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을 보내고 병오년을 맞이하며
결코 쉬이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홀연히 곁을 떠나버린게 있습니다.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말이죠. 두눈에서 사라져 버린 일년이란 무수한 시간의 조각들을 되새김질해 보는 시간 가져봅니다. 반면, 전혀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은근슬쩍 내곁에 다가와진 것도 있습니다. 2025년은 나에게 오롯이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난 결코 오라거나 가라고 조차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가버린 것인지 다가온 것인지조차 애매모호한 상황들이 연출되고있는 현실. 그야말로 한해의 끝자락입니다. 야심한 밤. 잠에서 깨어 잠시 멍때리기에 돌입합니다. 길냥이 울음소리는 커녕 그 흔한 바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의 시간들과 마주하는데.
그렇게 쪽방한켠에 외로이 놓여져있는 침대위에서 최대한 삐딱하게 누워 불꺼진 창을 멍하니 째려보며 멍때리기를 몆 십분. 마침내 떠오른 송구영신이란 말랑말랑한 키워드 하나를 꺼내들고 긴긴 추억놀이에도 빠져듭니다.
매년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지남과 맞이함의 접점속에서 난 한동안 당황도하고 방황도하며 결국 아무리 저항해도 바뀌는건 없다는 걸 깨닫고는 무거워진 마음을 모두 내려놓기로 합니다. 이젠 그 체념조차도 아주 자연스런 풍경이 되어버린지 오래. 그냥 멍하니 관조도하고 인정해 버리는게 신상에 더 좋을 거라는 걸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겠죠.
올해의 끝자락은 그렇게 마음놓고 저항할 틈조차도 없이 무언가에 쫒기듯 선큼 다가와 버렸습니다. 해와 해가 바뀌는 경계선상엔 늘 얻은 것과 잃은 것, 아쉬움과 행복, 그리고 비루함과 고루함이 함께 공존한다는것도 이제 인정하기로 합니다. 을사년. 첫 시작은 나름 담대하고도 장대했더랬습니다. 따스한 봄의 햇살과 소슬바람 맞으며 복수초, 노루귀, 바람꽃들을 만나보겠노라고 이리저리 뒤쫒아 다녔던 2월과 3월.
하지만 그 탐화조차도 한여름밤의 꿈에 불과했다는걸 결국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만나는 기쁨뒤엔 늘 아쉬움과 그리움들이 일렁이고 있었다는 것도요. 그렇게 봄의 기운은 너무도 짧고 허망하게 끝나버렸습니다. 따스한 봄의 징검다리를 겨우 건너는가 싶었는데 엎친데 겹친격 유난히도 징그러웠던 여름의 깔딱고개가 내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집요하고 억척스럽고 혹독했던 여름의 열기들.
폭염과의 지겨운 동행을 한동안 이어가며 연이어 정신줄까지 놓아버릴뻔 했었지만, 난 악착같이 버티어 내어야만 했습니다. 때론 어딘가를 향해 무작정 오르기도 했었고 그 오름길에 수많은 유혹과 고비들도 여럿 있었드랬죠. 한고개 뒤에 또 한고개. 그 수많은 고비들을 겨우 넘었더니만 고생끝에 낙이 있다는 듯이 어느날 뒤돌아보니 나에게 뜻밖의 구세주란게 짠하며 나타나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 살포시 와 닿는 일곱빛갈 무지개들의 은밀한 감촉. 아시려나요. 아마도 25년 7월 31일은 바로 그런날이었습니다. 난, 그날 그 기억의 조각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긴 가뭄에 단비처럼 내 마음을 자꾸 헤집어 대고 있었죠. 그날 받았던 한통의 메일속 의문의 메시지.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란 부가 멘트와 함께. 살면서 이 문장보다 사람 가슴을 뛰게 하는게 또 있을까요.
