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다는 걸 이제서야 겨우 깨달았습니다
참마누산누에나방과의 불편한 동거
난, 미친게 맞습니다. 미쳤다는 걸 깨닫기까지 왜 그토록 많은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또한, 우리의 삶에는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내는데 오십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정답이란 인간들이 만들어낸 문명이란 틀안에 갇힌 환상일 뿐이라는 것도 말이죠. 이제부턴 일곱빛갈무지개 따윈 찾아 떠날 필요까지도 없어졌습니다. 파랑새도 내 마음속 어느 깊은곳에만 간직하는 걸로. 그 미션은 이직도 현재 진행형일지 모르지만 차츰 내 마음속에서 지워질 수 있길 그져 바랄 뿐입니다.
25년 6월 8일, 상수리나무에서 첫 만남나비들과 한방살이를 시작한 건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인연은 항상 그렇게 우연이란 것에 기대어 오기도 하죠. 그 인연이란게 세월에 의해 숙성되어 운명이 되고 종국에는 아모르파티가 되어지는 수도 있을 테지만요. 제가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지극히 우연이었죠. 자연스러움을 동경하고 시간날때마다 늘 숲을 찾아 헤매였던 웃픈 이야기가 먼저 내 뇌리에 아른거립니다. 과거 힘들었던 회색도시의 삶에서 무작정 도망치고 싶었을 때도 나를 안아주고 가진 모든걸 내어준 것도 자연이자 숲이었습니다.
나비와의 인연은 그렇게 우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숲은 그렇게 나에게 친구이자 스승이었습니다. 심심할때 놀아주기도 하고 어떤때는 위로도 해주며 종국엔 스승이 되어주기도 했으니 그 신비한 마법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셈. 그러던 중 4~5년 전 지인으로부터 나무의사란 자격증이 생겼다는 정보를 전해받고 나무와 곤충 공부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나무와 곤충은 서로 뗄레야 뗄수없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그때 겨우 알게 되었었죠. 내 중년의 삶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일, 가정, 생탐, 그리고 글쓰기, 가 되어지는 순간입니다.
나무의사라는 직업은 도시숲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 요소중 해충들에 관한 사항들을 주로 연구하고 현실에 접목하는 기술이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내가 급관심을 갖게된게 곤충 분야였었죠. 특히 해충에 관해서요. 나무는 저의 학창시절 전공이었고 지금도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으니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25년 6월 10일, 먹고 싸고 놀기를 계속 그렇게 나비와 나방이 어느날, 나에게로 속삭이듯 다가왔습니다. 나무의사 시험은 끝이나고 이제 실전입니다. 처음엔 해충이 주로 관심사였지만 나비도 곤충의 한 분야이니 당연히 내 주된 관심사이자 취미생활의 일부로 걸려들게 된거죠. 일명 바늘과 실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저는 시간이 나면 주로 도시숲들을 산책하며 생태관찰 하기를 즐겨했습니다.
생탐은 자연과의 소통이나 대화가 필수적입니다. 집중이나 몰입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하구요. 숲에 들어가서는 주의깊게 영혼을 갈아넣어야 꾸물이 겨우 한마리 얻을수 있 을정도. 곤충을 한마디로 설명하지면 분류상 완전변태와 불완전변태로 나누어 진답니다. 완전변태는 주로 나비, 딱정벌레, 나방 들이있고 불완전변태는 주로 깍지벌레, 진딧물 등 도시 생활숲을 해치는 해충들이랍니다.
나비와의 한방살이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작설하고 지금부터 나비들과의 한방살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불편한 동거가 시작돤 건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년 8월 말, 농장 풀베기 도중 감나무잎새에 매달린 애벌레 한마리가 녹슨 레이다에 포착돤게 그 인연의 시작이었죠. 일단 사육해보기로 마음먹었는데 감감했습니다. 사육은 처음이고 공부해본적도 없기 때문이죠.
