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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전 Apr 29. 2021

인생, 우주가 나를 양육하는 게임

조금 덜 억울하게 세상을 사는 법

 

 세상이 너무 억울한 때가 있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기대와 달리, 노력은 나를 자주 배신했다.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나는 모든 일에 힘을 잔뜩 주었다. 이번 만은 배신당하지 않으리 운명과 결투하듯 이를 갈면서. 하지만 몸에 힘만 잔뜩 들어갈 뿐, 꿈꾸던 미래는 나를 비웃듯 도망쳤고 한 번도 손에 제대로 잡히는 법이 없었다.

 

 불안은 나를 지배했다. 내 뇌는 택하지 못한 선택지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평행우주를 떠올리는 자동 기계 같았다. 어떤 선택에도 확신은 없었다. 왜 이렇게 삶이 힘든 걸까 이곳저곳 답을 찾으러 문을 두들겼다. 이모는 이런 고민을 이미 평생에 걸쳐 해왔는지, 본인의 깨달음을 전래동화 이야기해주듯 들려주었다. 이모의 긴 인생 스토리가 준 교훈은 ‘모든 일은 지나 봐야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도 뒤돌아보면, 길의 방향을 만들어 가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었음을.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에게, 그것만큼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지금 당장은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일이라도, 다 뜻이 있는 거라고.


 나는 기대에 못 미치거나 실패했을 때, 그 원인과 의미를 나에게 돌리곤 했다. 내가 노력이 부족했구나, 내가 아직도 많이 모자라는구나, 이래서, 저래서. 아쉬운 결과의 의미를 과거의 나에게서 발굴해내기 바빴다. 하지만 이모의 말마따나 생각해보니 모든 결과의 원인은 나를 키워내는 ‘우주’의 의도에 있었다. (우주라고 하니 약간 사이비 같지만…) 우주가 나의 부모라고 생각해보자. 우주는 내가 성장하기 위한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너를 위해 이 부분은 변화해야 한다고, 퀘스트를 깨야하는 상황을 만들고 말을 건다. 


 나의 경우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스스로 부딪혀 가는 것에 굉장히 약하다. 혼자 내린 결정이나 행위에 대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탓이다. 내 마음속의 신호는 이 부분이 아킬레스건이라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왔다. 나는 이를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 학교에서는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에 오니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는 점에 있었다. 


 실제로 지금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얼마 전까지도 정말 많이 힘들었다. 신입으로 입사했지만 사수 연차의 선배들은 내가 입사하고 한 달 안에 모두 퇴사했고, 실질적인 사수 없이 일을 시작했다. 새로 팀에 합류하신 선배는 경력을 쌓아온 분야가 조금 달랐고, 일에 대한 질문의 대답은 '그건 ㅇㅇ씨 담당이잖아'라는 말이었다. 망망대해에 혼자 있는 떠다니는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인데, 하다못해 피드백을 받을 길도 없었다. 특히나 전에 인턴으로 일했던 대기업과 비교되며 더 힘들었다. 그때는 인턴이지만 차근차근 배우며 성장하는 기분을 만끽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깨너머로 배운 양념장 레시피를 가지고 혼자 메뉴를 개발해야 하는 알바생의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미숙한 양념장으로 모두의 식사를 대접하기까지 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탓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쨌든 그 회사에 입사하기를 선택한 것도 나, 계속 다니기로 선택한 것도 나 이니까. 다른 회사들의 최종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 역시, 아직 이곳에 깨야할 퀘스트가 남아있다는 우주의 뜻은 아닐까? 혼자 부딪혀서 일궈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성장하라는 시그널이 아닐까? 


 이상, 환승 이직에 실패한 사람의 정신승리일 수도 있지만. 뭐 어때. 이렇게라도 생각해서 조금 행복하게 산다면야 그냥 그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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