브런치 작가가 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세상에나 내가 그토록 바라던 작가 소리를 듣게 되다니. 순간 심장의 박동소리가 유난히도 쿵쾅쿵쾅 마구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졸업후 사회초년병이던 시절처럼 부담감이 배가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내가 너무 서두른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늦춰보는건 또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날부터 갑자기 불어온 작가라는 꿈.
작가란 말이 폭풍처럼 내 연약한 마음을 흔들어 놓을거라 미쳐 생각치 못했습니다. 영낙없이 소뒷걸음치다가 쥐잡은 그런 격입니다. 내면이 조금 어지럽고 황당하고 명암들이 서로 엇갈리기만 합니다. 이윽고 잘해야겠다는 부담감과 새로운 꿈이 생겼다는 설레임이 공존하는 현실과도 마주하고. 그렇게 브런치작가란 묘하고 아이러니컬한 키워드에 어리둥절하기를 여러날. 기회인 걸까? 아니면 날 시험에 들게 하는걸까?
동안 정신없이 달려온 수많은 나날들이 휙하니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모처럼 메마른 하늘에서 천금같은 단비라도 내리는 것처럼 말이죠. 동안, 난 블로그와 동행하며 제법 숨가쁘게 달려왔다고 자부합니다. 때로는 미풍에 흔들려 보기도 했고. 또 가끔은 갈림길에서 원하지 않는 선택들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슬아슬 폭풍속을 뚫고 지나왔보니. 어라 어쩌면 삶의 길이 하나가 아닐수도 있다는 사실에도 직면합니다.
그렇게 운명처럼 소리없이 다가온 브런치의 꿈. 한마디로 긴긴 가뭄의 단비이자 아모르파티였습니다. 처음엔 모든게 그져 생소하고 어눌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말이죠. 결국 블로그와 서먹했던 첫만남의 순간처럼 그 속에서 난 하나씩 하나씩 숨어있는 진주들을 캐내기로 합니다. 이 길이 나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는 무얼지. 또는 제대로된 선택이긴 한건지는 차츰 생각하기로 하면서요.
아무튼 방향만큼은 감히 옳은 선택일거라 그리 믿습니다. 속은셈치고 한번 과감히 달려보기로 합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이고 또 내가 절절히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그져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지사.
어찌됐든 내 삶의 타이틀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브런치 작가. 그리 썩 싫치만은 않은 듯.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또 마음을 짓누릅니다. 처음 네이버 블로그의 문을 두드리고 넘나들었던 3년여 시간의 조각들이 휙하며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들 했었나요.
동안 살면서, 마음 한켠에 버킷리스트 하나가 내 눈앞에 늘 아른거렸었는데 그랬던 나에게 어쩌면 파랑새가 짠하며 나타난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모른척 눈감고 달려보렵니다. 앞만보지 않고 뒤도 보고 옆눈질도 좀 해가며 때론 달리다가 힘들땐 멈추기도 하면서요. 그러다보면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을까요.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이젠 작가로서의 일도 거뜬히 수행해내야 합니다.
점점 짓누르는 어깨의 무게를 스스로 이겨내야만 하는데. 승인 메시지를 받은 이후 이틀동안 열씸히 브런치 문도 두드려보고 골몰도 보았죠. 하지만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며칠째 한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중입니다. 어찌하면 완벽지향주의의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요. 어찌하면 잔뜩 굳어진 마음의 응어리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래!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순 없는거지. 난 당연히 신이 아니니까.
그렇게 긴장된 마음을 간신히 달래봅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는거라 그렇게 위로도 하면서요. 그러면서도 매일 브런치 주변을 서성거리고 노크하길 며칠 째 반복 중입니다. 회사생활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만 해 보곘습니다. 왜냐하면 회사도 나와 가족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일과 취미 사이 그 경계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방법은 오롯이 적당히 입니다. 중용의 룰을 따라 한발한발 나아가 보렵니다.
