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의 좌충우돌 백두대간 산행 도전기 09
산을 좋아한다면서도, 산에 미쳐 성난 망아지마냥 앞만보며 내달렸던 난, 한동안 무박산행이란게 뭔지도 모르며 살아왔다. 산 욕심이 유난히 많았던 내가, 불과 한달전까지 그랬었다니.
좋은사람들과 함께했던 앞전 세번의 산행은 어느새 내 삶의 방향까지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었다. 삶의 루틴이란게 바뀌니 어느새 내 몸도, 마음도 적응해가는 분위기. 처음엔 내가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도 돼고 걱정도 꽤 했었는데. 결국 닥치니 점점 해내고 있는것이리라.
사람마음이란게 참으로 간사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으며 난 또 산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2주간의 기다림후의 간절함과 달콤함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길.
생전에 법정스님이 하신 어록중 하나. 자연과 멀어지면 병원과 가까워진다, 라는 말씀을 새삼스럽게 곱씹는다.
어제는, 나에겐 특별한 날이 되었다. 소장하고 있던 화분들을 정리하던 중, 평소 애지중지하던 철쭉 화분 하나를 하늘 나라로 보내 버린 것.
1년전 평소 가깝게 지내던 지인에게서 아끼시던 것을 선물받았는데, 아쉬움이 물밑으로 흐른다. 밤낮으로 나름 잘 보살핀다고 했었는데 정성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어느날부터 주인의 손과 발길이 뜸해지던 틈을 타 갑자기 시들시들 해지더니 어제 생명을 다했다. 평소 생명의 경이로움에 취해 자연의 힘에 의존하며 살아가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몸에서 멀어지니 마음까지 멀어진다는 말의 의미가 새삼스럽게 진심으로 와닿는다. 어쩌면, 내 마음도 화분속에 죽어가던 그 철쭉처럼 메말라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됐든, 또다시 마루금을 향해 떠나가는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대간러들을 태운 리무진버스가 오늘도 간간이 뿌려대는 빗길을 미끄러지듯 달린다. 좀체로 잠이 올 것 같지도, 그렇다고 쓸쓸할 것 같지도 않는 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다 말고 결국 이어폰을 끼고 노랫가락에 깊이 빠져든다.
이렇게 무심일때 노래라도 없었으면 어땠을까.
무룡고개에 도착한 건 새벽 3시하고도 10여분이 지난 시간. 2주전의 영광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또다른 시작점에 선다. 떠나고 되돌아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시작하고 어느새 끝이나고.
사방은 쥐죽은듯 고요하고 하늘에선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리친다. 우려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다. 하늘이 도운것이리라. 나무잎새 바람에 심하게 흔들거렸다.
갑자기, 어디선가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대간러들의 숨일터. 새벽 공기는 차갑고 제법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발걸음을 한걸음 옮길때마다 바닥 흙들이 심하게 부서진다. 미끄러지지 않기위해서 난, 스틱에 의지한 채 점점 고도를 높였다.
마루금이 나에게 전하는 말
한달음에 영취산으로 올라쳤다. 정상석만이 아무말없이 그 자릴 지키고 있었고, 이내 2주전에 있었던 그 헤어짐의 순간들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오늘따라 정상석이 유난히 헤드렌턴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간단한 인증샷과 동시에 화이팅을 외쳐주며 출발한다.
세월의 무게에 버거워 무너짐을 선택한 영취산성을 뒤로한 채 덕운봉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밤새 내렸던 비때문이었을까. 숲도 바닥도 심하게 젖어있다. 안개 가득한 등로에 가득한 물기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고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미역줄나무로 우거진 마루금길 길섶에 굴참나무, 신갈나무, 층층나무 가득했다. 이들은 마치 하늘을 향해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쭉쭉 뻗어있었고, 결국 햇볕쟁탈전일거라 난 막연히 생각해본다.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고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본능적 모습이려니 싶어지기도. 논개생가가 4.6킬로가 남았다는 표시기가 불빛에 반짝거린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고 남편인 최경회 장군이 전사한 이후,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장렬히 남강으로 뛰어든 충정의 상징이 된, 바로 논개의 생가터란다.
