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사주 카페를 찾았다. 3년 전, 친구와 재미 삼아 신년운을 보러 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사주를 봐주는 할머니가 그해의 운세를 그대로 맞추어내는 바람에 무서워서 방문할 수가 없었다. 사주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모두 진짜가 되어 버릴까 봐 겁이 났다. 갑자기 용기를 내어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속 조급함이 두려움을 이겼기 때문이다. 오래된 소파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작은 사각 종이에 내 이름과 성별, 생년월일시를 적는다. 종이의 하단에는 보고 싶은 운세를 고를 수 있는 칸이 있다. 신년운, 결혼운, 금전운, 취업운, 연애운 5가지 항목 중에 앞의 3가지 항목에 동그라미를 쳐서 사주 할머니에게 수줍게 내민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할머니는 종이를 받자마자 커다란 종이에 알아볼 수 없는 한자를 거침없이 써 내린다. 그리고 내게 묻는다.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
“네 ..”
“자기보다 부지런한데? 되게 성실해. 그리고 사람이 착하다.”
맞는 말이다. 침을 꼴깍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언제쯤 만났어?”
“작년 봄이요.”
“음, 처음에 자기한테 푹 빠져있었겠는데. 거의 자기한테 돌아있었다고 나와.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콩깍지가 좀 벗겨졌네. 나쁜 뜻은 아니고. 서로 조금 편해진 걸로 보여.”
어쩌면 당연한 말인데, 이것도 꼭 맞는 말처럼 느껴진다.
“자기는 논밭의 흙인데 더울 때 태어났어. 곡식을 심어야 해서 물이 필요한데 낮에는 더우니까 밤에 돌아다녀야 돼. 그래서 잠을 깊게 못 자. 밤에 생각이 많고 잠귀가 엄청 예민해. 푹 못 자니까 저혈압이랑 신경성 노이로제 늘 조심해야 해. 컨디션 좋으면 얼굴이 장미꽃인데, 컨디션 나쁘면 할미꽃이야. 그대로 다 드러나. 그래서 자기한테는 더위를 피하게 해 줄 울타리나 그늘막이 필요해. 그 역할은 남편. 결혼하면 마음이 좀 안정될 거야.”
안 그래도 가까운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은 게 느껴져 부러운 참이었다. 인생에 결혼은 없을 것 같았던, 혼자서도 잘만 살 것 같았던 친구들도 내 편을 찾았다며 편안한 밤을 보내는 걸 보고 저런 게 결혼의 효능인가 싶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결혼이 아주 위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내 삶도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는데 타인이라는 거대한 변수를 인생에 넣는다니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머릿속에 늘 맴돌았던 물음표가 주변의 신혼부부들을 보며 점점 옅어지고, 안정감에 대한 욕구는 자꾸 고개를 들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냐, 하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는 차에 결혼 시기가 궁금해져 사주를 보러 온 것이다.
“네. 그래서 제가 언제쯤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만나는 애랑? 그건 상대방 사주도 있어야 알 수 있지.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서 나한테 운이 들어온다고 해도 상대방한테 안 들어오면 할 수가 없으니까.”
“아, 그래서 제가 준비해 왔는데요..”
애인의 생년월일시가 적힌 종이를 조심스레 내민다. 할머니는 또, 다시 커다란 종이에 알아볼 수 없는 한자들을 마구 적고는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말한다.
“작네 ..”
“네 ..?”
“잘 삐지겠는데?”
“아, 그렇죠. 마음이 작다는 거구나.”
“이런 사람은 어르고 달래야 해. 윽박지르면 안 돼.”
“아 .. 제가 윽박지르는 것도 보이나요? 아니면 제가 혹시 그렇게 생겼나요?”
