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글방 58기 - 두 번째 주제: 섹스와 미모
10점 만점에 7점인 여자가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한다. 만점짜리 여자는 부담스럽다나. 누가 봐도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갖추었으나 희소성은 만점짜리보다 덜한 여자, 그게 바로 7의 여자다. 연애 유튜브에서 말하는 7의 여자의 기준은 아래와 같다.
1. 키빼몸(키에서 몸무게를 뺀 수치) 108 이하로 만든다.
2. 머리카락을 BP(Bust Point, 유두) 아래까지 기르고 고데기를 한다.
3. 풍성한 속눈썹을 연출한다.
4. 허리 라인이 보이는 옷과 무릎 위로 오는 치마를 입는다.
5. 윗니만 자연스럽게 보이는 웃는 얼굴을 만든다.(아랫니가 보이지 않아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 5가지 조건은 ‘여리여리한 이미지’를 위한 규정이다. 한국 연애 시장에서 연약한 이미지는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과 같이 여겨진다. 연애 유튜버는 7의 여자를 설명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당연히 큰 가슴을 좋아하지만 마른 C컵은 100명 중 1명뿐이니 통통한 C컵보다는 그냥 마른 A컵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꿩 대신 닭이라는 거다. 7의 여자는 조금 더 높은 등급의 닭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나에게도 7의 여자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첫 이별을 겪고 복수심에 불타 다이어트를 하던 스무 살의 여름, 당시 유행하던 무제한 칵테일바에 방문하러 강남으로 향했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에 하늘거리는 블라우스, 허벅지를 반쯤 가리는 플레어스커트를 입었다. 걸을 때마다 나풀대는 치마 때문에 계단을 오를 때면 손바닥 크기의 가방으로 엉덩이를 가려야 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올라 손잡이를 잡고 창밖의 한강을 구경하는데 갑자기 귀가 먹먹해졌다. 잇달아 시야가 좁아지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몸은 고꾸라져 앞 좌석으로 쏟아졌다. 얼떨결에 자리를 양보받아 숨을 몰아쉬었다. 속이 매슥거리고 식은땀에 화장이 지워졌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난생처음 겪어보는 기절이었다. 알고 보니 미주 신경성 실신이었다.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긴장으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어 혈압이 낮아지고 이로 인해 뇌에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상태라고 한다. 이별 후유증으로 실신이라니? 내가 바로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순정 만화의 주인공? 자아도취를 하다가도 걱정이 되어 다음 날 엄마에게 말했더니, 체중 감량할 때 으레 겪는 일이라고 했다. 걱정 어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 조금 섭섭했으나 체중은 빠지고 있었으므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청순한 여성의 상징은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과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가녀림이다. 어깨가 딱 벌어지고 종아리가 단단한 포카리 스웨트 모델은 없었다. 마른 체형을 타고나지 않는다면, 그런 몸을 갖기 위해서는 운동이 아니라 식이요법에 집중해야 한다. 그 시절 깡 마른 연예인들의 다이어트 비법이라 알려진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따라 했다. 하루에 500kcal만 섭취하고 필요할 때만 집 밖으로 외출을 했다. 운동하지 않아 근육이 부족하니 몸무게는 늘 고무줄이었다. 야식과 술자리가 잦은 학기 중에는 5kg 찌고, 방학이 되면 극단적인 식이요법으로 5kg 빼는 생활을 반복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학기가 시작되면 꼬리를 한껏 펼쳐 멋을 부린 화려한 공작새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과제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코듀로이 소재의 블라우스와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회색 H라인 치마를 입고 강의실 앞 단상에 올랐다.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 복학생 오빠가 나랑 같은 학번 동기에게 말을 걸었다.
“저 정도면 몇 컵이야? 쟤 뽕이래?”
“오빠,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꽉 찬 B 정도는 되려나? 너는 여자니까 알 거 아니야.”
동기와는 친했다지만, 나와는 개강총회에서 말 몇 번 섞은 게 전부인 사람이었다. 동기가 대꾸하지 않자, 복학생들 사이에서 내 옷 위로 보이는 가슴의 모양이 뽕인지 아닌지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발표 후 질의응답 시간에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지는 그들이었다. 공작새의 깃털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만든 걸까.
한 번 쓰러진 이후에 여름마다 찾아오던 미주 신경성 실신은 몸무게 증량 이후 사라졌다.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탈코르셋 열풍이 불었다. 탈코르셋은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강요되는 외모 규범을 ‘코르셋’으로 규정하고 거부하는 실천 운동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성별을 떠나 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나 역시도 긴 머리를 자르고 다이어트를 중단했다. 2년 동안 체중계를 멀리하며 10kg 불어났다. 행복했다. 매일 아침 몸무게를 달지 않아도 되었고 시간대와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 먹었다. 외모 강박에 시달릴 때는 내 몸에서 결점만 찾았는데, 강박을 내려두니 통통한 나도 제법 사랑스러웠다. 같은 담론을 공유하며 뜻과 행동을 함께하는 친구들 사이의 결속력이 높아졌고 연애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대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나아가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 발표를 시작해 왔다. 나와 친구들의 삶을 이루는 동심원이 점점 멀어졌다. 왁자지껄하던 주말이 점차 고요해지고 평일에만 약속이 가능하다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나의 짝꿍을 찾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연애 시장에 복귀하니 불어난 몸은 걸림돌로 느껴졌다. 연애 시장에서 통통한 여자는 반기는 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 수요에 따라 상품의 가치는 높아지고 높은 가치의 상품을 가지려면 비슷한 가치의 상품으로 교환을 해야 한다는데, 어떻게 가치를 높여야 하지? 연애를 시작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기초 지식 없이 공부를 시작하는 수험생의 심정으로 유튜브로 정보를 찾아봤다. 그러다 7의 여자 개념을 알게 됐다. 보면 볼수록 7의 여자 정도는 되어야 원하는 남자 짝꿍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기준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연애를 잘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운이 많이 따라야 하는 남의 일 같기만 했다.
늦깎이 연애 수험생은 7의 여자를 설파하는 연애 유튜브를 틀어놓고 잠시 과거를 떠올린 뒤에야 번뜩 알아차린다. 다시 예전처럼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출근으로 정신없는 아침마다 고데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눈에 먼지가 잔뜩 들어가는 속눈썹도 더 이상 붙이고 싶지 않다고. 별안간 메모장을 열어 ‘나이 들수록 멋진 여자 5 계명‘을 써 내린다.
1. 키에서 몸무게를 뺀 수치에 집착하지 않고 인바디 체성분 분석 결과를 기준으로 나만의 체중 관리 목표를 세운다.
2.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하며 근육을 발달시켜 관절을 보호한다.
3. 업무적 공식 행사에 격식 있는 옷차림으로 참석하는 것처럼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는 옷을 여벌로 준비해 둔다.
4. 건강한 정신에 맑은 눈빛과 밝은 미소가 깃드는 법이니 마음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5. 마음이 향하는 방향으로 굳건히 나아간다. 나의 세계를 이루는 기둥이 몇 번이고 무너지더라도 새로운 싹을 틔워낼 줄 안다.
그렇게 살아가자고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