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치마는 봄을 간절히 기다리는 중

노래가 구린 마음을 위로해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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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홀연히 집을 나가 버릴때가 있다. 한마디 귀뜸이나 온다 간다 인사조차도 없이. 이런 순간이 올때면 예외없이 당황하기 마련. 난 흔한 원인조차도 모른채 한동안 애꿎은 천장만을 응시한다. 누군가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어 하소연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마땅이 그럴 여유마져도 마땅치 않은 현실. 이렇게 갑자기 마음이 가출해 버렸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신고는 어디에다 해야 할까.


사실, 임기응변이긴 하지만 나만의 치유법이 하나 있긴하다. 그런날은 무조건 아지트를 나서야 한다는 걸. 방콕은 무엇보다 위험스런 존재라는 걸. 쓸데없는 잡념의 포로가 되기전에 어딘가를 향해 떠나줘야 한다 걸. 인근 편의점에서 쓰디쓴 커피한잔 빼어들고 드디어 애마에 올라탄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한모금 목에 넘겨주면서 괜한 상상의 나래까지 펼쳐본다. 오늘 하루 꼭 행복하고 말겠노라 다짐 또 다짐하면서.


노래들으며 걷고 가끔은 물멍에도 취해보고. 그것마져도 싫증이 날때면 인적없는 조용한 산길에서 소리라도 크게 질러보고 싶다. 그러다보면 언제 그랬느냐는듯 집나갔던 자아가 되돌아올 지도 모르는 일. 언제부터였던 건지는 사실 알지 못한다. 내가 노래의 마법속에 푹 빠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오늘처럼 이슬비가 내리고 마음이 왠지 무겁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함이 몰려올 땐 어김없이 노래에 의지해 걸어줘야 한다는 것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쓰디쓴 커피가 거의 식어갈 무렵 도착한 청계호수. 그곳은 너무도 조용했고 아직도 늦가을의 정취가 서성거리듯 신비 가득했다. 머얼리 희미해진 청계산 봉우리들이 첩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운무에 덮힌 봉우리가 어렴풋이 보여지는 곳.


마치 날보며 어서오시라는 듯 손사레로 화답해주는듯. 난, 그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정상대신 둘레길을 택해 잔잔한 물결따라 역으로 걷는다. 레코드에서 잔잔한 감성노래가 유유히 흘러나오고. 발라드풍의 고풍스런 멜로디와 숲속 이름모를 새소리들이 오케스트라 되어 호수위로 울려퍼진다.


때마침 수면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안개를 보며 난 이내 시상에도 깊이 잠겨든다. 마치 내안에 봄이 와있는 듯한 묘한 느낌. 그리고 신비 가득한 분위기. 그렇게 모든게 완벽해 보였다. 중독성 강한 뭔가에 깊숙이 빠져버린 듯. 얼마 후 집나간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듯 시침때고 되돌아와 있었다. 안개비 그윽히 내리는 산길. 바닥은 간밤 비로 심하게 젖어 있었고 소나무가 버려버린 솔방울들이 즐비했다.


낙엽들 듬뿍 쌓여있는 고풍스런 길을 따라 유유자적 걷는다. 발소리 점점 경쾌해졌다. 이럴땐 무조건 슬로우를 지향해줘야. 노래따라 물안개따라. 오르락 내리락이 한동안 계속된다. 내 삶에서 노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린지 오래. 이어폰끼고 듣는게 우선이지만 가끔씩은 아주 가끔씩은 엇박자나게 입밖으로 토해내기도 한다. 어느날 갑자기 일상에서 흥미를 잃어버렸을 때 어김없이 나만의 숲속 산책 삼매경에 빠져드는 나.


가끔 이름모를 들꽃들과도 담소하기도 하고 뜻밖에 나타난 꾸물이들과 교감도 하고. 이렇게 무념무상으로 걷고 있을 때면 동안 내면 깊숙이 삼켜둔 응어리들이 노래따라 흐르기도 한다. 오늘처럼 잔뜩 짖굳은 날 한적한 호수공원을 걷고 있을 때나. 또 갑자기 누군가에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라치면 노래가 필수적. 그러다가 흥미를 잃어 가끔 사바세계로 되돌아 오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금 관성에 의해 곧 노래의 포로가 된다.


잠자는 시간이나 근무시간 빼놓고는 거의 매일 그 루틴이 반복된다. 조각난 그 찰나의 시간들을 잇다보면 몇 시간은 족히 될 듯. 노래는 묘한 마법을 부려대며 이내 화답해준다. 허전한 마음의 응어리를 봄볕에 눈녹듯 풀어주고 내 마음을 흔들고 살포시 감싸주기까지. 노래는 묘한 선견지명까지 지녔다. 내 감정의 기복을 따라 흐르기도. 파고가 낮을땐 중저음 발라드풍으로. 파고가 높을땐 소프라노처럼 고음으로 감정의 기복을 달래준다.