곤충카페에 문의해 보고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어느날 조그만 혜안이 떠올랐습니다. 다이소가서 3천원짜리 반찬통 10개를 구입해서 약소한 아지트를 마련해 주었죠. 그리고, 9월 15일 최초로 나에게 얼굴보여준 이는 가을뒷노랑큰나방. 어라. 사육이란게 겨우 이런 거였어. 할만하네. 그리고 나서, 아파트 베란다는 곤충 사육실이 되어 있었죠. 지금까지 인내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준 옆지기님께 무한 감사드립니다.
25년 6월 26일 요람짓기 삼매경에 빠지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의 사연을 풀어보렵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25년 6월 26일, 전 어느 공원 산책로를 걷고 있었습니다. 물론 나 홀로였죠. 괜한 고독까지 씹어가면서요. 하늘을 날으는 제비나비들의 군무가 보고 싶었기도. 그녀를 만나기 백미터 전, 왠지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내 심장은 벌써부터 하염없이 콩닥콩닥 떨려왔습니다. 꾼들은 서로 통하는 걸까요. 녹슨 레이다도 한몫했습니다.
물론 전두엽의 집중이 먼저였겠죠. 상수리나무 이파리에서 공중제비를 돌고있는 꾸물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난 마치 백만볼트 전기에 감염된 듯 한동안 멍했드랬죠. 어찌해야 할까. 갈등이었습니다. 데려와야 할까. 말아야 할까. 결정장애의 봉인은 금새 풀렸습니다. 그렇게 옿해도 예외없이 꾸물이가 나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전얼굴이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성충의 실물을 여태 한번도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어느날, 참나무산누에나방이 나에게 다가오다
숙소와 하루 세끼는 무료제공하기로 약속하고 반강제적으로 보쌈하듯 모셔옵니다. 다행히 주변엔 참나무 종류가 많이 자라고 있으니. 그렇게 그녀와의 한방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어느정도 희생은 감안해야 했습니다. 코를 곤다는가, 술먹고 늦게 들어온다는가, 그건 실례였습니다. 긴긴 기다림이자 돌봄이자 정성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첫 시작은 작은 소통이자 기도였습니다. 제발 날개짓을 볼수있게 해달라고요.
25년 6월 30일, 기다림다이소가서 또 사육통 10개를 급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조석으로 우린 서로 인사하며 정도 어느정도 쌓여만 갔습니다. 서로 얼굴 쳐다보며 고개만 쳐다볼 뿐 다른 아무말이 필요없었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주로 바디랭귀로 소통을 했었죠. 곤충의 언어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배워보고 싶은 마음마져 간절해 집니다. 이 인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난, 그져 얼굴 보여 달라고 애원만 할 뿐. 이름도 모른채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만 갑니다.
다행히 식성은 그리 까다롭지가 않았습니다. 낙엽성 참나무 종류라면 아무거나 잘 먹었고 설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똥 치우기가 귀찮긴 했지만 그 정도가 내 의지를 꺾을 순 없었죠. 며칠이 지나더니 식성이 무자비해지기 시작합니다. 이팔청춘인가 봅니다. 물론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죠. 큰밥그릇 두그릇을 해치워도 그새 배가 고팠던 2십대 질풍노도의 시기. 폭풍흡입이 계속됩니다. 냉장고에 싱싱한 나뭇잎들을 갈무리해 두었던 건 신의 선택이었습니다.
25년 8월 8일, 데려온지 두달만에 날개짓, 미완성 날개미소가 이쁜 그녀입니다. 조석으로 계속 얼굴을 마주칩니다. 몸집을 키워가면서 수없이 탈피를 해대는데 령기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조금의 변화가 감지됩니다. 고치짓기의 시작인 걸까요. 가끔 이 짓을 왜 내가 하고 있는지 자신에게 의문부호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져 마음이 하라는데로 그져 따르기만 뿐. 몇 번의 탈피란 걸 해대더니 색상도 변하고 먹는것도 뚝 끊겨 버렸습니다.