역사의 아이러니를 되새김질해가며 좌측 발은 논개의 생가인 장수땅을 밟으며, 우측 발은 죽어서 육신과 영혼으로 묻힌 함양땅을 밟으며 걷는다. 숙연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이 가슴속깊이 파고드는 시간. 그러는 중에도 새벽 숲은 분주했다. 지난밤의 갖가지 사연들을 풀어놓으며 새 아침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바람에 나뭇잎들 수런거리는 소리 수없이 들려온다. 길섶 풀벨레들의 울음소리. 푸드덕 거리는 이름모를 새들의 날개짓 소리가 밤의 정적을 흐트려 깨운다.
숲은 생명의 보고이자 원천. 대간 마루금이 만들어 놓은 원시숲이 아니었다면 우린 어땠을까. 가는길 비비추 한송이 청초하고 외롭게 피어 있었다.
비에 젖어 잔뜩 무거워진 몸의 무게를 못이긴 채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는 모습 처량하다. 바람에 흔들거리며 마치 춤이라도 추고 있는 듯. 목디스크라도 걸리지 않을지 심히 염려된다.
자연의 소리 들으며 걷는 중, 내 마음에도 점점 미세하게 동요가 일고 있었다. 이 어둠의 슬픔처럼. 역사의 비극이란걸 아는지 모르는지 비비추는 땅에 머리를 쳐박을 듯 그져 고개만 쳐박고 있을 뿐이다.
그져 그런 날들이 모여
특별한 오늘이 되었다
어느새, 사위가 밝아져 왔다. 지난번처럼 어스름이 물러간 자리에 붉은 여명도 아니고, 화려한 일출도 아닌, 온 들판과 산야가 은은한 운무로 뒤덮혀 있었다.
마치 신선이라도 된 냥, 난 태평양 어느섬에 홀로 갇혀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속에도 빠져본다. 그리고,새벽 운무는 내가 가는 방향을 향해 유유히 흐르는 중이었다.
다가설 만하면 사라지고 또 눈에 사라졌다 하면 어느새 다시금 다가오고.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상들이 모여 특별한 날이 되어주는 거란 사실에 감사하며 가다보니, 또 운무에 넋놓고 걷다보니, 민령이 지척이다. 길섶에 자연산 오미자 몇 송이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탐스러웠다. 한번 먹어볼까. 떱더름하고 미완의 맛이었다. 아직 기다림이 더 필요해 보인다. 본격적인 오름이다. 깃대봉을 향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오르는 길 남녘의 들녘은 사방이 운무로 뒤덮히고 점점 산위를 향해 스멀스멀 피어 오르고 있는 중. 운무도 마루금길이 그리웠던 것인지. 어쩌면 스스로 선선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젖어 보았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
우리는 한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 경건해졌다. 대간길은 나에게 아무조건없이 자신의 모든걸 내어주고 있었던 것. 숙연해졌다. 마음이 편했다. 마치 마음의 짐처럼 여기던 고름이 어느새 뚝 떨어져 나간 그런 느낌이랄까.
물맛이 감미롭고 한없이 따뜻한 마음 느껴졌다. 자연은 인간들을 위해 이렇게 내어주고 있는데 인간들의 행태는 가히 가관이었다. 캐피탈리즘에 의지한 채, 길은 직선으로 뚫리고 산마다 이리저리 파헤쳐진 마루금길.
약수터의 의미를 곱씹으며 남은 물통에도 물을 한가득 담아주고 다시금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 물을 채웠던건 아마도 최선의 선택이었다. 아마도 마루금이 날 살린것이리라. 아니었으면 생각만해도 아찔할 뻔했다.
장수고을과 함양고을이 만나 물물교환을 했던 육십령을 지나니 본격적인 오름짓이다. 서서히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컨디션이 서서히 하향세.
가다서다를 무한 반복한다. 운무와 내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할미봉 오르는 길 좀전에 채웠던 물병들이 점점 동이 나고 있는 상황. 그때까지도 난, 상황판단이 전혀 안되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도착한 할미봉 근처. 온통 바위들로 뒤덮힌 할미봉을 바라보다. 난, 갑자기 배낭을 풀고 삼형제봉으로 무조건 향했다.