어떻게 주인의 마음을 이렇게 정확히 알고 있는건지. 얼마간 걸었던 걸까. 이마에 송송이 맺힌 땀방울들을 훔친다. 이럴땐 반드시 쉬어가 줘야 한다. 종종대던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마치 세상이 멈춘듯 고요한 호수공원. 노래는 와중에도 쉬임없이 내 마음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노래는 무엇보다 정직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이어가는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고 또 그림자처럼 친구역할까지 대신해 주었다.


비가 올때나 폭풍우가 몰아칠때나 어느날 우울이란 놈이 날 급습할때나. 특히 오늘처럼 비가 내리칠 때나 난 어김없이 습관처럼 이어폰을 찾는다. 어느날 산길을 걷고 있을 때 호주머니속을 뒤지는데 이어폰이 만져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과 상실감. 느껴본적 있는가. 생각만해도 가슴 오싹하다. 자아상실, 유체이탈. 이렇게 난 노래와 난 땔래야 뗄 수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

거의 매일 노래에 의존하며 산다. 식사할때도. 카페에서 차한잔 마실때도. 일탈을 감행하며 여행을 떠나는 애마속에서도. 오늘처럼 자연과 함께하는 숲속 한적한 곳에서도. 무엇보다 심적 안정을 주고 희망을 주고 잡념과의 싸움에선 중재역할까지 해주어서 좋다.


갑자기 새소리가 멈추고 졸졸졸 계곡 물소리 정겹게 들려오던 중 묘한 분위기와 마주한다. 바닥에 드러누은 처녀치마 한송이가 짠하며 내앞에 나타났던 것. 초록으로 무장한 잎새들을 땅바닥에 축 늘어뜨린 채로. 마치 봄을 기다리는 수호신처럼 냉랭하기만 했다. 난, 그 간절함과 애절함들 모두 알것만 같았다. 봄을 기다리는 처녀치마의 초연함이 승화한 것이란 것을.


노래에 쉼취해 걷다보니 어느새 잡념은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져 버린지 오래. 외로움에 포로가 되기보담 오늘처럼 비가오는 날 이어폰을 꽃고 걷다보면 노래 하나가 설운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사랑한단 말한마디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그대위해 기도하진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 사랑이란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나에 사랑 그대여 ~~~ 그대를 사랑하오 ~~사랑하는 그대에게,


김세환님의 낭랑한 목소리 고은정님의 아리따운 화음이 서로 부딫치듯 빛을 발한다. 그러다가 내 마음과 멜로디와 주변온도가 최고조로 일치되었을 때 깊숙이 내밀한 숨결속으로 빠져든다. 걸음걸이도. 심장박동소리도 점점 정점으로 치닫고. 또 비내리는 속도와 멜로디와 내 감정이 크로스된다. 마지막, 내 마음을 울려대는 어떤 노래에 필이 꽂히고. 내 마음과 일치되는 노랫가사가 마음속으로 깊이깊이 파고드는 그 의문의 멜로디.


그럴때 한시간 연속듣기를 선택해줘야 한다. 그러는사이 좀체로 올것같지 않던 한시간이 매몰차게 흘러갔다. 걱정. 번뇌가 모두 사라져버린 깊은 고요가 펼쳐졌고. 노래는 기억을 불러오고 기억은 옛사랑의 희미해진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그야말로 흥이 절로 난다. 그리고 조금씩 흥얼거리면서 걷는다. 새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만약 나에게 노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해도 가슴 지리게한다.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숲속을 고개를 서성거리며 걷는다. 이름모를 새소리 들려오고 소슬바람 시원히 불어온다. 물소리가 제법 가늘어지고 새소리 희미해지고 나뭇잎들도 바람에 펄럭이며 파르르 떨고 있는 숲속과 호수공원.


호수위를 유영하던 흰뺨검둥오리들의 속삭임소리가 오늘따라 왠지 구성지게 들려온다. 잠시 그 소리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구 귀쫑긋해 보았지만 너무 많은 곳에서 들려와 한동안 방향감각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어찌 저리도 애처러이 내 마음속깊이 저미어 오는지 모를일. 이제 내마음의 봄도 머지 않았다. 호수공원의 물안개가 알려주었다. 그러다 올괴불나무 한그루가 내앞을 막아선다. 이 나무도 봄을 간절이 기다리는 중일까. 그만해줘 난 너에 인형이 아니잖아. ~~~ 난 니가 바라듯 완전하지 못해 ~~~제발 나의 인형이 되길. 이렇게 자연의 주인공들과 노랫가락에 발맞춰 리듬까지 타며 걷고 또 걸었더니 어느새 끝이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이렇게 나의 소중한 하루가 완성되듯 저물어간다. 처음엔 아슬아슬했고 쏠쏠하기도 했지만 노래가 나의 빈자리를 대신해주고 쓸쓸함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이만하면 오늘도 꽤 행복했다. 나의 영원한 친구이자 삶의 위안인 노래와 함께여서 행복했던 길. 오늘처럼 가슴 한켠이 시려오고 아파올때면 난 예외없이 그와 동행하려 한다.


함께 걷다보면 심장으로부터 이내 작은 위안들이 무한 샘솟고 더욱이 살아낼 힘까지 얻을수 있는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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