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한달의 쉼이 주어졌습니다

제주 올레길 걷기

by 플랫폼

나에게 한달이란 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 입버릇처럼 늘 주문을 외우며 다녔었습니다. 영혼까지 탈탈털어 진심 가득 담아서요. 하지만 그 꿈은 좀처럼 내안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마치 닿을듯 하다가도 어느새 저 먼발치로 달아나 버리는 신기루처럼. 그랬던 어느날. 비현실적으로만 느껴지던 바램들이 어느새 내안에 닿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말이 씨라도 된 걸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한달.


어찌됐든 꿈은 꾸고 볼일입니다. 동안 내 삶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수많은 오르막과 내리막. 그 이후의 심한 어지럼증과 고통. 그리고 채워도 채워도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은 늘 허전하기만 했었죠. 그져 모든게 귀찮함의 연속. 어떤날은 마음의 파고가 너무 높아져 내 삶은 무미건조함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위험천만한 수준으로까지 치닫고 있던 어느날.


몸과 마음은 제발 쉼이 필요하다, 라고 외쳐댔지만 난 단지 모른척 모로쇠로 일관하며 계속 앞만보고 달려왔습니다. 처음엔 살다보면 이럴때도 있는거야, 라며 위안도 해보고 애써 무시도 해 보았었죠.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 그렇게 무수한 시간들이 지나더니만 어느덧 그 초심마져 본 마음에서 퇴색되어 버린지 오래. 마치 다람쥐 챗바뀌도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이라고 단정할 수 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내가 주도하여 사는건지. 아니면, 4차산업혁명이라는 쓰나미속. 메타버스 한쪽 귀퉁이에 겨우 얹혀 살아지는 것인지. 내 마음은 지금 저인망 그물코처럼 너무나 촘촘하고 조급하여 조그마한 틈새하나 비집고 들어오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이른 새벽. 눈을 떴을때부터 무미건조함은 이미 내 심장 깊숙이 울려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씻는둥 마는 둥, 먹는 둥 마는 둥.

현대의학의 이기에 의지해 약을 목구멍으로 반강제적으로 넘겨주며 남들의 시류에 편승해 어쩔 수 없이 매일 출근길에 올라야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날 기다린건 반갑지 않은 업무들.


그들은 무자비하고 억척스러웠고 또, 삶의 아름다움과도 거리가 너무도 멀어 보였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건지. 생각하던 찰나. 시간은 어느덧 불타는 금요일. 불타야할 퇴근길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 구름에 실려 그져 두둥실 떠도니는 듯한 느낌들만 가득합니다.


쓰디쓴 커피 한잔 빼어들고 목마와 숙녀란 시를 읇조리며 또다시 스터디카페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곳도 내 마음이 진정 원한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겨우 내 한몸 의지할곳으로 피신한다고 했지만 이 세상 내 한몸 안전하게 숨을데 조차도 없다니. 겨우 삼십여분 억지로 그 자릴 지키다 구렁이 담넘듯 또 그곳을 빠져 나옵니다. 그렇게 사바세계에서 영혼이 출렁거리기를 지속하던 어느날.


불똥은 예기치 않게 14년째 꾸역꾸역 잘디니던 회사에게로 튀었습니다. 처음엔 그져 조그만한 작은 불씨에 불과했었죠. 그런데 어느날부터 그 불씨 하나가 자라나 잔잔하던 내 마음을 자꾸 흔들어 대더니만 갑자기 커다란 불길이 되어 이곳저곳으로 활활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냥 확 그만둬 버릴까. 그 말을 평소 입버릇처럼 내뱉고 다녔습니다. 잘 버티던 회사생활도 점점 지옥이 되어가고 있었죠.


나이 들기전에 뭔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그 압박감들이 점점 내 마음 한쪽 귀퉁이부터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었는데. 사직, 사직, 사직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매일 사직이란 두글자를 부르짖고 다녔는데도 여전히 15년째 계속 다니고 있는 웃픈 현실과도 직면합니다.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또다른 문제를 낳았습니다.


문제를 문제답게 보지 않았던게 더 문제였습니다. 대인관계의 그런 문제들이 가는 곳마다 지뢰밭처럼 내 발목을 잡고 있었죠. 어쩌면 내 자신이 스스로 내 발목을 묶어두려 했는지도 모르는 일. 물론 못그만둔 첫번째 이유는 마땅한 대안조차도 없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완벽한 모순 투성이인 삶이었습니다. 그만두려는 이유는 날마다 쌓여만갔고 그만두지 말아야하는 이유 역시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못그만두어서 안달하고 있는 나. 봄이가고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다시 봄. 그야말로 강산이 몇 번이 변하고도 남을 만한 시간입니다. 그러다 마음이 점점 조급하고 쪼그라드는 나와 마주합나다. 어색한 주변공기와 점점 쭈굴해져가는 얼굴. 주름가득한 이마에 수심만이 가득합니다. 이러다 결국 회사를 못그만 두는건 아닌건지. 또 영영 마루금과 이별하는건 아닌지. 그 조급증이 어느새 수면위로 솟구쳐 올라와 있었습니다.


