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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오르는 중

광릉요강꽃 찿아 삼만리 1, 무주채폭포

by 플랫폼

오늘도

또다시 잠을 설쳤다.

떠난다는 설레임 때문이었을까.


알람이 미쳐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버린 것.

새벽 03시 29분.

전날밤 대충 여장은 준비해 두었지만 일어나 다시한번 꼼꼼히 챙겨본다.

그리고

기상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 될성 싶다.

매번 연례행사처럼 다녔던 곳이지만

오늘따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잊혀진 옛 애인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설레임 반, 또 가슴 떨림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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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이 물러날 기색조차 전혀없는 새벽 시각.

드디어

주섬주섬 여장을 챙겨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바람은 고요했고 새벽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여행이란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이미 절반은 성공인 셈.

갈수록 떠남을 위한 욕망을 억누르기가 좀체로 힘들어진다.


일상이라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당당히 자연의 옷을 걸치고 떠남을 감행해본다.

모처럼 자연을 닮은 자아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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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의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더니 차디찬 바람이 금새 차안으로 들어와 점령군 행세를 해댄다.

한시간 남짓 내달렸더니

어느새 머언 동녘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평소같았으면

일출에 큰 기대를 걸어 볼테지만 오늘은 단숨에 패쓰다.

간이 배밖으로 나온걸까.

5시 반,

오늘의 들머리에 쥐똥나무 하나가 쭈욱 얼굴을 내밀고 있다.


새카만 열매가 쥐똥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랬지.

꽃향기가 내 후각을 사정없이 자극한다.

향기만큼은 라일락 못지 않다.


하지만

그것마져도 나에겐 하찮은 조연일 뿐.

관심의 대상에서 금새 제외되고 만다.


오늘의 주인공을 뵈알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점점 나의 심장을 조여온다.

신발끈을 다시한번 단단히 조여주고 출발이다.

서둘러야 한다.

10시부터 비예보가 잡혀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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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구라청이 제할일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든다.

님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물소리 졸졸졸 흐르는 계곡길을 걷는다.

귀에는 음악이 흐르고 눈앞엔 자연이 흐른다.


새소리, 바람소리 좀 섞여도 전혀 상관없다.

음악 장르는 매번 다르다.

어떤때는 경쾌한 리듬에 사로잡혀도 봤다가.

또 어떤날은 느린 멜로디의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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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며 음악을 듣는일은 나에게 늘 새로움을 가져다 준다.

결코

나와 삶이 분리되지 않고 나와 자연을 연결시켜주는 오작교처럼.

시작부터 오름길이 날 힘들게 한다.

매번하는데도 이 오름짓은 지독히 편파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는 것처럼.


집채만한 폭포에서 잠시 쉼의 시간도 가져본다.

내 마음이

무주채폭포 소용돌이 속으로 점점 빠져든다.


난, 과연 이 길에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걸까,

무얼 버릴 수 있을까.

우울감. 불편한 감정들.

모두 비우는게 가능할까.

벌써부터 땀 한주먹을 땅바닥에 쏱아낸다.


오늘 떠남이 헛되지 않기위해선 어찌됐든 최선을 다해야한다.

내 마음을 온전히 쏱아내고 생각의 숲에 뭔가를 듬뿍 담아내야 한다.

봄을 붙잡으려 안달하는 꽃쟁이들의 열망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나에겐

오름길도 모두 꽃길일 뿐이다.

홀아비바람꽃이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이에 질세라 회리바람꽃, 피나물도 출렁거린다.

진달래가 고개숙이니

철쭉이 드디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연영초, 난티나무, 귀룽나무 앞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려주고 있는 이곳이 나에겐 파라다이스다.

가도가도 끝이 없을것 같았지만

오르다가 쉬다가

꽃구경, 바람구경 물소리에 취해 한발두발 맘조리며 내딛다보니

어느새 산상 낙원이 펼쳐진다.


숨죽이는 순간, 과연 그녀는 고결한 모습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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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출현이다.

그녀의 이름은 광릉요강꽃.

내 그녀를 만나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언제 그 얼굴을 보여주나 맘까지 조려가며.


꽃쟁이들이 안달하는 사이

이미 꽃몽오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우아했다. 황홀했다. 사랑스러웠다.

완전체는 아니었지만.

살포시 껴안아 주고 싶었다.


봄이오니 꽃이 피는걸까.

어쩌면

꽃이 피니 뒤따라 봄이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비한마리 나타나 사라졌다.

청띠신선나비.

난, 뒤따라가 기여코 한컷 찍었다.

잠잠하던 하늘이 갑자기 꾸역꾸역 꾸물어 지더니만.

기어코 천둥번개가 요란스럽게 쳐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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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땐 36계 줄행랑만이 해답.

우산도, 비옷도 없다.

이런날은 결정장애도 자동 해제된다.


미련도 버렸고 욕심도 버렸다.

아쉽게도 한바탕 물분자들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하산했다.


떠남중독증 환자의 오늘은 대성공이다.

다음번엔 또 어디로 가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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