나 홀로 말이다. 좀전에 컨디션 안좋았던 일은 남의 일이 되어있었다. 물병이 비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운무가 뭐라고,
삼형제봉이 뭐길래
그것이 오늘 비극의 시작이었다. 내몸이 전하는 위험신호를 스스로 망각하고 있었던 것. 난 한동안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스스로 듣기를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형제바위는 날 쉽게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너무나도 숨이차고 숨이 차올라 나무를 보고 숲을 느끼고, 새들의 울음소리조차도 들을 여유가 없었다.
겨우, 발디딜 곳을 찾기위해 겨우 몸과 발을 놀릴 뿐이었다. 때로는 나무뿌리를 의지한 채, 때로는 바위틈을 부여잡고 올랐다. 육신과 마음이 이탈되고 있었던 것.
마음은 오르려하고 육신은 터벅대기를 몇 번째,
무언가 하나라도 붙잡을 수 있다는데 그져 감사했다. 고단한 인생길에서도, 이 끝없이 이어지는 마루금길에서도 이렇게 붙잡고 기댈수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었다.
코를 바위에 쳐박을 듯 직벽바위를 네발로 기다시피 겨우 올랐다. 신선계였다. 인간계는 저 먼발치 발아래 있었다. 천하일경이 따로 없었다.
마치, 내가 신선이라도 된 느낌. 신선은 영원이 산다고 그랬었지. 늙지도 않을거고. 불노초를 그렇게 찾아다닌 진시황도 결국 죽었는데,
그런데, 내가 미쳤다는걸 깨달았을 땐, 이미 버스가 저만치 떠나버린 후였다. 오직, 오르는데 눈과 마음이 팔려 그만 핸드폰을 놔두고 와버렸던 것.
오호, 통재라. 하늘이시여, 대간을 관장하시는 산신령이시여. 제발 도와주세요.
그렇게 나의 무모한 도전은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10여분 내 발아래 펼쳐진 장관을 겨우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만 담고 내려와야 했다.
난, 올라왔던 반대로 패잔병처럼 내려왔다. 내려올땐 에너지가 배가 더 필요했다. 다시, 밧줄에 의지한채, 나무뿌리와 돌뿌리에 의지한채 내려와야 했다.
배낭속에 넣어진 핸드폰을 꺼내며, 다시 올라가, 아님 말어. 결국 다시 오면 돼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시 할미봉으로 올랐다. 운무가 날 부르고 있었기에. 인증샷도 남겨야 했다. 그것이 내가 왔던 이유이기도 했으니.
할미봉에 오르면서도 기댈 뭔가가 있다는데 감사했다. 만만치는 않치만, 역시 세상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거구나, 라고 손수 위로하며 삼형제봉이 나에게 준 교훈을 곱씹어본다.
감사할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누굴위해, 어떤분이 깔아놓은 건지 모르는 밧줄, 그건 나에게 생명줄이 되어주었다. 물론, 나무뿌리와 돌뿌리까지도, 이렇게 고마워할것 천지였다.
할미봉과 난, 헤어져야 함을 직감했다. 그리고, 또 까먹었다. 오늘 컨디션 별로라는 것과 배낭속에 물이 딱 한병밖에 없다라는 것.
할미봉에서 내려오는 길, 온산, 온들이 운무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운무의 바다이다. 운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운무의 바다만이 내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상황.
좀체로 두발이 얼어버린듯 땅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몇 걸음걷다가 뒤돌아보고 이 명경을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버릴 순 없는 거였다.
이걸보며 유유히 지나가버린 사람이 있다면 분명 사람이 아닌 신선일 것이리라. 이젠 할미봉과 영원히 이별이다. 만남이 있으면 언젠간 헤어짐의 시간이 반드시 돌아오는 법.
서봉을 향해 전진이다. 흥분된 마음은 점점 가라앉고 있었지만 걸음걸이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반밖에 걷지 못했는데. 아직 걸어야 할 길이 한참인데.
오름길엔 심장이 고통스러워하고, 내림길엔 두 종아리가 힘들어하는 상황. 어쩌지. 잠시 쉼이 필요했다. 배낭을 풀었다. 신선이 있을 법한 소나무 둥지아래 자릴잡고 기대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배낭속을 뒤졌다. 마침, 물컹한것이 손에 닿았다. 체리였다. 몇 개를 목에 넘겼더니 쏙쏙하고 잘도 들어갔다. 한가닥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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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플랫폼의 좌충우돌 백두대간 산행 도전기 10화, 남덕유산 마음에 품고,편이 발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