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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와 동편제의 고장, 남원땅을 지나며

07 유전자를 남겨라

by 플랫폼

세상은 또 깊은 어둠속이다. 마루금을 향해 떠나는 플랫폼의 풋풋했던 가슴속에 어느날부터 설레임이란게 은근슬쩍 자리해 있었다.


도둑고양이 담넘듯 고속도로를 한시간여 쉼없이 달리고 또 달려 도착한 곳은 만남과 헤어짐이 시작되는 신갈간이정류장.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온통 칠흑이다. 전갈자리, 물고기자리 등 밤의 주인공들은 모두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엔 도시의 외로운 가로등만이 음산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뿐.

어쩌다오는 리모진버스에 또다시 탑승해 이런저런 생각에 몰입한다. 사연 한가득 싣고 떠나는 좋은사람들과의 두번째 여행. 조금 반감되긴 했지만 부푼 설렘 만큼은 여전하다. 사연들 가슴에 끌어안고 이내, 깊은 행복감에 취해 잠이든다.

2주라는 기다림후, 짜릿함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한다. 이 세상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기쁨이다.

춘향이와 동편제의 고장
남원땅을 지나며,


내겐, 오랜 숙원이자 굴레처럼 느껴지던 것이 몇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관계결핍증. 대인기피증이 발전되어 어느새 마음속 한켠에 똬리를 틀듯 박혀 있었던 것. 어느날부터 나에게 모임이란 지옥이 되고 있었다. 자아와 타아 사이엔 존재하는 커다란 마음의 벽에 늘 힘들어하고 부담스러워 했다.


어쩔수 없이 가야할 자리엔 주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무리수가 존재했고 또, 가끔 심하게 버둥거리기도 했다. 대화대신 애꿎은 알코올만 들이 마시며 허공만 쳐다봤다.


하지만, 그 노력도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사실, 애초부터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룰이자 불공정한 게임처럼 보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누구하나 진심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대부분 자신의 잘하는 부분이나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열변하는 사이, 난 그 허공만 맴돌뿐이었다고나 할까.

그져 듣는 척만 뿐. 무의식적으로 웃어만 줄 뿐, 영혼없는 말들이 잔뜩 삐뚫어진 마음을 변화시켜 줄리는 결코 만무 했다. 한귀로 듣고 다른 한귀로 흘러버리는 일들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특히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와는 같은 자리에 있기 힘들었다.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날 무너뜨리고 있었다. 멘탈은 한달간격으로 자주 집을 나가버렸다. 인터벌이 갈수록 좁혀져 갔다.


유체이탈을 경험한 후론 가슴과 심장에 마치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아려오고 저려왔다. 마치 망망대해에 나홀로 표류하고 있는 듯한 외톨이가 된 기분.

어느새 가고싶은 모임보다 가고싶지 않은 모임이 더 많아져 있었다. 가고 싶지않는 모임에 반강제적으로 간들 별 의미가 없어 보였기에. 사람까지도 이분법으로 재단하고 있었다. 보고싶지 않는 사람과 보고싶은 사람으로.

물론, 처음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나 방향이 다르긴 했지만 함께 하다보면 언젠간 바뀔수도 있다,라고 믿기도 했다. 그마져도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여 3시간여를 달리고 또 달렸다. 떠남중독증 환자들을 가득 실은 리무진버스가 오늘의 들머리인 여원재에 도착했던 건 고작 새벽 3시하고도 겨우 5분이 지난 시각.

아직은 어스름이 짙게 깔려있는 새벽녘. 지난번 성삼재보다 한시간 여 더 빠른 시간이다.

모든게 낮설고 생소했다. 마치 생전 처음 온 장소인것처럼 가슴이 두근반 세근반 널뛰고 있었다. 아마도 남원땅을 다시 밟은것에 대한 소회가 너무 짙었던 때문이었을까.


인증샷 가볍게 몇 장 남겨두고 어슬렁거리며 들머리로 향했다.

스틱에서 금속성 비슷한 딱딱딱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 길섶 대나무 잎새에 맺힌 이슬이 송송이 맺혀있었고 풀들은 간밤에 뿌리에서 빨아올린 수많은 물방울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모두 땅을 향해 고개를 쳐박고 있었다.


지난밤 숲이 토해낸 수분들과 신비롭고 베일에 가린 생명현상들을 바라보며, 난 그져 말은 아끼고 생각 또한 잠시 접기로 했다.