기다림의 끝은 행복이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했다는 건 이제부터 긴장을 해야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루가 더 지났습니다. 밤새 좌우, 상하로 머리를 흔들어대며 열씸히 실을 뽑아대더니만 어느덧 아담한 신혼집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애벌레는 살을 찢는 듯한 용화와 번데기 과정만 남았습니다. 요람속에 들어가 버리더니 옴짝달싹도 하지 않습니다.
매달려 세포분열을 계속중아침에 겨우 얼굴 한번 빼꼼이 내밀어 주더니만 이제 몸까지 완전 감춰버린 것. 제일 힘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번데기의 시간입니다. 어두컴컴한곳에서 고독과의 사투를 벌여야 합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라고 하던데 전 반대입니다.
기다림은 뼈를 깎는 아픔이 수반되는 것이니까요. 점점 기다림에 지쳐만갑니다. 목을 빼놓고 목마와 숙녀란 시를 읇조려 봅니다. 그러다 지치가라도 할라치면 양희은의 노래로 갈아탑니다.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리는 걸까요.
한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나아 울프의 생애와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희
그 기다림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하루에 꼭 두번씩 기도드렸습니다. 꼭 날개짓을 보게 해달라고. 그리고 우화부전만은 막아달라고.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고. 내 술병은 아지트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만 갑니다. 점점 마음 숙연해 집니다.
시간은 또 하염없이 흘러만 가고. 기도와 나의 한숨도 아지트 한켠에 쌓여만 가는데. 어느날은 천정 형광등에서 별똥이 떨어집니다. 깜짝 놀랬드랬습니다. 전, 정말 미친게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인정해버리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완전체 날개그렇게 오늘을 마치고 퇴근했습니다. 저녁 먹다말고 내 녹슨 레이다에 포착된 건 미세한 움직임. 고치가 간헐적으로 출렁거립니다. 이상 징후 발견. 비상상황입니다. 전 처음이라서 어리둥절 할 수 밖에. 급하게 카메라를 찾습니다. 어디있더라. 아하. 그러니까 차에 놔두고 온거로군요. 꿩대신 닭의 심정으로 스마트폰카메라를 꺼내들었습니다.
오호라. 생명탄생의 순간을 동영상으로 완벽하게 촬영했습니다. 서두른 나머지 상다리를 걷어찰 뻔 했죠. 감동이 넘쳐납니다. 희열로 가득합니다.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난, 억세게 운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숱하게 기다리고 한숨이 쌓여만 갔던 지난 노력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양수를 계속해서 흘러댑니다. 아직 날개가 미완성입니다.
나비와의 동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
고치에 매달려 혼신을 다해 세포분열을 계속해 댑니다. 뼈를 깎는 고통일거라 막연히 추측만 할 뿐 내가 할일이 없다는게 그져 아쉬울 뿐입니다. 생명탄생의 순간는 극적 반전이었습니다. 동안 내가 미쳤다는 걸 인정하는 데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인지 참으로 모르겠습니다. 이제 미쳤다는 걸 모두 인정하렵니다.
또, 그것이 나비와의 질긴 인인의 끈을 놓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한방살이가 매번 희극으로 끝나는건 결코 아니랍니다. 우화부전이란게 나오기도하고 어떤때는 번데기 상태에서 멈춰버리기도 하죠. 어떤때는 애벌레상태에서 설사를 해대더니만 갑자기 생을 마감해 버릴수도 있답니다. 그럴땐 허망함이 몰려옵니다. 꼭 제가 모든걸 잘못한것처럼 자책을 하기도.
생일 잔치는 내일 해주기로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부디 멋진 남친 잘 만나서 아들, 딸 많이 낳고 행복하시길.
계속해서, 나비와의 불편한 동거생활 시리즈가 계속 발행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