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 식탁 위에 크림 카레 한 그릇이 놓인다. 벽에 붙어있는 수제 메뉴판에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매콤하고 고소한 가정식 크림 카레라고 적혀 있다. 노란 묽은 카레에 밥 두 덩이가 눈사람 모양으로 포개어져 있다. 까만 깨의 두 눈과 옥수수 두 알의 부리를 가진 밥 덩이 병아리는 반 토막 난 방울토마토 모자를 쓰고 있다. 병아리의 몸통 끝자락부터 숟가락으로 살살 퍼서 카레를 듬뿍 묻혀 입에 넣는다. 고소한 감칠맛이 온 입안에 퍼진다. 가지런하고 아기자기한 가정식의 과하지 않은 다정함이 문제였을까. 그릇을 절반쯤 비웠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실은, 술을 제외하고는 며칠 만에 먹는 끼니였다. 민사 소송 고소장을 접수하고 나서야 겨우 끼니를 챙길 수 있게 되었다.
1년 전,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이 집에 거주하는 2년 사이에 토지의 가격이 내려가 전세 보증금 액수를 낮추어 다시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으면 집주인이 벌금을 내야 한다고. 알겠다고 일정을 잡아달라고 한 후에 기다리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약속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집주인은 벌금을 맞았다. 의아해하던 차에 집주인에게 연락이 온다.
[보증금 드릴 돈이 없습니다. 파산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파산 이후에 보증금 대신 소유권을 넘길 테니 기다려주세요.]
집주인의 말을 믿고 기다린다. 아니, 기다린다기보다 그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변덕스러운 파도와 같은 일상을 살아내느라 계약 같은 건 종종 잊는다. 그 사이에 집 앞으로 다양한 종류의 압류가 들어온다. 그러니까 집주인은 우리에게 기다려달라고 하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이다. 집에 압류가 걸리면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집주인은 내게 집의 소유권을 넘길 수가 없다. 집주인의 권리를 온전히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다가오는 겨울에 은행은 전세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을 것이다. 집에 압류가 걸려있다는 건 집주인의 재정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집에 살기 위해 나는 은행에서 전세 보증금의 일부를 대출받은 상태였다. 은행에서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 돈을 즉시 갚아야 한다.
법무사를 찾아간다. 집을 직접 경매에 부쳐 주택 소유권을 가져오기로 한다. 경매를 직접 부치기 위해서는 집주인이 보증금 변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선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진행해 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주인의 주소가 필요하다. 오랜만에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서류를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되도록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5시간이 지나도 답이 없어 전화를 건다. 오토바이 운전 중이라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 뭐 보내시게요? 그런데 제가 사업이 망해서 집이 없는 상황입니다 ..]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한 서류를 보내려고 합니다. 서류를 직접 받으실 방법이 없을까요?]
[떠돌이 생활 중이어서요 .. 어디 정해놓고 받을만한 데가 없네요 ..]
새벽 시간이 되어서야 드문드문 답장이 온다. 문장이 끝날 때마다 말 줄임표가 붙는 대화를 무겁게 마치고,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 같아 밤잠을 설친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법무사와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달하자, 법무사에게 장문의 문자가 온다.
[지급명령은 반드시 일반송달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송달이 아닌 공시송달을 받기 위해서는 지급명령이 아니라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 (...) 비용 절감을 위해 지급명령을 권유해 드렸으나, 어쩔 수 없이 정식 소송을 거친 다음에 판결문을 받을 수밖에 없겠네요. 총비용은 2배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휴, 이게 또 무슨 소리인지. 그냥 대충,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건 일이 커졌다는 뜻일 거다. 한숨 한 번 쉬고 어려운 언어 지문을 해석하듯 문자를 곰곰이 뜯어본다. 돈을 더 내야 한다는데 그 과정이 합당한 지는 한 번 살펴보아야 결정할 것 아닌가.
법무사와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법무사가 사용하는 단어들을 알아듣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활용한다. 지급명령, 공시송달과 같이 생소한 단어들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여 뜻을 알아본다. 이번 문자는 그러니까, 집주인이 서류를 직접 받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애초에 생각했던 행정 명령 방식보다 비용을 2배 더 들여서 민사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자 한 번에 150만 원이 곧바로 300만 원이 된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다음으로 인공지능 챗봇에 법무사의 메시지를 내가 제대로 해석한 것이 맞는지,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인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묻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상황을 설명해 드리고 어떻게 결정하면 좋을지 우리 가족의 뜻을 모은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답장을 보낼 수 있다.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한 절차도 복잡하지만 사람 간의 시차도 문제다. 모두 같은 나라에 살고 있음에도 연락에 시차가 있다. 가족들은 생업이 있으니 퇴근 이후에나 연락이 되고, 법무사는 근무 시간에만 연락이 된다. 심지어 집주인은 자정이 넘어서야 연락이 된다. 끊임없는 연락의 굴레에서 며칠을 빙글빙글 돈다. 답장이 늦어지자 법무사에게 또, 다시 연락이 온다. 새로 작성한 고소장과 이에 따른 견적서를 보내온다. 연락의 굴레 안에서 나는 서서히 말라간다. 그렇다고 혼자 결정하기에는 아는 게 부족한 듯 느껴져 꼭 전화기를 붙들게 된다.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나는 나이만 먹었지 아직 한참을 어리고 여리다는 걸 실감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고 내게 가장 가까운 샌드백은 애인이 된다. 고의는 아니다. 자꾸만 계획이 틀어지고 혼란스러울수록 애인과의 연락을 끊을 수가 없다. 집 밖의 누군가와 연락을 이어가는 일은 나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애인은 야근이 잦은 회사원이다. 고로, 야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된 상태로 나의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 전화를 한다. 당사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 들어 얼마나 알아들을 수 있겠냐 만은, 하루 30분의 통화를 통해 심경을 토로해야만 나는 겨우 밤잠에 들 수 있다. 그러나 며칠 사이 상황의 전개가 가팔라질수록 하루 30분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끼니를 챙겨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타인의 온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일에 지쳐 스스로 물먹은 솜이 되는 사이에 쌓여버린 빨래와 먼지 더미를 함께 치우고,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함께 마셔줄 그런 돌봄과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