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글방 58기 - 첫 번째 주제: 힘과 돈
주말의 한낮, 암막 커튼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빛과 동침하는 평화를 깨고 불청객이 찾아왔다. 코를 찌르는 매캐한 냄새.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 문을 벌컥 연다.
“아, 씨. 담배 좀 피우지 말라니까.”
화장실을 가득 메운 맵고 칼칼한 공기. 범인은 앞집일지 아랫집일지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서 들어오는 냄새라는 것뿐. 평화로운 주말의 시작을 이 새끼 때문에 망쳤다는 사실에 분노가 훅 차오른다. 처음이 아니기에 더더욱. 핸드폰을 집어 들어 애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아니 자기야, 아랫집 새끼 또 담배 피우나 봐. 냄새가 화장실을 메우다 못해 온 집 안에 퍼져서 이것 때문에 깼다니까. 지가 모닝콜이야 뭐야. 어떡하냐, 진짜.]
애인은 아직 늦잠의 달콤함을 누리고 있는지 답장이 오지 않는다. 아빠한테 전화를 건다.
- 어, 딸~ 무슨 일?
“아빠, 이 새끼 또 담배 피워. 그저께 건물관리업체에 연락했을 때 경고 주겠다고 했는데 안 했나? 아니면, 어차피 본인 집에서 담배 피울 배짱이면 누가 말해도 안 들을까?”
- 아이고, 주거지 실내흡연은 불법이 아니라 건물관리업체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거야.
“나 진짜 너무 화가 나고,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찾아가서 얘기해 보면 안 되겠지?”
- 아빠가 저번에 말했잖아. 층간 소음, 담배 냄새로 찾아가서 얘기하는 거 불법이라니까.
그놈의 불법, 합법. 아빠는 도대체 누구 편인지, 하나밖에 없는 딸 편 좀 들어주면 안 되나?
“아니 그럼 나 어떡하라고? 그냥 이렇게 계속 간접 흡연하다가 암에 걸리기라도 하라는 거야?”
- 아빠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어떡하라고 그럼. 네가 지금 나한테 전화 걸어서 나아지는 게 없잖아. 네 집 건물에 관리인이 상주하면 이웃이 담배 피운 즉시 얘기할 수 있겠지. 그럼 바로 조치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잖아. 네 집이 아파트도 아니고, 관리사무소도 없잖아. 관리 업체를 용역으로 쓰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뭐? 그럼 내가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거야? 돈이 없어서 그런다고?”
- 지금 상황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환풍기를 종일 틀어놓든지.
“아니 환풍기를 종일 틀어놓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가 전세 사기 때문에 이 집에 발 묶인 걸 알면서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뭐야?”
- 화내지 마. 아빠 지금 밖이니까 나중에 통화해.
하, 씨. 내가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니었다. 어젯밤에 ChatGPT랑 얘기해 보니 환풍구에 댐퍼를 새로 설치하면 된다길래 도와줄 수 있냐고 물으려고 했다. 어쩌다가 주거 형태 이야기가 나와서 얘기가 이렇게 흘러버린 건지 속상했다. 이 집의 주인은 망했다. 따라서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되었고, 내년부터 법적 조치를 해 보려고 법무사를 알아보는 중이다. 상황을 뻔히 알면서 아파트 얘기는 왜 꺼내는 거야. 다음에 이사 갈 집으로 소형 평수 아파트를 생각했기에 더 아팠다. 같이 살 땐 이렇게까지 무심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따로 사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 훌쩍이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찰나에 핸드폰이 울린다. 몇 분 전 애인에게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왔다.
[아휴, 또 그러네. 어떡하냐. 그렇다고 찾아갈 건 아니지? 남자라며.]
[아니. 찾아가는 거 불법이래.
건물관리업체에 연락했었는데 경고 줬는지 아닌지 모르겠어.
오늘은 주말이니까 관리인한테 또 연락하면 안 되겠지?]
[앞집 아니고 아랫집인 건 확실해?]
[샤워 소리 들리면서 냄새나는 거 보니까 아랫집 같은데.]
[앞집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다며, 그 이후에 냄새나기 시작한 거 아니야?]
[몰라. 그게 중요해 지금?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잖아.]
진퇴양난이 딱 이런 건가. 나는 발이 묶였고,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래, 댐퍼나 알아보자 싶어 포털사이트에 ‘화장실 환풍구 역류 방지 댐퍼’를 검색한다. 여러 가지 모델이 줄줄이 나온다. 뭐가 괜찮은 제품인지 알아보려고 이것저것 클릭하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1인 가정의 가장이 되기에 나는 너무 나약한 건가. 아니면 다들 이렇게 독립의 과정을 겪는 건가. 2인이나 3인 가정이었으면 해결이 조금 더 빨랐을까.