가다가 가끔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할까 두려워 주저만하다 아무것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는 그런 삶은 이제 정중히 사양하기로 합니다. 1라운드는 그렇게 쨉한번 힘껏 날려볼 기회조차도없이 제대로된 글한편 써보지 못하고 끝나버렸고. 그 다음 라운드. 밋밋하게 시작된 2라운드가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가까스로 잘익은 쿠키처럼 묘안이 하나 떠오릅니다.
가슴에 손을 얹히며 긴 생각에 잠겨듭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하는게 뭐가 있을까. 천천히 걷기. 적당한 오름. 자연과 친해지기, 야생화따라 나비찾아 생태탐방 하기 등등.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반대로 허둥대는 건 또 뭐가 있을까요. 당연히 인간관계일테죠. 완전 빵점에 가깝습니다. 다행히 자연과의 관계는 합격점으로 수렴된다는게 그나마 위로가 되는 상황.
이제 어느정도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달리는 일만 남은 셈. 그러고 보니 내가 잘할수 있는게 이렇게나 많다니. 그져 놀라울 뿐입니다. 동안 나를 너무 과소평가한건 아닌지. 갑자기 집나간 글감들이 마구마구 아른거리기 시작합니다. 고심끝에 첫작품은 브런치북 플랫폼의 좌충우돌 백두대간 프로젝트로 정해봅니다. 마루금이 외쳐대는 외침소리 따라 오직 나만의 속도로 또 그 방향으로 우직하게 달려가 보기로.
난, 과연 아무일없이 그 장애물들을 잘 넘을 수 있는 걸까요. 때론 무더위를 피해 에어컨뒤에 숨어 움츠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브런치 주변을 서성거리기를 5개월여. 그랬더니 가까스로 15편정도가 브런치북에 채워졌습니다. 이만하면 대성공입니다. 자화자찬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듯. 하지만 아직은 풋내기 걸음마 단계입니다.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합니다.
무더운 여름도 물러가고 시원한 공기와 함께 어느새 가을이란게 내 앞에 선큼 다가와 있었습니다. 가을은 총알이었습니다. 가을기운조차 온데간데없이 꼬리를 감추어 버린 사이, 내 마음을 모두 잠식해버린 12월. 동안 여러 이유때문에 못다했던 허전함들을 이제부터라도 하나둘씩 채워보려 합니다. 정답은 천천히 입니다. 아주 은밀하게 자연과 삶에 순응하고 내면의 이야기까지도 귀기울여 가면서요.
24년 12월 3일. 그날의 참혹했던 사건들이 뇌리를 휘젓습니다. 잊을래야 도저히 잊혀지지 않고 지울래야 지워지지 않는 그날. 24년 12월은 나에게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자 혼돈의 시간이었습니다. 계엄령 발동. 정말로 우리에게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던 것. 아직도 그날밤의 기억들이 뇌리에 생생합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리라고 꿈에도 생각치 못했었죠.
내 생에 계엄령이란걸 벌써 세번이나 겪게 되어버렸습니다. 누구는 계엄령이라고도 했고 어떤이는 내란사태라고도 표현했었죠. 처음엔 너무도 당황하며 우왕좌왕 더벅거릴뿐이었지만 그러나 일부 깨어있는 민주시민들의 각고의 노력끝에 탄핵의 강은 우여곡절끝에 건널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리고 불행은 연이어 온다했던가요. 엎친데 겹친격 179명의 인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그 사고는 그 해 대미를 장식하고 말았었죠. 내 삶에서 세번째로 잔인했던 24년 12월. 그리고 어느새 25년의 끝자락입니다. 그런 시간들이 아슬아슬 지나는가 싶더니만 나도모르는 사이에 24년 12월의 잔인했던 그 상흔들이 조금씩 조금씩 치유되고 아물어가는 중입니다. 12월 14일 국회앞 2백만이 지켜본사이 탄핵 가결. 매서운 추위에도 한남동을 가득메운 키세스시위대의 모습도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리고 25년 4월 4일 탄핵결정이 나던 날은 그야말로 반전에 반전이었습니다. 6월 3일 새 대통령이 선출되던 날까지도요. 하지만 아직도 여진은 여전합니다. 아무말 대잔치의 재판은 여전히 진행중. 그 유령이 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걸까요. 그러나 모든일에 끝은 있기 마련입니다. 감히 얼마남지 않았다 그리 믿습니다. 민주주의란 주권자들의 끊임없는 감시와 피와 노력에 의해서만이 지켜지는 것이란 것도 새삼스럽게 깨달아가는 중입니다.