하늘에서 중력의 힘에 의해 슬그머니 내려와 땅속을 흐르다 다시금 나무뿌리와 만나 줄기를 따라 잎을 거쳐 다시 하늘로 오르는 생태계의 에너지 순환을 생각해보니 그만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방인들의 등장에 놀랐는지 불나방들 혼비백산 이리저리 활공하고 있었고, 마을 어귀 개들도 짖고 있었다. 밤의 정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군대행진하는 대간러들의 발자국 소리에 대한 화답같았다.


아니면, 불청객들의 갑작시런 등장에 어깃장이라도 놓으려는 것인지. 한마리가 짖으니 다른 개들도 따라서 짖어댔다. 조금 귀에 거슬리고 시끄러웠다.

골목을 벗어나 산길에 접어드니 신기하게도 소리가 바뀌었다. 세상이 완전 뒤바뀐듯 이름모를 새소리 가득했다.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뺨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우린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가장 나 답다는건 뭘까

지난번, 성삼재~여원재 구간을 마치고 2주일의 시간은 긴긴 기다림의 나날들이었다. 마루금의 소식들이 무엇보다 궁금하고 염려됐다. 몸은 사바세계에 떠돌고 있었지만, 마음은 늘 대간 마루금 속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혹여, 나몰래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는지, 감기라도 걸려 심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건 아닌지.

갑자기 나다워 진다는건 뭘 뜻하는 걸까,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자연스러움일까. 아니면 자유로움일까.


스토리를 헤집어 보자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까지 십수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내 삶이 베베 꼬인 그 지점. 아마도 대학 4학년때였으리라. 우리 집안에 큰 우환이 생겼다. 난, 분명 살인사건이라 여겼다.


그러나, 분위기는 내 생각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사회가 내놓은 답은 과실치사 정도로 무마되는 분위기. 보는 눈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사회의 눈높이와 내 눈높이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라는 걸 난, 처음으로 알았다.


우여곡절끝에 졸업이란걸 한 후 난, 사회라는 망망대해에 그냥 내던져졌다. 내 마음이 삐뚫어지기 시작한 건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을지.


시간은 하염없이 더 지나고 또 흘러갔다. 난, 적절한 솔루션을 갖지 못한 채로 관계와의 힘든 싸움을 이어갔다. 계속해서 관계의 응어리가 날 괴롭혔다. 눈덩이처럼 굴러 커지고 커져 어느새 트라우마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

나만 몰랐다. 관계의 트라우마로부터 난,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아물지않는 그 아픔들 그냥 가슴에 묻어둔 채 결혼이란 것도 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하듯 결혼생활도 결코 무난하진 못했다.


과연, 나 자신을 세상의 모든 기준에 억지로 끼워 맞춘다는게 과연 맞기는 하는건지. 나다움을 전혀 무시한 채,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걸 망각한 채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 다워지는 순간을 또 꿈꾸며 떠나는 중이다.


허리를 최대한 낮춘 대간길은 지극히 평온해 보였다. 어머니의 포근한 품속처럼. 굽이치며 흐르던 산줄기가 잠시 숨을 고르기라도 하듯 고을과 고을을 잇는 고갯마루는 고요하고 평온했다.


새벽녘 나방들은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있었다

이곳도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하나인 곳이었다. 나방들, 한무리 대간러들의 등장에 혼비백산 달아나는 중이었지만, 사랑에 목마른 나방들은 결코 달아날 수 조차도 없었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겨야 하는 중차대한 일을 계속해야만하는 숙명을 타고났기에.

순간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엿보고 방해한 것 곧장 사과하고 조용히 그 자릴 떠났다. 남원땅을 지나는 마루금은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틀며 키를 한껏 낮추었다. 고남산에 오르니 지나온 길 눈앞에 아른거린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지리산의 고봉 준령들.

내 두발로 숨가쁘게 걸어왔던 길이 맞는 것인지. 저 산이 이 산같고 저 골이 이 골같고. 마치 산상 음악회에 초대된 것처럼 그냥 마음 편해보였다. 내가 걸어왔던 길이 맞는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보며 또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고남산 정상에서 발아래 펼쳐지는 남원땅을 바라보며 역사스토리 텔러라도 된냥 으쓱해졌다. 황산대첩의 땅. 동편제의 고향. 성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 등 셀수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걷는다. 남원골 마루금길이 내뱉는 이야기들을 맘껏 회상하며 걷는길. 그져 춤사위라도 덩실덩실 춰보고 싶다.

어디선가 구슬프게 들려오는 듯한 동편제의 판소리 가락에 맞춰 걷는길. 행복이 펼쳐지는 길이다. 통안재 지나 한참의 오르막, 내리막을 거듭한 끝에 다달은 매요마을.

먼저오신 대간러들 동네 정자각에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간단한 요기를 곁들여. 오늘 계획했던 거리의 딱 절반 지점이다.