처음 담배 연기가 넘어오기 시작한 건 가을이었다. 담뱃재 향이 퍼지면 잠깐 인상을 찌푸리고 환풍기를 10분간 틀어놓았다. 그럼 그날의 담배 향은 사라진다. 업무 특성상 하반기가 더 바쁜 탓에, 또 1회 분량의 담배 냄새는 10분만 버티면 되는 탓에 해결을 미뤄두다 겨울이 왔다. 그 사이에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고, 이웃의 실내흡연은 잦아지고, 나는 감기에 걸리고, 화장실에는 점점 냄새가 쌓이고, 그러다 오늘 확 터져버린 것이다. 누가 대신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이웃이 알아서 실외흡연을 하면 좋겠다.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거실 바닥에 새우등을 하고 누워 훌쩍거리다 잠든다. 그리고 그날 밤, 아빠의 조언대로 밤새 환풍기를 틀고 잤다. 월요일 아침의 기분을 남의 흡연 여부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담배 냄새가 아닌 또 다른 불청객이 찾아왔다.
모닝콜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또 담배 연기가 온 집안에 퍼질 것 같은 불안 때문이었다. 킁킁, 후각에 집중하고 있는데, 후각보다 청각이 먼저 자극된다.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다. 부스럭부스럭, 철컥, 쿵. 그리고 이내 은은하게 퍼지는 똥 냄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한숨에 섞여 나온다. 이제 담배 냄새가 아니라 남의 똥 냄새에 잠이 깨야 하나? 재빨리 ChatGPT에게 물었다.
[화장실 환풍구로 담배 냄새가 역류해서 밤새 환풍기를 틀고 잤더니
아침에 일어나니까 똥 냄새가 나. 왜 이런 건지 알아 혹시?]
[그럴 수 있어, 그리고 꽤 흔한 상황이야.
요약하면 **밤새 환풍기를 틀어두면 ‘역류’ 현상이 더 심해져서
화장실 배기 라인 안쪽에서 묵은 냄새**가 같이 들어올 수 있어.]
뒤에 이어지는 기나긴 이유는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환풍기를 오래 틀어두면 집 안 공기가 계속 빠져나가 실내 압력이 낮아진다. 고로, 외부 공기가 역류해서 들어오기 더 쉬운 환경이 된다. 하, 한숨 한 번 쉬고 일단 출근 준비를 마친다. 집을 나서자마자 아빠한테 메시지를 보낸다.
[밤새 환풍기 틀었더니 똥 냄새 역류해서 온 집안에 앞집 똥 냄새나.]
(ChatGPT와의 대화 내용 첨부)
[그러네. 아빠가 잘못 알았네. 미안해.]
사과 이후로 줄줄이 올라오는 아빠와 ChatGPT의 대화 내용. 하, 사과를 받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괜히 마음이 안 좋다. 출근해야 하니 나중에 마저 수습하려고 스스로 다독이는데 애인에게 메시지가 온다.
[잘 잤어?]
[아니 어제 밤새 환풍기 틀고 잤더니 똥 냄새까지 역류해서 개 빡치는 중.
내가 아침부터 남의 집 똥 냄새를 맡아야 한다니.]
아, 아침부터 너무 감정적으로 몰아붙이나. 나중에 답장할걸. 후회가 일지만 늦었다.
[근데 너네 집 환풍기는 순환이 잘 되나 보다. 우리 집 화장실에서는 냄새가 잘 안 나거든.]
[이런 건 순환이 아니라 역류하고 하지 ^^
우리 집 냄새만 빠져나가고 다른 집 냄새는 안 나야 정상이잖아.
다른 집 냄새가 우리 집으로 오면 그건 역류고, 환풍기가 제 기능을 못 하는 거잖아.]
[아 그런가. 댐퍼 빨리 달아야겠다.]
[너랑 상관도 없고, 묻지도 않았고, 어차피 잊어버릴 텐데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힘들겠다 이상하네’ 이런 말은 누구나 하니까.
진심으로 내가 느끼는 고충에 공감하긴 해? 같이 고민해 볼 의향은 있어?
넌 좋은 것만 같이 하자고 해. 그럼 내가 너랑 어떻게 미래를 그려?]
[왜 갑자기 이런 말이 나오는지 잘 모르겠어.
같이 살지도 않는 상황에서 내가 보호자도 아닌데,
남자친구에게 어디까지를 바라는 건지.
어떻게 해야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야?]
이틀간 이어질 싸움이 문을 열었다. 이것 또한 진퇴양난이다.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랑 동시에 싸우고야 말았다. 앞뒤는 담배 냄새와 똥 냄새로 막혀버리고, 양옆은 가족과 애인과의 갈등으로 막혀버리고, 이제 남은 건 위랑 아래인가?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정말 아빠 말대로 아파트에 살았으면 나았을까. 다세대 주택이면 이 모든 걸 감당해야만 하는 걸까. 환풍구에 댐퍼를 덧대고, 누수에 물받이를 덧대고, 끊임없는 선택으로 마음의 여유를 조금씩 빼앗기며, 그래도 방법을 찾았으니 안심하고 버텨야 하는 걸까. 임시방편만으로도 아무 일이 없기만을 바라며 말이다. 1인 가구가 되고 인당 가용 평수는 넓어졌는데 마음은 계속 비좁아져 간다. 독립하기에 세상은 미지의 두려움으로 가득하고 나는 자꾸 어딘가에 기대고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