놀라서 말이 빨라진다. 애인은 착하고 나보다 성실하다. 그런 부분을 좋게 생각하여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인생의 파트너로서 신뢰를 쌓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자주 삐지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나는 기분이 상하는 즉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는 성격인데, 애인은 예고 없이 진지한 대화가 오가거나 불편한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을 못 버텨한다. 게다가 나는 불편한 상황이 끝나면 기분이 금방 회복되는데, 애인은 한 번 기분이 상하면 꽤 오래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애인은 자주 일정을 까먹는다. 핸드폰에 일정을 적어두는 어플을 활용하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으나, 익숙하지 않은가 보다. 얼마 전에는 어머님 생신을 잊은 채로 데이트 일정을 잡아버려 일정을 급하게 바꿔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실수가 반복되다 보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야? 30분간 쏘아붙였더니 애인은 며칠을 시무룩해한다. 나는 또 두세 시간이면 까먹고. 며칠간 이어지는 묘한 냉랭함에 나는 애인을 답답해하지만, 애인은 나를 버거워한다.
“답답하다고 윽박지르면 안 돼. 조금 어리바리해 보여도 조곤조곤 말하고 기다려 줘. 그럼 얘는 너밖에 몰라. 네가 물이 필요하면 얘는 물도 길어와서 대줘. 결혼한다면 반대는 안 해. 대박 나지는 않더라도, 둘이 결혼하면 별일 없이 잔잔하게 살 팔자야.”
“그래서 결혼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이시나요?”
할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뗀다.
“겁이 많네. 결혼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 얘가 말을 안 꺼내겠는데?”
“그럼 제가 끌고 가면 되나요?”
“에이, 안 돼. 그럼 도망가. 얘는 어르고 달래야 한다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야 돼.”
실제로 우리는 이 문제로 인해 결혼 이야기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이어가고는 있으나 계획의 구체화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애인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건 나를 사랑하고 계속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는 별개라고 했다. 사주풀이 결과에 현실의 답답함이 얹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언제까지요? 언제까지 가만히 기다리면 되나요? 저 이러다가 늙어서 불임되는 거 아닌가요? 자식 자리는 살아 있는 거죠, 지금? 남편 자리는 아까 있다고 하셨고요.”
“있어.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어. 하, 근데 얘가 말을 할 생각을 안 하네. 잠시만, 보자.”
할머니는 종이를 뚫어져라 들여다 보고는 이내 손가락 마디마디를 손톱으로 누르며 계산을 한다.
“올해 2월, 7월, 11월에 남자가 들어오니까 한 번 만나 봐.”
“네 ???”
“괜찮은 사람들 들어와. 어쩌면 지금 만나는 사람보다 괜찮을 수도 있겠어. 연락 오면 거절하지 말고 일단 한 번 만나 봐.”
“아니, 저는 얘랑 만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을 알아보고 싶지는 않아요. 별로 헤어지고 싶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얘도 너랑 못 헤어져. 좋아한다니까.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는 오직 하나, 걔의 두려움이야. 그래도 승부욕이 세서 헤어지려고 하면 갑자기 결혼하자고 붙잡을 수도 있어. 위기감이 생기면 가능성이 좀 보이네.”
멍해진다. 연애하는 도중에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일은 옳은 일도 아닐뿐더러, 다소 피곤하게 느껴진다. 실은 주변 지인들도 나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가끔 비슷한 방법을 추천하였으나, 때마다 무시해 왔다. 그렇지만 용한 사주 할머니가 말하니 그게 꼭 정답 같아서 마음 한편이 콱 막힌다. 그날 밤도 사주 속의 나는 물을 찾으러 간 건지, 남편감을 찾으러 간 건지 자꾸만 잠에서 깬다. 결국,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음 날 애인과의 통화에서 다 말해버리고 만다. 사주 할머니와 나눈 대화들을.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덧붙인다.
“나는 위기감 조성 권법 같은 거 사용하고 싶지 않아. 결혼까지 가는 확신을 얻기 위해 그런 치졸한 방법으로 네 마음을 얻고 싶지 않다고. 정말 네 두려움만이 문제가 된다면, 그건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알아서 잘 판단하고 현명한 선택을 빠른 시일 내에 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