고속버스에 반쯤 기울여 몸을 실었습니다. 좌로한번 우로한번 몸의 중심이 자꾸만 흔들립니다. 육신의 흔들림따라 영혼도 출렁거리고. 어찌됐든 내일은 반드시 다가온다는 사실도 겨우 깨닫습니다. 며칠전 아들이 산재사고를 당해 오늘 수술중입니다. 이리저리 마음이 착잡한 연말이랄까요. 아들 또한 어른이 되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란것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져 그 상처도 조속히 아물기를 바랄뿐입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다람쥐 챗바뀌 돌듯 새로운 다짐들을 연례행사처럼 쏱아냅니다. 올해도 예외일 수는 없을테죠? 그렇게 새해를 위한 나만의 간절한 바램들을 하나씩 토해낼까 합니다. 물론 1월 달력이 완전히 지나가기도 전에 모든게 지워져 버릴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발만 동동거리며 신세한탄만 할 수 없는 것이기에. 힘을 내어 보렵니다.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다짐하기 가장 좋은때는 바로 어제이고, 그 다음은.
바로 오늘이라구요. 물론 최악은 실패가 두려워서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테구요. 병오년 새해를 위한 다짐들. 궁금하고 매우 기대됩니다. 지켜지는 것보다 다짐만으로 끝나 버릴수도 있겠지만 그 중에서 단 한가지라도, 두세가지라도 꼬옥 지켜질 수 있기를 감히 바랄뿐입니다. 결과도 좋치만 그 과정 또한 무시할 순 없겠죠? 자 시작해 보겠습니다.
TO.새해에게
새해를 위한 기도. 하나, 아침형 인간되기. 둘, 올해보다 조금 더 행복해 지기. 셋, 남과 비교하며 나를 학대하거나 미워하지 않기. 넷, 모든 화의 근원은 욕심이니 적당한 욕망속에서 날 지켜내기. 다섯, 잔뜩 무거워진 마음 내려놓기. 여섯, 나만의 무지개를 찾아 가끔 어디론가 떠나주기. 일곱, 일주일에 한번은 꼭 브런치에 글쓰기. 여덟, 나비와의 동행 이어가기. 마지막, 백두대간 종주 프로젝트 완성하기.
이렇게 한해 쭈욱 달려 보렵니다. 앞으로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훈풍처럼 드는건 무슨 연유에서 일까요. 물론, 1월의 달력이 다 내려지기가 무섭게 또 다이어리에 깨알같이 적은 약속들이 잉크가 미쳐 마르기도 전에 먼먼 기억속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테지만. 예년들처럼 누가 내 시간을 훔쳐 가버린 것이라고. 남탓하고 세월탓하며 변명으로 일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져 계속 고민만하다 말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뿐입니다. 내가 왜 이런 계획을 세웠던거지. 하며 후회할 수도 있습니다. 정해놓은 경로를 매번 이탈하게 되는 삶도 굳이 나쁠것까지 없습니다.
하지만 쭈욱 달리다 어떠날 빨간불이 들어오기전에 내마음이 고장이 났다는 것 정도는 미리 알아차리는 혜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삶이란 직진만 있는게 아니라 유턴도 있을 수 있다는 것까지도요.
올 한해 쭈욱 행복으로 빈틈없이 채우는 앞날이기를 그져 바랄뿐입니다. 조속히 원래의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중이란 느낌 가득 드는 첫날입니다. 느낌이 왠지 좋습니다. 플랫폼! 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