잔잔하던 마음에 일으킨 조그만 파문. 그 조급증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불안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깟 마루금이 뭐라고. 완주못하면 어때서, 라고 애써 반문해 보기도 했지만 그것마져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뜨거운 어느 여름날. 무료하던차에 어느날 브런치란 플랫폼이 갑자기 내 앞에 혜성처럼 나타나 서성거렸습니다. 엉겹결에 난 그곳에 발을 담그고 말았었죠. 삶의 놀이동산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그곳은 신기방통한 곳이었습니다. 놀잇감들도 무궁무진했고 내 마음의 궁금증은 날로 더해만 갔습니다. 한동안 그 낙원에서 허우적대기를 여러날.


난, 어쩌면 맘 놓고 쉬며 기댈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달이란 시간 동안의 브런치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진심이었죠. 블로그란 나만의 바다속에 남겨진 백두대간 이야기. 그 영감들을 떠올리며 색칠을 더해 보기로 했습니다.


달콤했던 회상의 시간들은 가슴 떨림 그 자체였습니다. 나에게도 그렇게 행복했던 시간들이 많았다니. 그져 놀랍습니다. 하지만 모든게 사실. 난, 수없이 삶의 파도에 흔들리긴 했지만 불행했거나 무너진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도전을 갈구하고 있는 나와 마주합니다. 그에따라 직면하는 현실이란 벽. 그건 나로선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마의 벽이었지만 깨뜨려보려 노력햇습니다.


난, 매일 하나씩 글을 써보려 했습니다. 한달이 지나고 두달. 글쓰기는 어느새 나에게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의 의미가 되어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게 다가온 글럼프. 살다보면 초청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반갑지 않은 손님은 늘 불현듯 나타나서 잔잔한 마음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벌써 4일째 브런치의 문만 두드리고 있을 뿐. 겨우 몇 자 적어보다 다시 지워버렸다를 무한 반복하는 중.


수많은 글감들이 나타나 써달라 유혹하는대 난 한발짝도 전진할 수 없었습니다. 에세이인지, 산문인지, 일기인지 조차도 알 수 없는 그져 내 마음 가는대로 즈져 그적거리다 지워버리기를 여러날. 나에게 형식과 절차같은건 그리 중요치 않았습니다. 오직 내 마음만 전달되면 그만일 뿐. 내 마음의 깊이만 알면 그뿐. 내가 진정 원하는게 무엇인지.


글쓰기 초보가 형식까지 따질 수도 없는 그런 노릇이었습니다. 첫 날개짓의 시작이니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라고 그렇게 마음의 위로까지도 해보았죠. 글쓰기조차 지난하고 비루헀던 내 인생길을 빼닮았다는 걸 그때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물론 처음엔 제법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구독자들도 하나둘씩 차곡차곡 늘어가고 있었죠.


허나 그것도 허수였다는 걸. 착각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불과 며칠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져 한낱 신기루에 불과했었는데 일곱빛갈 무지개인줄 착각하고 살았던 것. 그렇게 이웃님들이 내 행복을 좌지우지 할 순 없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또 내 마음이었습니다. 남탓으로 일관하다 결국 진정한 범인은. 그리고 삶의 적은 내 마음이었다는 걸 겨우 깨달아가고 있는 중. 바람이 불어댄다고 내 마음까지 촐랑대었던게 더 문제였습니다.


어느날, 난 글쓰는걸 잠시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메타버스시대는 한시도 날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한가지 일도 벅차기만한데 취미까지 함께한다는 건 무리라고 채근하는 듯. 날 사정없이 몰아 붙히기도. 그래서, 난 고심끝에 당분간 열씸히 먹고사는 일에만 매진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글쓰는 일도 욕심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 그렇게 세상엔 내려놓을 것 투성이란 걸 실감합니다.




그러는 중에도 어김없이 새해는 밝아왔고 그렇게 소중한 한달이란 쉼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난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어딘가를 향해 떠날준비에 몰입하는 중. 그럼 무엇부터 해야할까. 고민하고 헤매는 동안 벌써 며칠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난 또 숨바꼭질에 돌입합니다. 그 줄다리기의 시간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진일퇴입니다. 며칠째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보지만 뾰쪽수는 좀체로 나오지 않는 현실.


