다. 운이 좋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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