대간러들이 요기하는 틈을 타 살짝 사색모드에도 빠져본다. 앞전 지나왔던 노치마을 60번 지방도.

대간길이 아스팔트로 덮혀버린 그 곳. 걸어오면서 나 또한 아무렇치 않은 듯 지나왔다.


그리고, 이곳 매요마을도 매한가지로 보였다. 마루금 땅을 사람들이 은근슬쩍 점령해 버린 것. 어느순간 마루금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마을로 뒤바뀌어 버렸다.


우린 어디가 마루금인지 영문조차도 모른채, 이리저리 고삐풀린 망아지 모양 고샅길을 한참을 서성거려야 했다. 그리고, 천신만고끝에 겨우 다시 찾아냈다.


우리민족의 정체성인 듬뿍 베인 대간 마루금이 이렇게 길을 잃고 방황케 한건 결국 사람들이었다.

이유는 알듯 말듯 하였다. 단지 캐피탈리즘에 잔뜩 들은 자본의 힘이 아니었을까, 라며 그져 추측만 할 뿐.


돌이켜보건데 알 수 없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으니. 내가 살아왔던 이순의 기간동안 의문투성이의 족적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왜, 그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하고 가슴속 깊은곳에 간직한 채 그리도 힘든 여정을 살아왔던 것인지. 그 때 내가 왜 마음 무너지고 분노하며 자꾸만 좌절을 하게 것인지도. 내 마음따라 가지 못하고 바람따라 구름따라 피동적으로 살아야만 했었는지 까지도.


다시금 숲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미풍에도 나풀거리기를 계속하는 나뭇 잎새들의 수런거리는 소릴 들으며 걷고 또 걸었다. 내림짓에는 두발에 미안했다. 오름짓엔 심장이 버거워했다.


새맥이재를 지나니 다시금 대간은 키를 키우는 중이었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음료를 보충해 주기를 여러번 계속한 끝에 가까스로 아막산성에 도착한다.


이곳 산성터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던 역사의 잔재들이 이곳저곳 널부러져 있었다. 무너진 돌들사이로 피어올린 엉겅퀴가 그 세월의 숱한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고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물고 물리는 쟁탈전. 무엇을 위해 치고 박고 싸웠는지. 엉겅퀴는 알까, 역사가 전하려는 내면의 이야기들을.


지금도 피비린내가 진동할것 같은 자리에 산뽕나무 몇 그루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워 한웅큼 움켜쥐고 목에 넘겨보았다. 오디라고 불리우는 이 정체의 과일들. 새카맣고 작았지만 당도만큼은 최고였다.

다시 머릴 돌려 우리가 가야할 장수땅과 먼 마루금길을 바라보았다. 봉화산이 지척이고 백운산이 두눈에 아른 거린다. 마치 저 멀리 덕유산 준봉들이 어서오라 손을 흔드는 듯.

저멀리 모내기가 막 끝이난 들판들도 보였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복성이재로 향했다. 점점 걸음걸이가 무거워지고 지체된다. 그져 꿈이 있어 걷는다. 피로가 쌓이고 쌓여 발걸음이 땅에서 떨어지기를 거부해질 무렵, 난 아슬아슬 복성이재에 닿았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인지 어느 계곡물에라도 풍덩 잠수해보고 싶다. 그래서, 어느 리본을 따라 걸었다. 그 리본 바람에 수없이 흔들거렸다. 마치 어서오시라고 나에게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나에게 철쭉식당슈퍼는 일곱빛깔무지개였다. 주인장의 맛갈스런 라면과 막걸리로 허기진 배와 목마름을 달랬다. 일품 라면과 막걸리, 일명 산상 진미였다.


쉰내가 진동하는 땀을 벗겨내야 했다. 웃옷을 벗어 냉수마차를 했다.이렇게 오늘 하루가 저물어갔다. 오늘 얻은건 무엇이고 잃은건 또 무엇일까.


시간,

정체성.

자아.

트라우마.

자기사랑 등 단어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닌 나에게 놀랬다. 나름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에 토닥토닥 해주었다.

혼자인 삶보다 더불어 사는 의미가 주는 메시지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리고, 걷는일은 내가 주인공인 삶이었다.


좋은사람들과 난,

과연 앞으로고 쭉 함께 할 수 있을까.


또,

2주간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새로운 친구들도 생겼다. 좋은사람들에 점점 동화되어가는 듯한 나를 발견한다. 단톡방도 개설되었다.


사랑하라,

자아를,

그리고,

이 세상 만물과 대간 마루금을.

상경하는 리모진버스 안락의자에 앉아 한동안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행복이 넘실대는 플랫폼의 대간 도전이야기는 08화,나에게 마루금이란,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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