이러다 정말 그 소중한 시간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건 아닐까. 정말 행복한 고민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할 사람 없을테고. 하지만 난 이내 심신이 쪼그라듭니다. 겨울 덕장에서 겨우내 수분이 쭉빠져버린 동태처럼 말이죠. 한동안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걱정이 또 도진걸까요. 정말 무슨일이 나진 않은걸까. 먹고 놀고 자고 또 그러다 지치면 멍때리고.


허나 그건 내가 바라던 현실세계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이윽고 잔잔하던 마음의 공간에 큰 파고가 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소원했던 쉼이 주어졌는데 주어져도 또 걱정입니다. 걱정을 평소에 달고 다니는 플랫폼의 마음 가난한 현실. 이윽고 심사끝에 금새 태세전환의 카드를 꺼내듭니다. 그렇다면. 평소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뭐가 있을까?


일단 걷기입니다. 그리고 밀린 글쓰기. 또 산행하기와 여행 떠나기. 그리고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해 소원 8가지를 꺼내듭니다. 나에게 소중한 쉼의 시간이 그렇게 어렵게 찾아왔는데 며칠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는 중. 그건 진정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모처럼 하늘이 주신 천우일회 기회. 막상 한달이란 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떻게 쉬어야할지 모르는 난 이내 당황합니다.


아마도 타성에 젖어버린 삶. 고리타분한 습관들과 그 알량했던 루틴들 때문일테죠. 아니면 지금껏 수십년동안 다져온 성과위주의 삶의 연장선상이랄까요. 어쩌면 나는 잠시 쉬는법 자체를 잃어버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뭘 해야 행복할까. 몇 시간째 머리를 쥐어짜 보지만 별다른 혜안조차 떠오르지 않고 겨우 뇌리 주위에 맴돌뿐 그 자리에 오히려 잡념들만 가득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한달.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내 전두엽의 뜻은 결코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정신을 가다듬고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지 않기위해 몸부림쳐 봅니다. 그러다 내린 결론. 놀면 뭐해, 였습니다. 동안 밀린 일하고. 또 하고 싶었던 일 해보기. 대신 하다가 피곤해지면 금새 포기하고 낮잠을 때리거나 그냥 멍때리기.


나에게 주어진 모처럼 한달이란 시간은 잠자고 있던 육감들을 불러 깨웁니다. 이 세상 가장 귀하고 소중한 금이 지금이라는데. 그래.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그건 한마디로 표현하면 걷기입니다. 쉬운길을 놔두고 애둘러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디부터 걸을까. 며칠의 시간을 두고 또 고민중. 백두대간 남은 구간 이어가기. 아니면 코리아둘레길 도전해 보기. 마지막 제주올레길 걷기. 그 중 하나로 겨우 좁혀집니다.


드디어 결정장애의 봉인이 해제되었습니다. 무작정 떠나기로 했습니다. 왜 떠나는것인지 시시콜콜한 이유따윈 묻지도 따지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져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만 하면 될뿐. 내 마음은 이미 머언 남쪽나라 어느 섬으로 향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진정 내 마음이 원하는것부터 해보렵니다. 물론 가는길이 쉬운것만은 아닐겁니다.


살다보면 힘든길에서도. 길을 잃었을때도 가끔 진리를 찾기도 하는 것이니. 준비할 것도 많고 공부할것도 많습니다. 제주 올레길. 하루 40킬로미터를 걷는다면 꼬박 9일이 걸리는 거리.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습니다. 우선 항공권 티켓과 올레길 주변 숙소부터 예약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의 즐거움은 짐꾸리기입니다. 떠나기 직전의 폭풍전야. 여행의 묘미는 바로 떠나기 직전의 고요함입니다.


우여곡절끝에 끝낸 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라타며 턱을 개고 머언 하늘을 응시해봅니다. 구름위를 둥둥떠서 지나가는 내 육신과 영혼. 난 이길에서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후회는 하지 않을까. 드디어 던져진 주사위. 자 지금부터 나의 힘든 도전과 긴 여정이 시작됩니다. 점점 사는게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요즈음.


어딘가를 향해 떠나기 직전의 고요함과 기대감들이 깊이깊이 파고듭니다. 다시 삶의 의미를 되찾을 때까지 무작정 걸어보려 합니다. 나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모처럼 주어진 쉼의 시간 한달. 혹시나 아나요. 걷다보면 아주 우연한 기회에 파랑새가 손을 흔들어 줄련지도. 이렇게 사는건지 마치 살아지는 건지가 햇갈린다면 나처럼 어딘가를 향해 무작정 떠나 걸어보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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